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지갑으로 싸운다” 장기전 돌입하는 홍콩 시민들

친중기업 불매운동, 민주진영 소비운동...노조 설립해 정부에 맞서

애니 우
2019년 12월 19일 오전 10:30 업데이트: 2021년 05월 16일 오후 12:00

(홍콩=에포크타임스) 홍콩인들은 이번 시위를 거치면서 중국 자본과 권력이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으며 경제적 영역에서도 자치권이 침해받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들은 이제 경제 영역으로도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그 하나는 중국 자본이 투입됐거나 친중·친정부 기업 제품 소비를 줄이고, 민주화 요구를 지지하는 기업과 상점 이용을 더 많이 이용하는 소비패턴의 변화다.

시위대가 5대 요구사항 중 송환법 철회는 지난 9월 수용됐다. 하지만 나머지 요구사항인 △경찰의 폭력 진압 대한 독립 조사위원회 구성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에 대한 조건 없는 석방 △보통선거(직선제) 실시 등의 수용은 아직 멀기만 하다.

젊은 학생들 중심의 시위대가 거리와 캠퍼스에서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는 동안 홍콩 정부는 나머지 4가지 요구사항 수용 불가 방침을 고수했고, 홍콩 경찰은 더 과격한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했다.

거리 시위의 한계를 경험한 홍콩인들은 젊은 학생들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한편, 오랜 기간 친중 정책을 집행해온 정부에 맞서 이제 생활 현장에서 요구사항을 이루기 위해 긴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1997년 영국이 반환한 이후에도 홍콩은 글로벌 금융 허브 지위를 유지하며 외국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다. 해외 투자자들은 중국에 대한 직접 투자 대신 홍콩에 법인을 설립하거나 홍콩법인에 투자해 재산권을 확보한 뒤 중국 본토로 진출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중국에 직접 투자했다가는 법률의 보호를 받을 수 없고 중국 공산정권으로부터 언제든 재산권을 침해받을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 중국의 외국자본 약 72% 가량이 홍콩을 통해 유입되고 있다. 또한 중국 본토 기업이 홍콩에 설립한 자회사를 통해 외국자본 투자를 유치한 경우 역시 5배 증가했다.

중국의 국영·민간기업도 금융센터 홍콩의 증시에 상장해서 외환을 조달한다. 홍콩 자본 시장의 10대 회사 중 8개가 중국 소유다.

프랑스의 대표 금융기관 나티시스가 집계한 ‘홍콩 금융관리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의 은행들은 타지역보다 홍콩의 은행에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중국 기업들이 미 달러 자금 33%를 홍콩의 채권시장에 투자했다.

전 중국 교통은행 홍콩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카충(羅家聰) 홍콩 시립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홍콩은 중국 자금을 안팎으로 송출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이다. 중국 정부가 금융권을 통제하며 사실상 홍콩의 부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붉은 자본(red capital)’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본토에 유입되는 투자 자본은 중국 정부의 직·간접적 개입이나, 본토 고객을 좌절시킬 수 있는 대화 주제로 인식되기도 한다.

로카충 부교수는 “중국과 관련된 사업을 하고 있다면 중국 정부에 실제로 반기를 들 수는 없다”며 중국 정부의 개입이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홍콩 시위가 진행되는 가운데 홍콩 정부와는 다른 입장에서 홍콩의 경제전망을 언급했다가 교통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에서 물러나야 했다. 중국 공산당과 홍콩 정부는 홍콩 시위를 중국 재정 및 사회 안정을 해치는 ‘폭력 범죄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지 식당과 가게의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는 온라인 가이드 네오가이드(NeoGuide)를 만든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플라스틱 플라워가 홍콩 라이치콕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2019. 12. 9. | Symphua/NTD

노란색 상점에선 소비, 파란색 상점에선 불매

지난 6월부터 민주 진영은 ‘노란색’, 친정부는 ‘파란색’으로 식별하는 몇 가지 온라인 가이드가 생겨났다. 시내의 식당과 상점은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 미쉐린 가이드와 비슷한 노란색 승인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 닉네임 ‘플라스틱 플라워’로 알려진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온라인 지도 ‘네오가이드’를 만들었다. 네오가이드는 홍콩 현지 식당과 가게 운영자의 정치적 성향을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현재 지도에 약 5천 개 상점이 핀으로 표시되며, 핀마다 정치적 성향을 수집해 제시하고 있다. 시위대에 물자와 식사를 기부하거나 시위에 더욱 적극적인 지지를 보이는 곳일수록 더 짙은 노란색, 중국 자본으로 운영하거나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 소유하고 친중 언론과 인터뷰하거나 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곳은 더 진한 파란색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노란 스티커가 붙은 식당, 와인 샵, 미용실과 수익의 일부를 시위대에 기부하는 회사를 SNS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플라스틱 플라워가 네오가이드를 만들어 공개적으로 볼 수 있는 구글 지도에 결합한 이래로 7월까지 조회수 약 100만건을 기록했지만, 한달 뒤인 7월 구글이 네오가이드 노출을 중단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후 플라스틱 플라워는 새로운 웹사이트를 만들고 하루 약 15시간 홍보활동을 벌인 끝에 현재 이용자가 일간 6천명, 월간 50만명으로 늘어났다.

상점의 정치적 배경에 대한 정보는 보통 공개 양식을 통해 제출된 후, 대략 20명의 자원봉사자가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대규모 시위대의 요구를 묵살하는 홍콩 당국을 향해 플라스틱 플라워는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하기 위해 기꺼이 우리 돈을 쓸 수 있다”며 기존 시스템에서 시도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홍콩 케네디 타운의 한 디저트 가게. 노란색 스티커가 붙었다. 2019. 12. 3. | 애니 우/에포크타임스

네오가이드를 살펴보면 노란색 상점이 파란색보다 많지만, 표시가 되지 않은 상점 중에는 친정부 성향의 프렌차이즈 업체들이 있어 실제로는 파란색 상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네오가이드 개발자 플라스틱 플라워는 민주 진영 상점들이 협력해 정부가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강력한 기업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노란색 상점을 표시하는 것 외에도 노란색 상점의 이용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자원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홍콩인 위위(가명)씨는 특정 기간 내에 한 곳 이상의 노란색 상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특별 할인을 제공하는 캠페인을 조직했다. 노란색 경제 생태계 강화하고 파란색 상점을 보이콧하는 것이 목표다.

위위씨는 노란색 가게의 매출이 증가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중도에 가까운 파란색 상점들이 시위대 편이 되길 바라고 있다. 아울러 대기업의 독점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한다.

이 캠페인을 위해 위위씨는 총파업에 참여했던 상점들과 접촉했다. 지난 9월 홍콩 정부에 시위대의 요구를 이행하도록 타격을 주고 상인들의 시위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홍콩 주요 업종 종사자들이 총파업에 들어갔었다. 금융과 의료, 항공, 건축, 사회복지 등 홍콩 21개 업종의 종사자들이 동참했다.

시위 지지 노동자 보호 위해 노조 설립

최근 몇 주 동안 홍콩인들은 전술을 바꾸고 있다. 그들은 앞으로 더 영향력 있는 파업을 조직하려 하고,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있다.

응(가명)씨는 노동조합 조직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달 빅토리아 파크의 구청장 후보 집회가 경찰의 저지로 돌연 무산되자 새로운 대응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됐다.

그는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최루탄과 비살상탄을 쏘는 경찰을 보며 “많은 사람이 평화적인 항의의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온라인 포럼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을 토론했다고 말했다.

응씨는 권위주의 정부를 무너뜨린 1980년대 폴란드의 ‘연대자유 노조운동’과 한국의 ‘노동운동’에서 힌트를 얻었다며 “총파업으로 사회를 마비시켜 정부, 기업, 기업 자본가, 타 정당들이 반응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홍콩 최대 노조인 ‘홍콩 노조’는 친중 성향이다. 기업가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연합한 친중파 정당도 있다. 홍콩 반환 이후 기업과 전문직 종사자들은 친중 성향을 보여왔다.
응씨와 동료들은 온라인 포럼과 암호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통해 노조 설립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업계 근로자들로부터 연락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응씨가 노조 관련 텔레그램 채널은 현재 참여자가 7만1천명에 이른다.

홍콩에서는 노조를 설립하려면 같은 회사나 산업체에서 7명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노조 규칙과 회원 요건을 제정해야 하고 노동부에 신청서를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응씨는 “현재까지 38개 업종이 민주화 노조를 설립 중”이며 “이 가운데 10곳이 노동부 승인을 받아 조합원 모집을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그중 가장 큰 규모의 노조는 1500명의 회원 신청을 받은 ‘신 공무원노조’다.

이 밖에도 행정직과 사무직 근로자를 위한 ‘홍콩 화이트칼라 연합’, 의료계 종사자를 위한 ‘HA 직원 연합’ 등이 설립됐다. 홍콩 의료계에서는 시위대를 지지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에 대한 정부 측 압박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응씨는 신설 노조가 이러한 의료인의 보호우산 역할이 되기 희망한다.

홍콩 사이잉푼 케이크 전문점 와이탕(華爾登餅店)에서 구운 돼지 이모지 모양의 쿠키. | Tal Atzmon/ NTD

“홍콩인들, 민주화 운동 겪으며 서로 더 가까워졌다”

홍콩 시내에서 시위대를 지지하는 노란색 스티커를 단 상점 중 무료 급식을 제공해온 침사추이(尖沙咀) 렁문카페(龍門氷室) 앞에는 사람들의 긴 행렬이 자주 보인다.

플라스틱 플라워는 일부 업소는 사람을 끌기 위해 노란색 상점으로 가장한다고 했다. 이런 경우 네오가이드 팀이 조사한 뒤 그들이 정말 ‘가짜-노란색 가게’라면 지도에 검은색으로 표시한다.

사이잉푼 지역에 있는 와이탕 제과점은 올여름부터 정부에 대한 항의 구호를 내걸고 월병과 쿠키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20% 증가했다고 업주 나오미 쉔씨는 말했다.

쉔씨는 “사람들이 이제 중소 자영업의 중요성을 알게 돼 기쁘다”며 “대중의 지지가 없다면 작은 가게는 문을 닫게 된다”고 전했다.

그녀는 그동안 대형 레스토랑만 찾던 시민들이 노란색 가게를 찾아 준다며 시위가 끝나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제과점을 찾아주기를 바랬다.

홍콩의 한 제과점에서 최근 민주화 시위의 인기 슬로건이 장식된 월병으로 중추절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작은 가게 뒤쪽에서, 홍콩 제빵사 나오미 수엔이 최근의 민주화 시위의 대중적인 구호가 새겨진 월병을 꺼내고 있다. 2019. 9. 10. | Nicolas Asfouri/AFP via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