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쩌민파, 비밀 커넥션 구축해 북핵 막후 지원 ‘진짜 흑막’

차이나뉴스팀
2016년 10월 10일 오전 10:18 업데이트: 2021년 05월 16일 오후 12:10

중국공산당 6중전회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이 중국 단둥 훙샹그룹 마샤오훙 회장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장쩌민파가 김정은 정권에 핵무기를 제공했다는 일련의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저우융캉, 왕민, 마샤오훙 등이 낙마하면서 장쩌민파가 북한을 장악하던 구도도 이제 무너져가고 있다.

지리적 위치상 왕민(王珉) 전 랴오닝(遼寧)성 당서기와 리펑(李峰) 랴오닝성 인민대표대회 부주임은 지린(吉林)성, 랴오닝(遼寧)성 및 북한의 국경 지역 무역을 관리한다. 지난 12년 동안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中联部, 중련부) 부장을 맡아왔던 왕자루이(王家瑞)는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쩡칭훙(曾慶紅) 부주석과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은 중국의 석유 업계를 장악해 왔다. 여기서 장쩌민파가 북한의 핵무기를 통제 했다는 퍼즐이 들어맞는다.

마샤오훙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다

랴오닝성 당국은 지난 9월 15일 훙샹그룹과 그 책임자들이 중대 경제범죄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도 20일 훙샹그룹 창업자인 마샤오훙이 체포되었으며 8월 말부터 조사받고 있다고 전했다. 각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장쩌민파가 장악하고 있는 중련부 및 리펑 인민대표대회 부주임 등과 유착 관계였다.

미국 워싱턴 고위 국방연구센터와 한국 서울아산정책연구원은 19일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서 훙샹그룹이 북한에 핵무기 개발에 사용될 수 있는 물자를 수출했다고 밝혔다. 마샤오훙과 장쩌민파의 관계가 점차 수면위로 드러나면서 다년간 장쩌민파가 북한 핵무기 개발을 지원해왔다는 소문은 사실로 판명된 셈이다.

마침 이 시기에 리펑이 면직된 것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표면적인 원인은 뇌물 수수지만 그가 랴오닝성 공안부장 및 성 정법위원회 서기를 다년간 역임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또 훙샹그룹과 같이 북한 정부 및 군과 연관이 있는 기업은 성 공안 당국이 묵인해 주지 않으면 절대 순조롭게 활동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훙샹그룹은 북한에 위조 달러를 유통시키기도 했다. 중국 인터넷상에는 몇 년 전 ‘위안바오징(袁寶璟)의 부인, 착잡한 마음으로 살인범을 기다리다’라는 제목의 글이 떠돌았는데 랴오닝성 출신의 갑부 위안바오징이 사형을 당한 것은 과거 한 정법위원회 서기가 마약 범죄와 위조지폐 사업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적발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 정법위원회 서기가 리펑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왕민(王珉)이 지린성 서기를 지내다 랴오닝성으로 옮긴 후 리펑에 대한 신고는 모두 유보되었고 심지어 리펑에게 그 내용을 누설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문회보(文匯報)의 쟝웨이핑(姜維平) 기자에 따르면 왕민은 장쩌민, 쩡칭홍의 아우로 불렸다고 한다.

왕민의 정치 생애에서 알 수 있듯이 장쩌민파는 북중 무역에 큰 의미를 뒀다. 그는 후진타오 집권 시기 지린성과 랴오닝성 서기를 역임했다. 이 두 지역의 국경 지역은 모두 북중 무역이 활발한 지역이다. 보시라이(薄熙來)와 천더밍(陳德銘)은 이 시기에 상무부를 장악했다.

천더밍과 왕민은 모두 장쩌민 진영인 쑤저우(蘇州)에서 시위원회 서기를 역임한 적이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중련부는 랴오닝성 선양(瀋陽)시와 단둥시 정부에 내부적으로 ‘주재(驻在)’라고 불리는 비밀 공작실을 설립했는데, 랴오닝성 공안국과 국가안전국과 비밀스럽게 협력했다고 한다. 해외 전문가 가오신(高新)은 “마샤오훙은 중련부가 랴오닝 성에 배치한 ‘하위 판매원’이었을 수도 있고 리펑이 중련부에 추천한 인물었을 수도 있는데, 필자는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라고 분석했다.

중련부는 작년 11월부터 인사 조정을 단행했다. 장쩌민파 왕자루이가 시진핑의 최측근인 쑹타오(宋濤)로 교체되면서 전 외교부장 리자오싱(李肇星)의 비서와 링지화의 부하였던 중앙판공청 부부장 딩샤오원(丁孝文)도 지난 7월 교체됐다. 그로부터 2개월 후 외신은 중국이 북한 핵무기 개발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련부가 마샤오훙에게 이 임무를 수행하도록 지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북한이 2006년 1차 핵실험을 단행했을때 마샤오훙은 한 중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놀랍지 않다. 예전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BBC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서 대외무역을 주관하는 광선(光鲜)은행이 2004년부터 중국 단둥에 지점을 설립, 다년간 수십억 달러를 부정 송금하여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에 사용했다고 한다. 광선은행은 훙샹그룹 계열사 물류회사의 대주주 중 하나이다. 유엔이 2013년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킨 후 시진핑 당국은 북한의 금융기관이 중국에서 지점을 내는 것을 금지했으며, 대형 국유은행에 광선은행의 계좌동결 조치를 내렸다.

훙샹 그룹은 2009년 5월 북한의 조선민족보험 총회사(KINC)와 합작으로 ‘홍바오(红保) 실업발전 유한공사’를 설립하여 산업재료, 전기 장비, 방직품 등의 무역을 주로 담당했다. 조선민족보 험총회사는 작년 EU 위원회의 제재를 받고 북한 핵무기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중국공산당이 핵무기 자원을 지원

1980년대 초 당시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은 중국공산당에 농축유 제공 및 전문가를 파견할 것을 요청했지만 당시 공산당 지도자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이 이를 거부하여 중국 동북산 대두와 얼린 돼지고기로 이를 대신했다.

장쩌민이 1989년에 총서기에 오른 이후 첫 외국 방문을 한 나라가 바로 북한이었는데 당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6.4 천안문 사건 때문에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는데 장쩌민은 북한에 대해,‘영원히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집권 시기 공산당은 북한에 약 15억(1조 6732억원)에서 37억 5천만 달러(4조 1800억원)에 달하는 원조를 지원했다.

북한의 핵무기 문제는 2003년에 처음으로 제기되었으며, 그 후 6자회담이 열렸다. 북한은 2005년 정식으로 ‘핵무기 보유 선언’을 발표한 후 2006년 처음으로 핵 실험을 진행하였으며, 2009년 6자 회담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그 후 저우융캉이 2010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과 김정은을 3일 동안 4차례나 만났다.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그때까지 우라늄 광산을 개발하지 못했고 이를 정제할 공장도 없었으며, 민간용 및 군용 핵시설 발전 원료를 모두 외국에서 수입해야만 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덩샤오핑이 초기에 북한에 일정 수량의 농축우라늄을 원조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한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장쩌민 집권 당시의 첸지천(錢其琛) 부총리의 한 부하 스파이가 비밀리에 미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고 한다. “북한은 핵무기가 없으며, 사실은 미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에서 비밀리에 배치한 것이다. 공산당 핵산업 부서의 인사에 따르면 북한의 핵무기 기술자들은 모두 중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중국공산당이 그 첨단 기술과 주요 원료를 제공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실험까지도 중국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또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 기술과 핵물질에 대해 터득한 후 이란 등의 국가로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한다. 바다로는 건너갈 수 없으므로 중국의 영공과 영토를 통해 교역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파키스탄을 통해 핵무기 기술을 북한과 이란에 전파하고 있다는 말도 있다.

북한은 쿠데타 실패의 도피처

1999년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감행한 후 반대 여론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장쩌민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는게 두려웠고, 북한을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의 쿠데타가 실패할 경우 도피처로 삼으려 했다. 그래서 측근들에게 북-중 무역을 관리하도록 하면서 북한에 대해 친분과 자금을 쌓아왔다.

저우융캉, 리장춘(李長春), 쩡칭홍, 류윈산(劉雲山) 등 장쩌민파의 핵심인물들은 오랫동안 북한의 김씨 정권과 범상치 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북한의 석유 80%는 중국에서 수입해 온 것이며 중국으로의 석탄 수출이 북한 전체 수출의 1/3을 차지한다. 북한은 줄곧 장쩌민 파의 관할 하에 있었다. 때문에 최근 시진핑 진영의 공격을 받고는 혼란에 빠진 상태다.

일본 매체에 따르면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전 북한 제 2인물인 장성택이 2012년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후진타오(胡錦濤)와 원자바오(溫家寶)와 비밀 회담을 가져 김정일의 후계자로 김정은 대신 김정남을 세우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내용이 저우융캉에 의해 폭로되면서 장성택이 2013년 숙청당하게 된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요미우리 신문(讀賣新聞)에 따르면 그 후 마샤오훙이 장성택이 맡아오던 연결고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장성택 사망 후 많은 중국 기업들이 북한과의 거래선을 잃었지만 북한은 마샤오훙과의 관계 유지는 계속 집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