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팔아 마련한 돈으로 ‘한국전쟁 참전용사’ 1400명 기록한 사진작가

이서현
2021년 01월 17일 오후 1:56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12:01

“비용이 어떻게 되나요?”
“선생님께서는 이미 69년 전에 액자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작가의 한마디가 시청자에게 감동을 전했다.

지난 13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사진작가 라미(현효제)가 출연했다.

그는 2017년부터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목소리와 영상을 기록하고 있다.

또 찍은 사진은 액자에 넣어 선물로 전달한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걸까.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그는 “원래는 군인들을 찍었었다. 2016년에 군복 전시회를 했는데 전시할 때 우연히 참전용사분이 오셨다. 그때 자기소개를 하시는데 자부심이 엄청나더라. 그래서 궁금했다. 저 사람들은 남의 나라 와서 싸웠는데 왜 저렇게 자부심이 생겼을까”라고 말했다.

이후 참전용사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 2017년부터 이곳저곳 연락하며 찾아다니게 됐다.

비용은 인물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번 돈으로 충당했다. 그것도 부족할 땐 카메라와 렌즈를 팔았다. 신용카드를 쓴 후 돌아와서 갚기도 했다.

그렇게 외국을 돌아다니며 카메라에 담은 참전용사는 1400여 명에 달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참전용사들은 그의 방문에 남다른 고마움을 전한다고 한다.

이미 70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도 ‘잊힌 전쟁, 잊힌 참전 용사’란다.

그런데 목숨 걸고 지켰던 그 나라에서 온 청년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그들의 시간을 기록을 남긴 것.

그가 액자를 건넬 때마다 참전용사들은 “나를 잊지 않았구나”라며 본인이 비로소 영웅인 것을 느낀다고 말해줬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한 참전용사는 “군인의 자부심은 이기는 것보다 지키는 데서 온다. 한국 전쟁에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이미 노년에 들어선 그들이기에, 라미가 준비한 액자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이도 있었다.

라미는 “자신이 조금만 능력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액자를 전달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액자를 받은 참전용사들은 항상 액자값을 물어본단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고 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69년 전에 이미 액자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선생님 같은 분들께 많은 것을 빚졌어요. 다만 그중 일부를 갚으러 온 것뿐입니다.”

그는 매년 참전용사 달력을 만들어 그 수익금으로 참전용사들에게 달력과 태극기도 보내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전쟁 참전 22개국 중 아직 가지 못한 나라를 모두 방문해 참전용사들의 시간을 빠짐없이 기록할 계획이다.

한국전쟁 당시 고생하고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하는 그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