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의사가 가망 없는 80대 할머니의 ‘심폐소생술’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

김우성
2021년 02월 8일 오후 2:13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전 11:31

응급실로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들어오는 환자의 경우 대부분 다시 눈을 뜨지 못한다.

어렵게 심장 리듬이 되살아나더라도 환자의 몸에는 뇌 손상 같은 후유증이 남는다.

그래서인지 응급실 근무를 하다 보면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순간 회의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고.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응급실, 그리고 심폐소생술’이라는 제목으로 한 누리꾼의 사연이 공개됐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SBS ‘낭만닥터 김사부’

그날도 어김없이 심정지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왔다.

119 구급대원에게 미리 연락을 받고 준비하고 있던 의사, 간호사 모두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달라붙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환자는 몸이 여린 80대 할머니였다. 필요한 처치를 하면서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심폐소생술을 이어나갔다.

글쓴이는 “흉부에 압박을 가할 때마다 갈비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기관삽관튜브에서 피가 솟구쳤다”며 “그래도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멈추지 않고 계속 기계처럼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SBS ‘낭만닥터 김사부’

근무복이 땀에 흠뻑 젖을 만큼 온 힘을 쏟아부었지만, 심장 리듬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20분이 흐르고,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심폐소생술을 이어나갈지 말지 가족들에게 의사를 묻기 위해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 글쓴이의 머릿속은 할머니가 아닌 다른 환자들의 밀린 진료로 채워졌다. 할머니가 살 가망이 없다고 단념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평소 같았으면 그만 포기하시라 가족을 설득하고 왔을 선생님이 의외의 말을 했다. 진지한 얼굴로 “조금만 더 해보자”고 말했다.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연합뉴스

잠시 후 글쓴이는 그 이유를 알았다.

자신의 차례가 끝나고 숨을 고르던 글쓴이는 잠깐 열린 응급실 문 너머에서 스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을 봤다. 모두 할머니의 가족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갓난아이부터 형제, 어르신들까지 모두 달려와서 서로 손을 잡고 할머니가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글쓴이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는 모두 그 가족들과 한마음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며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에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불어넣어 줬다”고 말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 연합뉴스

심폐소생술을 시작한 지 45분이 지났을 때, 심장 박동이 울려 퍼지면서 모니터에 아름다운 곡선이 그려졌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동안 심폐소생술, 그리고 생명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과 판단에 세뇌당해가던 일상의 나를 반성하게 만들고,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줬다”

이후 치료를 받은 할머니는 건강하게 퇴원했다. 떠나기 전 가족들과 함께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응급실을 찾았다.

인사를 나누면서 아름답고 마음 따뜻한 가족이라고, 할머니를 돌아오게 한 힘은 바로 그 가족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고 글쓴이는 생각했다.

글쓴이는 “당시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그 대가족에게 둘러싸여 살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뭔가 표현하기 힘든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문득 할머니가 살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