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세계 각국 침투한 중국 공산당원 195만명 명단, 왜 이 시점에 공개됐나

중위안(鍾原)
2020년 12월 19일 오전 8:30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8

전 세계 대학·연구소·기업·정부기관에 재직 중인 중국 공산당원 195만명의 명단이 공개됐다고 지난 13일 영국 데일리 메일 등 언론이 보도했다.

이 명단은 미국·유럽·일본 등 서방의원들로 구성된 ‘대중국 의회 간 연합체'(IPAC)가 익명의 중공 반체제 인사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확인해 전날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단에는 이름·성별·민족 외에 일부는 주소·연락처 등이 기재됐다. 명단에 실린 공산당원들은 대부분 중국 상하이 출신으로 다국적 대기업과 학술기관 및 정부 기관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여기에는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중인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 유럽 항공기제조업체 에어버스, 미국 보잉, 방위산업체 탈레스의 영국지사 등이 포함됐다.

중국에서 기밀로 취급되던 이 명단은 지난 2016년 상하이의 한 서버에서 유출돼 이번에 4개 언론사에 제공됐다.

명단의 내용과 입수과정도 눈길을 끌지만, 핵심은 이 명단의 입수와 공개가 왜 이 시점에 이뤄졌냐는 점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공산당원’ 신분을 겨냥한 굵직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미 국무부는 이달 2일 중국 공산당원과 그 가족의 미국 방문비자(B1·B2)의 유효기간 상한을 기존 10년에서 1개월로 단축한다고 발표했다. 발급횟수도 1회로 제한했다.

9일에는 미 재무부가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인대 상무위 부위원장 14명을 제재했다. 이들과 직계 가족은 미국 방문 및 미국인과 거래가 금지되고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된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공산당원은 보장된 신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자산과 가족을 해외로 도피시키는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산당은 지난 2013년부터 지방 하급 관리들의 여권을 제출받아 보관하는 정책을 확대 시행해왔다. 2018년에는 모든 초·중고 교사 여권을 몰수했다.

그러나 중간급 이상 고위층은 이런 제약의 영향을 덜 받고 있다가, 최근 미국에 연이은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3일 미국의 공산당원 비자 축소 방침을 전하며 현실적으로 당내 고위급 이사 외에 일반 당원은 가입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시진핑은 집권 후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무역전쟁을 벌이며, 전면적인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트럼프 캠프가 제기하고 있는 대선 부정의혹 가운데에는 중국 공산당의 개입을 지적하는 내용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존 래드클리프 미 국가정보국장은 지난 8월 “중국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 경제적, 군사적, 기술적으로 미국에 더 큰 국가 안보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선거 개입과 위협이 포함된다”고 말한 바 있다.

국가정보국장의 외세의 대선개입에 대한 조사보고서는 당초 이달 18일이 제출 마감이었으나 내년 1월로 늦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에 중국의 개입 증거가 담겨 있을 경우 미국의 중국을 향한 공세는 더는 파상 공세로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번 명단 공개는 ‘선진국에서 안락한 삶’을 선호하는 중국 공산당원 전체를 향한 ‘산통 깨뜨리기’인 동시에 현 지도부인 시진핑 진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중국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시진핑이 한창 부패 척결 중이던 지난 2018년 10월, 홍콩 빈과일보는 시진핑의 가족이 홍콩에 고급 주택을 비롯해 부동산 8건을 보유하고 있으며 900억원대 재산을 은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치권에서 이런 뉴스는 반대파의 정보 흘리기로 성립된다.

2020년 올해 8월에는 뉴욕타임스가 중국 공산당 최고위 인사 4명 중 3명의 가족이 최근 수년간 홍콩에 600억원 상당의 호화 주택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서 거론된 ‘최고위 인사’는 3명은 시진핑, 리잔수, 왕양이었다. 시진핑 본인을 포함에 이들은 모두 시진핑 진영 인사들이다. 중국이 보유한 유일한 국제 금융허브인 홍콩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의 자산 유출창구다.

당 고위층 가운데 본인이나 가족이 홍콩에 고급 주택 한 채 없거나 기업·금융계와 밀접한 관계가 없는 인물이 존재하는 게 오히려 힘들다. 그런데도 시진핑 진영의 명단만 뉴욕타임스 보도에서 언급된 것은 마찬가지로 당내 반대파가 정보를 유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분석이다.

전 세계 중국 공산당원 195만명의 명단이 유출되고 사흘 뒤인 16일 신화통신은 ‘붉은 스파이의 전설적인 인생’(「紅色特工」的傳奇人生)라는 기사를 두드러지는 글꼴로 홈페이지 메인화면에서 비중있게 다뤘다.

이 기사는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중공군)이 국민당과 중국 주도권을 놓고 다투던 시절, 국민당 군대 내부에 심어뒀던 간첩 슝샹후이(熊向暉)에 대해 소개했다.

슝샹후이 부부와 두 아이의 사진까지 게재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분투한 공산당원” “이들의 이름은 역사의 먼지에 결코 가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한껏 추켜세웠다.

이번에 명단이 공개된 공산당원 195만명은 사실상 크고 작게 간첩활동에 연루됐다는 게 많은 언론들의 지적이다. 이들의 정체가 만천하에 공개돼 극심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힐 상황이 빚어지자, 공산당 기관지 신화통신은 간첩 활동을 영예로운 일로 포장하는 기사를 냈다.

해외에서 머물고 있는 이들에게 “당을 위해 헌신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중국 안팎 공산당원들이 기밀을 관리하지 못하고 유출시킨 데 따른 불만을 현 집권세력인 시진핑 진영으로 돌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풀이된다.

이번 195만명의 명단은 중공 반체제 인사를 통해 입수됐다고 알려졌지만, 이 정도의 기밀 자료는 내부에서 동조한 인물이 없다면 손에 넣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미국과 대결로 해외도피의 퇴로가 막힌, 당내 일부 세력이 시진핑에게 강하게 반발하면서 미리 유출해뒀던 명단을 공산당원 신분이 집중 타격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 가장 폭발력이 증폭될 수 있는 시기를 골라 터뜨렸을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이 당내에서 심각한 갈등과 도전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