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6.25남침’ ‘기업 자유’ 부활한 새로운 교육과정

‘성소수자’ 용어도 성별, 연령, 인종, 국적, 장애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 표현으로 바뀌어

최창근
2022년 11월 10일 오후 2:36 업데이트: 2022년 11월 10일 오후 3:00

2025년부터 고등학생들이 사용하게 될 새로운 한국사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가 부활한다. 초등·중학교 사회 교과 과정에서도 ‘기업 자유’ ‘자유 경쟁 기반 시장경제’ 표현도 명시됐다. 성소수자 문제 기술도 변경됐다.

11월 9일, 교육부는 상기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22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앞서 교육부는 2022년 8월, 정책연구진이 제시한 시안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제시된 의견을 반영하고 10월, 2차 수정안을 만들어 공청회를 개최했다.

지난 1·2차 교육과정 시안은 기본적으로 지난 문재인 정부 시 구성된 정책 연구진 의견이 반영된 것이었다면 이번 행정예고안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교육부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할 개념, 체계, 용어에 대한 일종의 ‘집필 가이드 라인’이다. 교육과정에 기반하여 교과서 집필진은 교과서를 쓰게 된다.

구체적으로 교육부는 우선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를 명기했다. 앞서 공개된 정책 연구진의 1차 시안은 ‘6·25전쟁 남침’ 서술이 반영 되지 않았고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정책 연구진은 2차 시안에 ‘6·25전쟁 남침’ 내용을 담았지만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 표현은 유지했다.

이러한 시안에 대하여 교육부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 과정 중 ‘대한민국 발전’ 단원의 ‘학습 성취 기준’에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탐색한다.”고 서술하여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추가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재임기 교육부가 만든 현행 교육과정 성취 기준에는 모두 ‘민주주의’ 표현을 썼다. 또한 성취 기준 해설에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표현만을 포함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성취 기준에 ‘자유민주주의’를 명기하여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아울러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추가했다.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한 이유로 “1945년 광복 이후 미·소 대립이 본격화되며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고착되었고 대한민국은 미국을 위시한 자유민주 진영의 정치·경제 제도 등을 기초로 정부를 수립했다. 당시 북한 정권과 대비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정통성을 확고히 명시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2000년 헌법재판소도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헌법의 지향 이념으로 삼고 있다.”고 결정한 점, ‘통일교육지원법’ ‘국가보훈기본법’ ‘유엔참전용사법’ ‘국가유공자단체법’ 등 국가 정체성이나 지향 가치와 관련한 법령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과정 맥락에 따라 둘 중 적절한 용어를 기술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지난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나 ‘민주주의’ 중 하나만 사용한 것과 대조된다. 노무현 정부가 만든 2007 개정교육과정은 ‘민주주의’만 사용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재임기 만들어진 2011·2015 개정 교육과정은 ‘자유민주주의’만 사용했다. ‘독재 정치로 인한 민주주의의 시련’이란 표현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기존의 ‘민주주의’ 용어를 유지했다.

보수진영에서는 “광의(廣義)의 민주주의에는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도 존재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역사학계는 ‘자유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반공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발전 과정을 모두 표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민주주의’로 표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중 한국 근·현대사 비중을 줄이겠다고도 발표했다. 현행 교육과정 시안에서 근현대사 비율은 87%로서 기존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과정(75%)보다 더 높아졌다. 이를 두고서 “약 150년에 불과한 근현대사를 87% 비중으로 다루어서는 제대로 역사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제기된 바 있다.

교육부는 “연구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으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으며 개정 교육과정 고시 권한은 어디까지나 교육부에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다.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한국 근·현대사 교육 비율을 조정하려면 전문 연구진을 새로 꾸려야 해서 이번 행정예고안에는 반영하지 못했다. 국민 의견 수렴 과정과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인 만큼 행정예고 기간에 최대한 근현대사 비율을 줄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교육부 행정예고안에는 2022년 8월 교과서 연구진이 처음 내놓은 시안에 포함된 ‘성평등’ ‘성소수자’란 용어도 빠졌다.

사회 교과의 ‘성소수자’ 용어는 ‘성별, 연령, 인종, 국적, 장애 등으로 차별받는 소수자’로 바뀌었다. 도덕 교과목의 “올바른 성평등 의식을 내면화한다.”는 표현도 “성에 대한 편견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표현으로 대체됐다.

교육부 담당자는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인 청소년기 교육 과정 내에 성소수자가 사회적 소수자의 구체적 예시로 들어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청소년의 정체성 혼란을 우려했다.”고 개정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노동자’ 표현은 ‘근로자’로 대체됐으며,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에 대한 기술이 추가됐다.

정부의 교육과정 개정안을 두고서 교원 단체 간에도 의견이 갈렸다. 보수 성향의 한국교총은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명시한 것은 헌법 취지를 존중한 것이고 성평등 용어를 제외한 것은 사회적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는 국민 인식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진보성향의 전교조는 “자유민주주의를 무리하게 끼워 넣어 논란을 만들었고, 성평등·성소수자 같은 용어를 금기시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기존 교육과정 시안대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연구진의 전문성과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교육과정을 고시할 때 그 권한은 교육부 장관에게 있으며 연구진이 연구하는 것을 그대로 교육과정에 고시하는 게 아니다. 국민 의견 수렴과 여러 심의 과정을 거친 뒤에 행정예고를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이주호 신임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이명박 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시절인 2011년 ‘민주주의’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한 바 있다.

앞서 이주호 장관은 후보자 시절인 10월 28일, 국회 교육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수록해야 한다.”는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대해서 “자유민주주의도 헌법 정신에 입각한 교육과정이 개발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당시 이주호 후보자는 “자유민주주의는 이데올로기 중 하나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민형배 무소속 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는 헌법 가치이다. 민주주의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제출한 서면 답변서에서도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수록돼 있지만, 현재 공개된 시안에 해당 표현이 누락되어 있어 이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22 한국사 교육과정에서도 관련된 표현 수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폭넓은 의견 수렴을 토대로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