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전 SNS 댓글로 해외 추적까지…中 당국, 재벌 아들 수배령

강우찬
2021년 03월 17일 오전 11:55 업데이트: 2021년 03월 17일 오후 12:00

중국 재개 거물의 아들이 공산당 인민해방군(중공군)을 모욕한 혐의로 수배됐다.

그러나 8개월 전 SNS에 남긴 댓글을 가지고, 경찰과 언론, 중국 좌파(마오쩌둥주의자)까지 호들갑을 떨면서 찜찜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중공 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으로 취업난이 극심해진 가운데, 재벌 2세에 대한 비난여론을 촉발시켜 정권에 대한 불만을 희석시키려는 물타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베이징 경찰은 “웨이보 사용자인 ‘판(潘)’이라는 인물을 지명수배한다”고 전했다.

경찰은 “그가 작년 6월 23일, 다른 사람의 웨이보에 영웅과 열사를 모욕하는 글을 올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이유를 밝혔다.

판씨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네티즌과 중국 매체들은 ‘판’이 유명 부동산업체 소호차이나 회장 판스이(潘石屹)의 장남 판루이(潘瑞涉)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판루이는 작년 6월 웨이보 글에 “중국·인도 국경에 있는 중국 군인들 최소 한 부대가 인도에 의해 생매장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댓글을 남겼다.

판루이는 작년 2월 출국한 뒤 현재까지 계속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베이징 경찰은 해외 수배령까지 내리며 반드시 체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언론도 거들고 나섰다. 공산당 선전기관인 중국중앙방송(CCTV)은 웨이보 공식계정(@央视新闻)을 통해 내고 이 사건을 “인민의 적 되기”라고 규정하고 “잠깐은 도망칠 수 있지만 한평생 도망칠 순 없는 법”이라고 협박 수준의 발언을 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직제상 국가 휘하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산하 ‘당의 군대’다. 통칭 중공군으로 불린다. 군에 대한 비방은 곧 당에 대한 비난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렇더라도 판루이의 댓글에 대한 경찰과 언론의 반응은 과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6월 중국과 인도 국경지대에서 양측 군인들 사이에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사태 후 인도군은 20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중공군은 사상자 수 발표를 꺼리면서 분분한 추측을 자초했다.

중국인들은 열렬하게 자국을 응원하다가도 실패하면 싸늘하게 비판한다. 중국 국가대표 축구팀도 태국 2군과 평가전에서 5대 1로 패배하자 축구팬들의 엄청난 욕설을 들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중인 국경분쟁 이후 중국에서는 중공군 사상자에 대한 각종 설이 난무했다. 판루이가 “들었다”는 ‘생매장설’ 역시 그중 하나일 뿐이었다. 판루이가 유난스럽게 정권을 비판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중공은 지난 2월 중인 국경분쟁으로 인한 중공군 사망자를 4명으로 발표하며 부상자를 표창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중공군 사상자와 관련해 비판적으로 글을 쓴 네티즌을 ‘국경영웅 모욕’ 혐의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웨이보에 100만 팔로워를 가진 이용자(아이디 @辣笔小球)도 그중 하나다. 그는 영웅·열사 모독 혐의로 최근 난징 경찰에 구속됐다. 베이징 누리꾼 천(陳)모씨도 채팅방에서 ‘국경영웅’ 모독 혐의로 베이징 경찰에 체포됐다.

또한 지난달 21일 쓰촨성에서도 한 남성이 같은 혐의로 체포돼 7일간 구류형을 받고 풀려났다.

이처럼 경찰이 ‘국경영웅’ 모독자들을 잡아들이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판루이를 신고한 것이다.

이 누군가의 구체적인 정체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국 좌파(마오쩌둥주의자)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된다.

지난달 중국 SNS에는 판루이가 국경영웅을 모독한다는 글이 떠돌았다.

이 글에서는 “누구도 감히 상관하고 묻지 못하는 사안에 대해, (판루이가) 감히 건드렸다”며 “재벌 2세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느냐. 설마 재벌 2세라고 처벌 못 하는 것은 아니냐”고 지적했다.

판루이의 발언보다는 부유층 아들이라는 신분에 초점 맞춰진 비판으로 미루어보아 작성자는 마오쩌둥주의 좌파로 추측됐다. 중국 좌파는 ‘노동자 독재’를 주장하는 세력이다.

중국 좌파가 평소 눈엣가시로 여겼던 판루이를 이번 기회에 타격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90년생인 판루이는 13살에 영국으로 건너갔으며 명문대 워릭대학교에 들어가 공학과 경영을 전공했다. 이후 판루이는 웨이보를 통해 공산당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을 종종 건드려왔다.

작년 4월 1일에는 만우절을 맞아 탱크맨(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선 남성)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만화를 자신의 프로필 이미지로 올리기도 했다.

또 허베이성 우한에서 중공 바이러스 확산 사태가 벌어지자 공산당 정권이 상황을 은폐하고 통제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고, 진상을 알리다가 실종된 시민기자의 행방을 추궁하는 게시물도 남겼다.

판루이는 또한 시진핑을 풍자했다가 체포된 중국 부동산 재벌 런즈창 회장을 염두에 둔 듯 “안정은 거짓말 위에 세워질 수 없다. 거짓말로 만든 터전 위에 세워진 고층 빌딩은 쓰러지기 마련”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현재 판루이가 쓴 글과 댓글들은 모두 삭제된 상태다.

중국문제 전문가 탕징위안은 “판루이는 8개월 전 웨이보에 올린 댓글 하나 때문에, 좌파로부터 사이버 뭇매를 맞고 베이징 경찰의 추적까지 받게 됐다”며 “그의 아버지에 대한 당 고위층의 압박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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