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일보, 개혁개방 평가하며 덩샤오핑 극찬, 시진핑만 제외…내부 갈등 표출?

리무양(李沐陽)
2021년 12월 16일 오전 10:55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2

지난 1937년 일본군이 자행한 난징대학살 84주년 추모 행사가 13일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렸다. 이날 오전 10시 방공경보를 울리자 차량들은 경적을 울렸고 행인들은 제자리에서 묵념을 했다. 현장 상황을 생중계한 중국 중앙TV(CCTV)는 이 행사에  일부 생존한 노인들과 희생자 가족 대표를 포함한 약 3000명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2014년 이날(12월 13일)을 국가추모일(國家公祭)로 정한 이후 해마다 범국가적으로 추모 행사를 열고 있다.

이번 행사의 규모로 볼 때, 베이징 당국은 이 행사를 매우 중시하는 듯하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이 있다. 이렇게 성대한 행사에 참석한 관리 중 최고위 관리가 쑨춘란(孫春蘭) 국무원 부총리라는 점이다.

쑨춘란은 정치국 위원, 국무원 부총리로 중공 고위층이긴 하지만 정치국 상무위원 중에는 왕치산 국가부주석을 포함해 그보다 지위가 높은 관료가 적지 않다.

지금은 중·일 간에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고, 특히 일본은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여부를 아직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이 행사는 일본으로 하여금 베이징에 ‘유화 제스처’를 취하게 하는 외교적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중난하이의 최고 지도부, 특히 시진핑은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는 매우 기이한 현상이다.

더 이상한 점은 중국 공산당의 최고 선전선동 매체인 인민일보(人民日報)의 보도 내용이다. 9일 인민일보 ‘이론(理論)’ 지면(9면)에 실린 ‘취칭산(曲青山)’의 평론은 덩샤오핑과 장쩌민, 후진타오의 개혁개방 기간의 ‘성취’에 대해 극찬하며 덩샤오핑을 9차례,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각 한 차례 언급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2021년 12월 9일자 9면 | 인민일보 캡처

‘개혁·개방은 당의 한 차례 위대한 각성이다(改革開放是黨的一次偉大覺醒)’라는 제목의 이 평론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기본 제도를 확립한 것이 당대 중국 발전의 근본적 정치 전제(前提)와 제도적 토대를 다졌다”고 했다.

이 글은 덩샤오핑이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역사의 중요한 시기’에 잘못을 바로잡고 덩샤오핑 이론을 세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개척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은 개혁 목표와 기본 틀을 확립했고, 후진타오는 실천, 이론, 제도 혁신을 추진해 ‘과학발전관’을 형성했다고 했다.

이 글은 특히 “계속해서 사상을 해방하고, 단호하게 밀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년의 경험, 특히 ‘문화대혁명’의 교훈은 우리에게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고, 새로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정책을 제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장장 4000여 자에 달하는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진핑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 선전 매체가 최고 지도자에 대한 언급을 회피한 것은 여러 가지 추측을 낳기에 충분하다.

‘시진핑은 개혁개방에 기여한 것이 없다’는 의사 표시

중국 뉴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관영 매체의 보도에서 시진핑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잘 알 것이다. 기존 인민일보 논설기사를 살펴보면 개혁·개방을 언급할 때마다 시진핑을 거론했다.

지난 5월 27일 평론 글에서도 역시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 세 사람의 ‘개혁개방 성취’에 대해 다뤘다. 이 글에서는 시진핑을 언급할 때 시진핑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형성했다”고 했다.

갈수록 ‘시진핑 핵심’과 ‘위대한 지도자’를 강조하는 현 단계에서 사람들은 이러한 선전, 특히 시진핑을 띄우는 보도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여지기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인민일보는 이 글을 ‘이론(理論)’ 지면에 게재하면서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만 추켜세우고 시진핑은 무시해버렸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이날(13일) 이 평론을 언급하며 인민일보의 9면 ‘이론’ 지면은 1면보다 더 중요하다며 중국 공산당 내부의 ‘지도사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RFA는 이 글이 시진핑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확실히 심상치 않다”고 했다.

RFA 논평은 “그동안 경제·외교·정치 정책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시진핑은) 시진핑을 지지했던 당내 많은 사람도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도 자신들의 이익뿐 아니라 (당내 업무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매일 이렇게 못살게 굴면 아무도 견딜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취칭산은 ‘중앙 당사 및 문헌연구원’ 원장이다. 이 연구원은 중국공산당의 중요한 이론연구 진지로, 중공의 많은 정책과 이론이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기관의 원장이 이런 글을 통해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를 치켜세우면서 시진핑은 ‘무시’해 버린 것이다. 이는 ‘시진핑을 공개적으로 부정한다’는 인상을 주기 쉽고, 최소한 중공 내부에 시진핑 반대 목소리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상당히 심상치 않은 일이다.

린허리(林和立) 홍콩 중문대 중국연구센터 객원교수도 “이상하다”며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는 잘 살펴보면 지금 당 지도부가 과거와는 달리 3차 역사결의를 대대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중공 당내 정계의 전통과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린 교수는 취칭산이 글 서두에 제3차 역사결의를 인용하긴 했지만 시진핑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로 보았다. 하나는 개혁·개방의 역사만 집중적으로 토론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통해 시진핑이 개혁·개방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지적하기 위함이다.

린 교수는 “취칭산은 분명히 당내 일부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다”면서 “시진핑을 반대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시진핑이 최근 몇 년간 마오쩌둥 노선으로 복귀하고 덩샤오핑과 배치되는 보수적인 경제·정치 조치를 취한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고 했다.

취칭산이 이 글을 쓴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베이징 당국의 좌회전 정책으로 중국은 여러 면에서 후퇴하고 있다. 이런 후퇴는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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