중국발 원자재값 상승에 韓 배터리 업체들 가격 인상…“제2의 요소수 압박”

김윤호
2022년 01월 1일 오후 5:14 업데이트: 2022년 05월 28일 오후 7:42

한국 배터리 생산업체들이 중국산 원자재 가격 인상에 따른 원가 상승 압박으로 배터리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만의 상황은 아니지만, 중국산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가격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면서도 다소 중국에 가까웠던 한국이 최근 미국 쪽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이자, 중국이 압박 수위를 높여가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한국 배터리 3사 중 2개사가 최근 원가 상승 압박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했거나 예고했다.

삼성SDI 지난해 11월 가장 많이 쓰이는 모델 중 하나인21700 규격의 원통형 배터리 가격을 7~8% 인상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달부터 원통형배터리 가격을 10% 올린다고 지난달 대리점에 통보했다.

SK이노베이션은 아직 가격 인상 계획을 밝히진 않았지만, 배터리 원자재인 니켈, 코발트 가격 상승에 대응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철을 사용한 LFP배터리 생산을 검토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코발트, 니켈, 리튬 등 배터리 원재료의 주요 생산국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원자재를 대거 구매해 유통 가능한 형태로 가공하고 있다.

특히 리튬은 중국 제조사의 우위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신 위안화로 가격이 매겨진다.

한국은 전 세계 2차전지 생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으나, 핵심 배터리 소재인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희토류와 여타 원자재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지난해 11월 발표자료에 따르면, 배터리 제작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의 2020년 중국 수입 의존도는 81.1%에 달했고 2021년에는 9월까지 의존도가 83.5%로 더 높아졌다. 중국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추세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이 배터리 원자재 공급을 중단하면 한국 기업은 물론 전 세계 배터리 제조사에 끔찍한 상황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단순히 중국 기업들의 가격 인상만으로도 한국 배터리 업계에 적잖은 타격이 될 수 있다.

수산화리튬 가격의 가격은 지난달 23일 기준 킬로그램(kg)당 267위안(약 5만원)으로 작년 11월에 비해 6배 뛰었다. 특히 넉 달 전만 해도 kg당 95위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근 상승폭이 가팔라진 것이다.

니켈, 코발트, 망간 등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다른 원자재 가격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코발트 가격은 지난달 24일 kg당 70달러(약 8만3천원)로 3년이래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니켈 가격도 11월 kg당 20달러(약 2만3천원)로 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국 업계 관계자는 “신에너지차(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 전기차 배터리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원자재 수요가 모두 증가했다”며 “하지만 공급이 제한돼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배터리 3사는 배터리 원자재 확보를 위해 중국 외에도 수입처를 다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단기간에 상황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호주, 캐나다의 리튬 채굴업체와 리튬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했고, SK이노베이션은 2020년 스위스 글렌코어와 2025년 코발트 3만 톤 구매계약을 맺었다. 삼성SDI는 호주 QPM의 테크 프로젝트를 통해 3~5년간 매년 6000톤의 니켈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

중화권 분석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희토류 분야에서 중국이 거의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갖고 있어 향후 수년간은 영향력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분석가 루톈밍은 에포크타임스에 “최근 한국에서는 화물차 운행에 필요한 요소수 대란이 발생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요소수 의존도는 거의 전량에 가깝다”면서 “일반적인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중국은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특정 원자재 가격이 조정되거나, 타국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국 산업에 대한 규제가 동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요소수 대란은 지난해 10월 15일 중국 당국이 요소 등 화학비료 품목에 대한 수출 전 검사를 의무화하면서 촉발됐다. 한국의 요소 중국 의존도는 97%다. 물류 대란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청와대까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요소수 대란은 중국이 손을 내민 뒤에야 해결됐다.

중국 당국은 11월 10일 한국 기업이 구매계약을 체결한 요소 1만8700톤(t) 수출 절차를 재개했다. 이미 체결된 계약 이행을 ‘규제’로 막았다가 풀어주면서 생색을 낸 셈이다.

이 사건을 두고 한국 안팎에서 중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루톈밍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는 “현재 미중 간 ‘게임’이 치열한 가운데 양국 모두 한국을 자기편을 만들려 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개발기술과 생산능력을 보유했다는 점도 한국의 매력”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한국 역시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실리를 챙겼다. 이 과정에서 공산주의 중국에 살짝 기울었다가 최근 미국에 가까워지려는 경향을 보였다. 중국 공산당은 여기에 자극받았다. 배터리 가격 상승으로 중국 기업들도 영향을 받고 있지만, 한국을 노린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중국과 경제적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둬선 안된다. 장기적 관점에서 공급망 분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 이 기사는 쉬이양(徐亦揚)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