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에서 대세된 ‘연구소 유출설’…중국 백신외교 먹힐까?

2021년 08월 17일 오후 4:20 업데이트: 2021년 08월 17일 오후 5:55

중국 우한 연구소에서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재차 제기된 가운데, 중국이 ‘책임론’을 잠재우기 위해 백신 외교에 더 힘을 쏟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세계보건기구(WHO) 공동 조사단 일원으로 우한 현지에서 코로나19 기원을 조사했던 피터 벤 엠바렉 박사는 최근 덴마크 공영방송 TV2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바이러스 미스터리’에서 우한 연구소 유출 가능성을 제기했다.

엠바렉 박사는 이 다큐에서 WHO 공동 조사단 보고서 작성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중국 연구팀이 코로나19 기원과 우한 연구소를 연관시키는 내용을 담는 것을 반대했으며, 심지어 보고서에서 언급조차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엠바렉 박사는 또 “박쥐와 상호작용하는 실험실 직원이 최초 감염자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유출됐다는 것과 박쥐로부터 감염됐다는 두 가지 가설을 모두 충족한다”고 말했다.

피터 벤 엠바렉 박사가 2월 9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염 경로를 보여주는 차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 AP/연합

엠바렉 박사의 발언은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소에서 유출되지 않았다는 중국 연구팀의 입장과 반대되며, WHO 공동 조사단을 이끈 미국의 동물학자 피터 다작 박사의 주장과도 대치된다.

우한 연구소와 오랜 기간 연구 협력을 벌인 다작 박사는 실험실 유출설을 ‘음모론’으로 일축해왔으며, 우한 연구소에는 살아있거나 죽은 박쥐가 없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호주 언론은 우한 연구소 과거 영상을 찾아내, 연구원들이 살아있는 박쥐를 연구용으로 사육했다고 보도했다.

미 워싱턴의 비영리 정책연구기관인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스티븐 모리슨 글로벌보건정책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다시 고조된 우한 연구소 유출 가능성과 관련해 중국의 백신 정책을 ‘책임론 무마용’으로 봤다.

모리슨 연구원은 “중국의 백신 공약은 사태 초기 대처 방식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WHO의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방해하고 있어 뭔가 숨기고 있다는 추측과 의심을 자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 7월 WHO의 코로나19 기원 2단계 조사를 ‘정치적 동기’라며 거부했다. WHO는 코로나19 확산 초부터 중국을 노골적으로 편들어 논란이 됐지만, 밀월관계에 있는 WHO의 조사조차 중국은 거부한 것이다.

WHO는 1단계 조사 뒤 실험실 유출설을 사실상 부인하고 동물 감염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며 중국의 입장에 맞는 보고서를 발표하고도 2단계 조사를 거부당했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중국 국가주석. 중국은 당직이 정무직보다 우선이다. | AP/연합

중국은 조사는 거부하지만, 백신 협력에는 적극적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5일 올해 20억회 분의 코로나19 백신을 수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백신의 공정한 배분을 위한 협력체 ‘코백스(COVAX)’에 1억 달러(약 1143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자국산(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을 전 세계에 보급해왔다. 보급 대상은 주로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에 집중됐다.

미국, 영국이나 유럽연합(EU)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중국산 시노팜·시노백 백신은 지난 7월 WHO의 긴급사용 승인도 받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중국산 시노팜, 시노백 백신의 코백스 공급을 환영했다.

시진핑의 20억 회분 공급 발표 나흘 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ASEAN+3(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해 중국이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약 7억 5천만 회분의 백신을 제공했다며 백신 외교의 성과를 과시했다.

모리슨 연구원은 시진핑의 백신 외교 행보가 미국의 코로나19 기원 조사 움직임과 시기적으로 맞물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 2일 미 하원 외교사무위원회 공화당 측 위원인 마이클 맥카울 의원은 ‘코로나19 기원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 2019년 우한 연구소의 생물안전 4등급 실험실이 가동에 들어간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수리에 들어갔다는 점 △중국의 박쥐 및 설치류 바이러스성 병원체 데이터베이스가 갑자기 차단됐다는 점 △우한 연구소 인근 병원에서 코로나19 유사 증상 환자가 급증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연구소 유출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게다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정보당국에 명령한 90일의 코로나19 기원 조사 기한이 마감 임박했다. 미국이 들고나올 카드에 대비해 중국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으로 사전에 ‘호감’을 사려 한다는 게 모리슨 연구원의 견해다.

인도네시아의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 로이터/연합

하지만 중국의 백신 외교는 양날의 검이다. 시노백, 시노팜 백신의 효능이 안정적이지 않아서다. 저렴하게 받아 썼지만, 비싸게 구하는 것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은 백신 수출을 늘리겠다고 공언했지만,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칠레 등 일부 국가는 중국산 백신을 사용한 후 오히려 확진자 수가 계속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해 사용 중단을 고려하거나 일부 중단했다.

태국은 시노백 백신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혼합 접종 계획을 밝혔고, 시노백 백신으로 접종을 완료한 의료진을 대상으로 추가 접종을 시행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정부 역시 시노백 백신을 접종한 의료진을 상대로 모더나 백신을 추가적으로 접종하기로 결정했다. 인도네시아는 2월부터 6월까지 최소 20명의 의사와 10명의 간호사가 시노백 백신을 접종하고도 코로나19에 감염돼 사망했다.

말레이시아 보건부는 공급받은 시노백 백신 접종(1600만 회분)이 끝나면, 화이자 백신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심지어 시노백 백신 접종자를 백신 접종자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싱가포르 보건부 장관은 “현재 중국 시노백 백신이 델타 변이 바이러스를 예방하는데 효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료 및 과학적 데이터가 없다”고 밝혔다.

칠레는 11일부터 3차 백신 접종에 돌입했다. 주요 접종 대상은 중국산 백신 접종자다. 3차 접종에는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화이자 백신을 투입한다.

중국산 백신의 낮은 효능 외에 백신 선진국의 공급 확대도 중국의 백신 외교를 흔드는 요소다.

주요 7개국(G7)은 지난 6월 영국 G7회의에서 국제사회에 최소 8억회분 이상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했다. 미국은 60여 개국에 1억 1천만 회분의 백신을 지원했으며, 내년까지 5억 회분을 저소득국가에 제공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신 지원과 관련해 “미국이 제공한 백신은 무료이고 보상이 필요 없으며, 부가적인 요구 사항과 협박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한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