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해외 침투전략 변경…헝가리에 푸단대 분교 설립

강우찬
2021년 04월 16일 오전 11:55 업데이트: 2021년 04월 16일 오후 6:45

중공이 헝가리에 거액의 차관을 제공하고 부다페스트에 상하이 푸단대학(復旦大學) 분교를 지을 예정이다.

일대일로 인프라 건설에 미온적인 동유럽에 ‘학교 건설’을 내세운 맞춤형 전략으로 침투하고 이를 통해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에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공, 학교 설립 구실로 헝가리 교육계에 자금 살포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헝가리 혁신과학기술부가 지난 10일 헝가리와 중국이 공동으로 수도 부다페스트에 푸단-헝가리대학을 설립하는 내용의 문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고등교육기관이 해외에서 학교를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푸단대 분교는 최근 수십 년간 헝가리 교육 분야에서 최대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로 꼽힌다. 헝가리 언론 다이렉트(DIREKT36)는 정부 문서를 입수해 지난 6일 해당 프로젝트 관련 내용을 자세히 밝혔다. 관련 보도는 이후 많은 매체가 인용했다.

미국의소리는 2024년 문을 여는 부다페스트 푸단대 분교에는 총 15억 유로(약 2조42억원)가 투자되며, 이 중 12억5000만 유로(약 1조 7천억원)는 중국이 헝가리에 차관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학교 건설은 중국의 국유기업 중젠(中建)그룹이 맡아 중국 건설자재와 중국인 근로자를 쓰게 된다. 현지 언론은 이 기업이 부패와 스파이 스캔들과 관련 있다고 전했다.

헝가리판 일대일로…”차관 수용, 결국 덫이 될 것”

미국의소리는 이 프로젝트는 중공이 유럽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중공 당원 신분의 많은 교사와 연구원, 학생들이 이런 은밀한 방법으로 헝가리에 입국하게 될 것”이라며 “이들의 당 충성심은 학문의 자유보다 높을 것이고 헝가리에 대한 중공 정부 측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 프로젝트의 투자 금액은 2019년 한 해 헝가리의 고등교육 시스템에 소요된 총비용보다 높다. 현지 여론도 헝가리가 중공의 부채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헝가리의 좌익과 우익 반대 세력은 이 같은 당국의 움직임에 경악했다. 주요 반대파인 헝가리 사회당은 성명을 내고 “푸단대 분교 사업이 헝가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오히려 헝가리에 중국의 고등학교를 건설할 것”이라고 했다.

부다페스트 남부 9구역의 구청장 역시 “사업은 ‘윈-윈’이어야 한다. 모든 순이익은 중국이 챙기고 헝가리에 남는 것은 빚뿐일 것”이라고 글을 올렸다.

부다페스트 시장 반발 “2023년 세계육상 취소” 경고

게르겔리 카라초니 부다페스트 시장은 오르반 총리 집무실에 공개서한을 보내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반대를 표시하고 있다.

카라초니 시장은 “푸단대 분교는 중국이 유럽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중국 정보기관이 유럽과 헝가리에서 활동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판적 입장의 헝가리 인사들은 푸단대 분교가 부다페스트 9구역에 들어서면 당초 수년 전 결정돼 기숙사 8천개 설계까지 마친 대학가 지원 프로젝트를 대체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민족주의 세력을 대변하는 우파 정당 ‘더 나은 헝가리를 위한 운동'(Jobbik∙요빅)의 지도자들 역시 푸단대 분교 건설보다 오르반 정부의 대학가 지원 프로젝트 강화를 촉구했다. 헝가리는 현재 젊은 층이 대거 이민을 가는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카라초니 시장은 오르반 정부가 대학가 프로젝트를 푸단대 분교 프로젝트로 대체할 경우 2023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개최를 취소하겠다고 경고했다.

또한 “중공에 정치∙경제적 이익과 중공 정보기관에 특권을 가져다줄 푸단대 분교 프로젝트보다 대학가 프로젝트를 더 중시할 것을 오르반 정부에 바란다”고 말했다.

오르반 총리 홍보처는 지난 8일 브리핑에서 푸단대 분교는 대학가 지원 프로젝트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교 설립 찬성한 오르반 총리는 친중·친러 성향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최근 몇 년간 언론의 자유, 인권 등의 분야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오르반 정부는 친중 및 친러 성향으로도 유명하다.

헝가리는 현재 중국의 코로나19 백신과 러시아 백신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반대파는 오르반 정부가 지난해 전염병 기간에 중국에서 인공호흡기와 기타 의료장비를 비싼 값에 사들였다고 비판했다.

유럽과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거대 통신사 화웨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화웨이는 총리의 협조적 태도 하에 헝가리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화웨이는 지난해 가을 헝가리에 새 R&D 센터를 열기도 했다.

지난달 중공이 캐나다 국민 2명의 재판을 시작했을 때 중국 주재 캐나다와 미국, 영국 그리고 EU 20여 개국 외교관들은 재판에 회부된 캐나다인을 응원하기 위해 법정 밖으로 나가 중공의 임의적 체포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러나 베이징에 있는 헝가리 외교관들은 이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헝가리와 세르비아는 중공의 유럽 진출 발판

미국의소리에 따르면 헝가리와 세르비아는 발칸과 중동부 유럽에서 중공의 중요한 버팀목이자 유럽 내지로 진입하는 데 주요 발판으로 꼽힌다.

일부 동유럽 국가와 중공의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중공으로서는 이 두 나라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세르비아와 달리 헝가리는 EU와 NATO 소속이다.

러시아∙동유럽 및 발칸 문제 전문가 이스칸데로프는 “안보 분야에서는 NATO 회원국인 일부 동유럽 국가들이 미국∙독일∙프랑스 등과 전략적으로 일치해야 하지만, 경제무역과 인문 협력 등 다른 분야에서는 자주권과 활동 공간이 크다”며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동유럽 지역에서 활동할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두 나라의 전략이 비슷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