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일대일로 사업 탈퇴할 듯…중국 경제 보복은 우려

최창근
2023년 05월 10일 오후 3:15 업데이트: 2023년 05월 10일 오후 6:11

이탈리아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이탈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는 주요 7개국(G7) 중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5월 9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주 로마에서 가진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과의 회담에서 중국과 맺은 일대일로 투자 협정을 올해 말까지 탈퇴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해당 보도에서는 “회담 참석자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케빈 매카시 의장에게 일대일로 사업 중단 관련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이탈리아 정부는 해당 협정 탈퇴를 선호하고 있다며 미국을 안심시켰다.”고 전했다.

유럽 국가 이탈리아가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한 것은 지난 2019년 주세페 콘테 총리 집권기이다.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탈리아 국빈 방문을 계기로 사업 참여를 공식화했다.

콘테 총리와 시진핑 주석은 당시 에너지·항만·항공우주 등 제반 분야에서 민·관 협력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MOU는 5년 단위로 갱신되며 이탈리아 정부 수반인 총리가 취소하지 않으면 2024년 자동 갱신된다.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사업 중도 이탈은 예견된 수순이다. 지난해 반중 보수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집권 전부터 제기된 문제이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지난해 9월 총선 직전 대만 중앙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 결정에 대해 “큰 실수”라고 평가하면서 자신이 총리가 되면 일대일로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사업 이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근래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멜로니 총리는 취임 이후 유럽연합(EU) 안보, 경제 문제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하여 공개적인 중국 비판은 자제해 오고 있다.

이탈리아가 탈(脫)중국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미국과 여타 유럽 국가들의 행보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여타 유럽 국가가 반도체, 전기차 등 핵심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각종 정책을 추진하며 중국에 대한 견제 행보를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익명의 이탈리아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은 이탈리아가 이 문제(중국 견제)에 대한 공개적인 입장을 취하고 (일대일로) 협정을 폐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대만의 반도체도 한 요인이다. 이탈리아는 핵심 생산국인 대만과 반도체 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중국과는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독일, 프랑스와 더불어 유럽의 대표적인 자동차 생산국이다. 다만 반도체 생산 능력 부족으로 수요 대비 만성 공급 부족을 겪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대만 TSMC와의 협력 강화는 필연적이다. TSMC는 지난해 유럽 내 첫 생산공장 건설 후보지로 이탈리아를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일대일로 협정 철회’ 방침을 확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의 경제 보복을 우려해서 공식 발표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중국은 EU를 제외하고 미국 다음으로 이탈리아의 큰 교역 상대국이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대중국 수출액은 185억 달러(약 24조 5032억 원)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