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43개주 선거법 개혁 움직임…총대 멘 조지아에 집중 포화

하석원
2021년 04월 2일 오전 11:36 업데이트: 2021년 04월 2일 오후 2:49

미국 조지아주가 선거법을 개정하자 여러 단체와 개인, 영화계와 스포츠계 인사들까지 들고일어나 반대하고 있다(법안 PDF).

일반적으로 정치에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던 기업들까지 가세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개정안의 취지는 대규모 우편투표로 인한 선거 관리 부실과 유권자 사기 문제를 해결해 선거에 대한 신뢰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CNN 방송 등 미국 주요 언론에서는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으로 보도되고 있다.

반대 측은 우편투표 때 신분 확인을 강화하고, 거리 우편투표 수거함 설치를 제한하며, 투표장의 유권자들에게 물과 음식을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을 문제 삼고 있다.

흑인과 히스패닉의 투표권 행사를 제약하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조지아의 새 선거법은 지난 대선 당시 불거졌던 문제점을 보완해 현장 투표 시 사진이 든 신분증을 지참하고, 요청하지 않은 유권자에게 투표용지 발송을 중단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지난 25일(현지시각) 선거법 개정안에 서명하며 “투표를 더 쉽게, 속임수는 더 어렵게 만들어준 의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기업, 임원 단체 ‘이례적’ 반대 움직임

조지아 선거법에 대한 반대는 조지아 주도인 애틀랜타에 본사를 둔 대형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코카콜라, 델타항공, 대형 보험사인 애플랙, 건축자재 판매업체 홈디포 등이 반대 입장을 밝혔다.

31일 CNBC방송에 따르면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페이스북, 씨티그룹, 물류회사 UPS 등 72개 기업에 재직 중인 흑인 임원들 명의로 비난 서한이 작성됐다.

평소 정치적 이슈에 중립적 태도를 지키던 기업들이 이례적일 만큼 발 빠르게 나선 데에는 불매운동을 걱정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미국에서는 진보주의자와 일부 흑인·히스패닉 등이 몰두해 있는 ‘캔슬컬처(취소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캔슬컬처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개인, 단체(기업)를 온라인에서 따돌림하고 오프라인에서도 불매운동 등을 통해 괴롭히는 사회적 현상을 가리킨다.

미국 내 중국계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캔슬컬처가 과거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막무가내로 지식인들을 괴롭혔던 홍위병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계에서도 비난 성명을 냈다.

영화감독 제임스 맨골드는 트위터에서 시작된 “더는 조지아에서 영화를 제작하지 않겠다”는 보이콧 운동에 합류했다.

조지아는 마블 시리즈 등이 촬영되며 할리우드에 이어 영화와 드라마 제작이 활발한 곳이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는 비아컴CBS가 최초로 성명을 발표했고, 워너미디어를 소유한 AT&T가 뒤따랐다.

이 회사들은 성명에서 직접 ‘조지아를 보이콧한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새 선거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했다.

디즈니와 소니는 아직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CNBC는 두 회사에 논평을 요청했지만 응답받지 못했다면서, “조지아에서 마블 시리즈를 촬영한 디즈니가 연방정부의 반응을 살피고 있을 것”이라는 UCLA 연극·영화 강사인 톰 누난의 말을 전했다.

지난해부터 정치적 이슈에 대해 부쩍 목소리가 높아진 스포츠계도 반발하고 있다.

보스턴 글로브에 따르면 7월 애틀랜타에서 열릴 메이저리그(MLB) 올스타전을 연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선수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개정된 선거법에 대해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직접 나서 강한 반대 입장를 표명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31일 ESPN과의 인터뷰에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보이콧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했다. 또한 정치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선수들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책임감 있게 행동한다”며 찬사를 보냈다.

조지아 “투표권 제한 아니라 오히려 보장”

조지아 주지사는 새 선거법이 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투표에 대한 접근성과 신뢰성을 높인다는 입장이다.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는 CNBC와 인터뷰에서 뉴저지와 조지아를 비교했다. 뉴저지에서는 사전투표 기간이 9일이지만, 조지아의 새 선거법은 17일을 보장해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어 기업들의 반대성명과 관련해 “기업주들은 이곳에 살지 않고 우리 법이 무엇인지 모른다”며 “우리 주는 해당 기업들이 있는 주보다 제한이 덜하다. 그들은 자신의 주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켐프 주지사는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도 출연해 “새 선거법에 대한 진보진영의 반발은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위선적인 비판이 걷잡을 수 없이 만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일각에서 퍼지고 있는 ‘투표장에 물과 음식을 지니고 가지 못한다’는 소문에 대해 “유권자 스스로 투표장에 얼마든지 물과 음식을 가져올 수 있다. 선거당국에서도 물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투표장의 유권자에게 물과 음식을 주지 못하도록 한 조항은 특정 정당 혹은 후보 지지자들이 물과 음식을 주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져 있다.

켐프 주지사는 또한 기업들의 보이콧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전염병 대유행에서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조지아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43개 주에서 선거법 개정 추진

미국 전체 50개 주 중 43개 주의회에서는 200여 개 이상의 선거법 개혁 법안이 발의됐거나 준비 중이다.

지난 대선 당시 선거 관련 소송과 논란에 휘말렸던 조지아 주정부와 의회는 선거가 끝나자 가장 먼저 선거법 개정의 포문을 열었다.

조지아 사례가 미 전역의 43개 선거 개혁법안의 통과와 정착 여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은 자명하다. 그동안 정치적 이슈와 거리를 뒀던 기업들과 흑인 임원들, 흑인 권익단체와 영화계, 스포츠계가 일제히 나선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진보성향 유권자 단체 ‘조지아 여성 유권자 연맹’과 ‘전미 흑인지위향상협회’는 28일 조지아의 선거 최고 책임자인 브래드 라펜스퍼거 주무장관 등을 상대로 주요조항에 위헌성이 있다며 새 선거법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했다(소장 PDF).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트럼프와 공화당이 벌였던 법정 투쟁이 재연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다만 공격과 수비가 교대됐다.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주목된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사실 검증 칼럼인 펙트체커(fact checker)를 통해 “조지아의 새 선거법이 투표 마감을 앞당긴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며 거짓말의 정도를 표현하는 피노키오 지수 중 ‘완전한 거짓말’을 나타내는 최고 등급인 ‘피노키오 넷’을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