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EU 대사들 기고문 검열 사건이 드러낸 ‘중국과 협력’의 민낯

한동훈
2020년 05월 9일 오후 5:58 업데이트: 2021년 05월 16일 오후 1:15

주중 유럽연합(EU) 대사들의 공동 기고문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 사태와 관련해 강조하고 있는 ‘중국과 협력’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주중 EU 회원국 대사들이 공동으로 작성해 중국 관영매체 차이나 데일리(중국일보)에 보낸 글이 검열된 사건에 대해 논평했다.

AP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중국 외교부의 항의를 받아들여 수정·삭제를 허용한 주중 EU 대표단 단장의 결정이 “올바르지 않았다”며 “사전에 본부와 협의하거나 회원국과도 협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전날 니콜라스 샤퓌(Nicolas Chapuis) 주중 EU 대표단 단장은 차이나 데일리가 중공 바이러스 기원 및 확산과 관련된 문장을 삭제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며 자세한 경위를 밝히지는 않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EU 외교부 대변인을 인용해 샤퓌 단장 등이 해당 문장을 삭제해달라는 중국 외교부의 요구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외교부 동의가 없으면 발행 자체가 어렵다는 말에 결국 삭제 요구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원래 기고문에서 EU 대사들은 “올해 많은 EU-중국 간 고위급 회담 등이 계획됐지만, 중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한 후 3개월 동안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계획은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라고 썼다.

그러나 7일 발행된 차이나 데일리 지면에는 ‘중국에서’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가 삭제되고 “코로나바이러스 발생으로 계획은 보류될 수밖에 없었다”라는 표현만 남아 있었다.

이 기고문은 주중 EU 회원국 대사들이 EU-중국 외교관계 수립 45주년을 기념해 공동 작성한 것으로 지난 45년간 양자 간 협력관계를 되돌아보고, 중공 바이러스 사태를 맞아 새로운 협력을 모색하는 내용이었다.

EU는 최근에도 중국의 항의로 보고서를 수정했다는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해당 보고서는 지난 4월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대외관계청(EEAS)에서 발행하려던 것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중공 바이러스 확산 상황에서 허위정보를 퍼뜨리고 있으며 EU와 동맹국을 겨냥한 해를 끼치려는 명백한 의도가 있음을 지적했다.

중국은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미국, 이탈리아를 지명하며 초기대응 실패와 정보 은폐에 대한 책임전가를 시도하며 국제사회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에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 바이러스 기원을 투명하게 밝히라고 중국에서 촉구하고 나섰고, 호주는 독자적인 조사 방침을 밝혔다.

이러한 문제에 말을 아끼던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지난 30일 CNBC와 인터뷰에서 발원지 조사에 대해 지지 입장을 밝히며 “중국은 조사 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며 투명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