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재난상황서 충전 시간에 발목 잡힐 수도” 미 연구

한동훈
2022년 08월 17일 오후 3:46 업데이트: 2022년 08월 17일 오후 6:15

미 프린스턴대 등 공동연구팀 보고서에서 분석
허리케인·지진·산불 등 재난 발생 시 충전 문제
“전기차 보급 맞춰 충전 전략 등 새 대책 필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기후변화 대책의 일환으로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는 가운데 자연재해 발생 시 전기를 유일한 동력으로 하는 차량의 대처력이 휘발유차에 비해 떨어진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다이렉트’에 프린스턴대 등 공동연구팀의 교통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진, 산불,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 전기차로 대피할 경우 미국 내 지역에 따라 심각한 전력 부족에 직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가 늘어날수록 동력원인 전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재난 상황 시 전력 공급망에 부담이 가중돼 연쇄적인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신차의 절반을 탄소 무배출 시스템 차량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그때까지 미국에서는 전기차가 2300만 대까지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서는 2017년 8월 말에 발생해서 9월 10일 플로리다에 상륙해 3명의 사망자를 내고 300만여 가구에 정전 피해를 입힌 허리케인 ‘어마(Irma)’를 모델로 시뮬레이션 분석을 진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어마 상륙 시 플로리다 주민 650만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짐에 따라 차량 400만 대를 이용한 사상 최대 규모 대피 행렬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플로리다 전역에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졌었다.

연구팀은 차량의 움직임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모두 전기차일 경우 전력 수요를 계산한 결과, 배터리가 소모돼 재충전이 필요한 시점에 엄청난 전력 공급난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차량의 55~65%가 전력을 공급받지 못했다.

또한 전력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최대 3일간 전력망에 연쇄 장애가 발생, 대규모 정전사태를 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지역에 따라 전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곳도 있었고, 충전소가 아닌 자택에서 충전하는 운전자들도 있어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대규모 허리케인이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기차 사용이 늘어나면 안전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배터리 기술 개선, 중앙집중식 충전 대책 마련, 하이브리드 차량 보급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허리케인 외에도 지역에 따라 지진, 산불 상황으로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 연구팀은 지진, 산불 등 갑작스러운 재난 발생 시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충전량이나 충전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지진, 산불이 양대 자연재해로 꼽힌다. 캘리포니아는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9~10월에 대형 산불이 연례행사처럼 발생해왔으며, 지난 11월에는 대규모 산불이 3주간 지속되는 대형 재난이 덮쳤다.

자연재해 상황에서 전기차의 대처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전기차 지지단체인 ‘EV 리소스’는 “허리케인이 부는 동안과 그 이후 정전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전에는 전력이 부족하지 않다”며 “사람들은 허리케인 등 재난 상황 전에 충분히 충전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 단체는 또한 “전기차는 공회전으로 연료를 태우지도 않는다”며 “10시간이 넘는 교통 체증으로 휘발유가 떨어졌다는 경험담은 휘발유차의 이야기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은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통 체증이 길어지면 에어컨 등 부차적인 기능을 끄고 최소한의 전력만 사용하면 전기차 역시 장기간 운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단체는 이에 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제시하지 않았으며, 에포크타임스의 관련 자료 문의에도 응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허리케인과 달리 산불이나 지진은 사전에 감지하기 어렵다.

폴리테크닉 주립대 연구팀의 실제 사례 조사에 따르면, 갑작스러운 재난 발생을 가정했을 때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160~320㎞ 정도였다. 완전 충전까지는 3~12시간 걸렸고, 급속 충전의 경우에도 최대 30분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긴급히 대피해야 할 경우 충전으로 인한 지연은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피 도중 전력이 떨어진 전기차가 차선을 막아 교통 정체와 대피 지연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달 초 전미 주의회 의원들로 구성된 전미 주의원연맹(NCSL)이 개최한 전기차 전문가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토론 시간에 “대피 도중 전력이 배터리가 다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의가 나오자, 전문가 패널로 참석한 제프 브랜더스 플로리다주 의원은 “우리 주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답했고, 주에너지교통부 관계자는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 이 기사는 케이티 스펜스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