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vs 현대…미국의 치열한 ‘낙태 전쟁’(2)

샤샤오창(夏小強)
2019년 04월 13일 오전 9:31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0

‘로 대 웨이드’ 판결 주역의 대반전

2017년 2월 18일, 노마 맥코비는 미국 텍사스주에서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그녀는 1973년 미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한 상징적인 사건,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의 주인공이다.

뉴욕타임스의 1994년 보도에 따르면, 맥코비의 가정은 파괴됐고, 친척에게 여러 번 성폭행당했으며, 학교도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그녀는 16세에 결혼했지만 곧 이혼했고, 세 아이를 낳았지만 아버지가 모두 달랐다. 큰딸은 그녀의 어머니가 대신 키웠고, 둘째와 셋째는 입양 보냈다. 한때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되기도 했고 안정된 직장도 없었다. 1969년, 맥코비가 세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그녀는 낙태권을 주장하는 조직에 가입했다.

맥코비는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으로 변호사를 선임했고, 텍사스의 형사 낙태법을 위헌으로 고발했다. 그녀는 자신의 낙태를 정당화하려고 성폭행당했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셋째 아이를 출산해야 했다. 1973년 그녀는 미국 연방대법원에 상소해 승소했다. 그러나 NYT는 당시 노마가 변호사와 연락을 별로 하지 않았고 법정에 출두하지도 않았으며, 이 사건이 대법원에서 승소한 것은 사실 그녀 자신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전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맥코비는 자신이 이 소송의 원고임을 인정했다. 그녀는 자신이 당시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으며, 단지 낙태할 수 있도록 사건 심리를 서두르기 바랬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나중에 양성애자가 됐고 동성 반려자와 동거했다. 그녀는 신원을 공개한 후 낙태권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녀는 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여성 클리닉에서 일하고, 대중에게 연설하고, 자서전을 쓰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그녀는 낙태권을 쟁취한 풍운아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95년 8월 8일, 맥코비는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면서 낙태를 반대하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그녀는 ‘더 이상 로는 없다(roe no more)’라는 기구를 만들어 반낙태 운동을 시작했다. 1998년, 그녀는 낙태권을 주장하는 아이콘에서 반낙태 운동가로 변신한 자신의 심적 격변을 담은 자서전 <사랑에 정복되다(Won by Love)>를 출간했다.

2016년 미국 예선 기간 공화당 후보 론 폴(Ron Paul)은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로 대 웨이드 사건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며 전혀 헌법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 개정안을 비롯한 헌법은 낙태를 지지한다는 의미를 담은 문구가 한 마디도 없다. 태어나지 않은 무고한 태아의 권리는 미국 자유 이념의 핵심 가치다.”

이에 당사자인 맥코비는 “그의 대통령 출마를 지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완전히 뒤집을 것이다”라고 호응했다.

그녀는 반낙태 TV 광고에서 “1973년부터 낙태는 5천만 명의 무고한 아기를 죽이고 그들의 부모 및 가족에게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었다”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 시기, 맥코비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낙태권에 찬성하는 오바마를 비난하며 “오바마가 아기를 죽인다”고 주장했다. 또 항의 행사에 참여했다가 두 번이나 체포되기도 했다.

맥코비는 “나는 로 대 웨이드 사건의 제인 로(Jane Roe)였는데, 그 제인은 오래전에 죽었다. 나는 낙태합법운동 전체가 거짓말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 이름으로 밀어붙인 이 법을 평생에 걸쳐 폐지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낙태, 여성의 권리인가 살인인가?

낙태는 여성의 기본 인권인가, 아니면 노골적인 살인인가? 낙태 지지 진영과 반대 진영이 펼치는 논쟁은 대립의 극치를 보인다.

현재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은, 낙태는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는 완전히 합법적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불륜이나 강간으로 임신했거나, 태아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사회경제적 요인이 있거나, 임산부 건강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배아나 태아를 생존권을 가진 인간으로 보고 낙태를 살인과 동일시한다. 반면에 낙태 지지자들은 여성이 자신의 몸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자기결정권과 보편적인 인권을 강조한다.

합법적 낙태를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세 가지다. 태아의 지위에 대한 이견, 태아의 권리에 대한 이견, 그리고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이견이 그것이다.

합법적 낙태를 지지하는 이유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낙태가 불법으로 인정되더라도 낙태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논리적인 허점이 있다. 낙태를 제지하는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 ‘옳으냐 그르냐’ 혹은 ‘선하냐 악하냐’ 하는 문제는 따지지 않고 결과만 본다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절도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해서 절도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합법적 낙태를 지지하는 이유 중 더욱 놀라운 것은 태아가 (주로 임신 초기에)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낙태는 한 생명을 해치는 행위가 아니며, 낙태를 반대하는 것이 자기결정권을 박탈한다고 것이다. 합법적 낙태 지지자들은 자기결정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수정된 난자에서 완전히 발육한 태아에 이르는 과정에서 인격적 지위는 언제 생겨날까? 중세 가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남성 태아는 40일 후에, 여성 태아는 90일 후에 영혼이 부여된다고 주장했다. 대다수 반낙태자는 임신이 되는 순간 인간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합법적 낙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갈등의 근원과 본질은 사실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즉, 무신론과 유신론의 차이다.

사실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성폭행을 당했을 때는 여성에게 낙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임산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낙태를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정교(正敎)는 모두 생명을 소중히 여겨왔다. 미국은 기독교로 나라를 세웠고, 독립선언문과 헌법의 기초 내용은 대부분 기독교 성경의 개념에서 나왔다. 따라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는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온다고 생각하고, 아무도 이를 빼앗을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낙태는 살인과 동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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