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탄 만들기보다 더 어렵다”…中 반도체 대약진 참패

차이나뉴스팀
2022년 09월 30일 오후 10:31 업데이트: 2022년 09월 30일 오후 10:31

2018년 4월 찍은 사진 한 장이 이제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난처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시진핑이 우한에 소재한 국유 반도체 회사 창장메모리(YMTC) 산하의 한 기업을 시찰할 때의 사진으로, 당시 YMTC 회장 겸 칭화유니(紫光)그룹 회장 자오웨이궈(趙偉國)이 시진핑을 뒤따르며 안내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7월 26일 중국 재신망은 자오웨이궈가 관련 부서에 연행돼 조사받고 있다고 전했다. 설비 구매, 인테리어 공사 등 일감을 공개입찰을 통하지 않고 자기가 보유한 개인 회사에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오웨이궈는 업계에서 ‘반도체 광인(狂人)’으로 불렸다. 그의 진두지휘하에 칭화유니그룹은 2013년 스프레드트럼(Spreadtrum)을 17억8000만 달러에, 2014년 RDA마이크로(RDA Microelectronics)를 9억700만 달러에 인수한 후 양사를 합병해 반도체 설계전문업체(팹리스)인 유니SOC를 설립했다. 칭화유니는 한때 대만의 TSMC까지 노렸다.

2016년 칭화유니는 메모리업체인 창장메모리(YMTC)를 설립했고 우한신신(XMC·武漢新芯)도 인수했다. 창장메모리의 자본금은 563억 위안(약 9조8500억원), 설립 시 투자계획만 1600억 위안(약 28조원)에 달한다. 2016년부터는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장쑤(江蘇)성 난징(南京),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 7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했다.

2015년 7월에는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을 230억 달러에 인수하려 했으나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면서 포기했다.

칭화유니그룹은 2020년 말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2021년 7월 파산 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가면서 경영진도 줄줄이 퇴출됐다.

이 ‘반도체 광인’의 광적인 행보는 중국 공산당 ‘반도체 대약진 운동’의 축소판이다.

반도체 대약진 운동

시진핑이 창장메모리사를 시찰할 때는 마침 미국 정부가 중국 통신회사인 ZTE(中興)를 제재한 직후였다. 시진핑은 수행한 임원들에게 반도체가 제조업에 있어서 인간의 심장 못지않게 중요하다며 “심장이 강하지 않으면 덩치가 아무리 커도 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수행한 임원들에게 서둘러 기술적 한계를 돌파할 것을 촉구했다.

2014년, 중국 재정부, 중국연초(煙草)총공사 등의 부서가 공동으로 출자해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이하 대기금)을 설립했다. 1기(2014년)에는 1387억2000만 위안, 2기(2020년)에는 2041억5000만 위안을 모금했다. 조성한 대기금은 직간접적인 지분, 채권 등의 형태로 SMIC(中芯國際·중신궈지), 창강메모리, 장전과기(長電科技·JCET), 중웨이반도체(AMEC) 등 다수의 반도체 기업을 지원했으며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만 34개에 달한다.

2016년 대기금은 후베이쯔신(湖北紫芯)와 창장메모리에 각각 141억4000만 위안과 135억6000만 위안을 투자해 각각 49%와 24%의 지분을 보유했다. 2020년 6월, 대기금은 7억 위안을 투자해 유니SOC 지분을 14% 가까이 확보했다. 이는 사실상 투자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시진핑은 모든 힘을 집중해 큰일을 이뤄내는 중국 공산당식의 ‘거국체제’로 1960년대 말 ‘양탄일성’(兩彈一星·원자탄,수소탄,위성)을 개발한 것과 같은 기적을 중국 반도체 업계가 다시 만들어낼 것을 기대하고 있다.

2016년 4월, 시진핑은 전국 사이버 안보 및 정보화 공작 좌담회에서 “핵심기술 연구개발(R&D)이라는 힘든 전쟁을 잘 치러야 한다”며 “가장 강력한 역량을 집중해 난관을 돌파하는 돌격대, 특수부대를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2016년 8월, 시진핑의 제안으로 중국 ‘고성능칩 협의체(HECA)’가 공식 출범했다. HECA는 칭화유니그룹, 창장메모리, SMIC, 중국전자정보산업그룹(CEC), 화웨이, ZTE, 레노버, 칭화대, 베이징대, 중국과학원 마이크로전자공학 연구원, 중국산업정보기술부(MIIT)의 중국통신연구학회(CATR) 등 중국 최고 반도체 산업사슬을 망라하고 있다.

이 외에도 중국 당국의 독려에 힘입어 반도체 회사가 줄줄이 생겨났는데, 2020년 이후에만 7만여 개(2020년 2만3100개, 2021년 4만7400개)가 설립됐다. 그야말로 ‘반도체 대약진’이라 할 수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벤처 캐피탈(VC)이든 사모펀드(PE)든 모두 반도체 사업을 찾았고, 반도체 사업 투자 자문기관도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그리고 사기꾼의 그림자도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사기꾼과 도적이 횡행하는 반도체 업계

중국 반도체 업계에는 사기와 부패가 판을 친다. 우한홍신(武漢弘芯·HSMC)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HSMC는 2017년 11월에 설립된 반도체 업체로, 14나노와 7나노급 반도체 생산라인 구축을 목표로 했다. 우한훙신은 대만 TSMC 출신의 반도체 업계 거물인 장상이(蔣尚義)를 CEO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해 말에는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제조업체 ASML로부터 첨단 노광기를 도입하며 “중국 내 유일하게 7nm급 칩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HSMC의 이 프로젝트 공사는 이미 중단된 상태다. 2020년 9월 중국 증권시보는 공사 현장을 답사한 결과 기본 철구조물 공사 외에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전했다.

증권시보에 따르면 HSMC의 배후에는 ‘짝퉁 중앙기업’과 최근 등록 말소한 사회단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 국가의 반도체 대기금을 노린 단체였다.

2022년 7월, 중국 반도체 분야에 갑자기 반부패 바람이 불었다. 반도체 대기금과 관련된 인사들이 잇따라 조사를 받았다.

7월 15일 루쥔(路軍) 전 반도체 대기금 관리회사(화심투자) 총재가 중국 공산당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당기율위) 감사팀에 연행된 데 이어 7월 30일 딩원우(丁文武) 반도체 대기금 총경리가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딩원우는 우한신신, 창장메모리, 반도체 대기금 등의 임원을 지냈다.

최근에는 런카아(任凱) 화신투자관리 부총재가 기율 및 법률 위반 혐의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다. 그는 국가개발은행 부총재, SMIC 비상임 이사를 겸하고 있다. SMIC는 9월 16일 이 같은 사실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했다.

“원자탄 만들기보다 더 어렵다”

반도체 대약진 운동으로 요란을 떨었지만 중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은 참담하다. 중국산 반도체는 양적으로는 중국 수요량의 90%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질적으로는 여전히 14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올해 제로(0) 코로나 정책 때문에 줄줄이 부도 사태를 맞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반도체 관련 업체 3470개가 문을 닫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생산량도 대폭 감소했다. 8월 반도체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24.7% 감소했고, 지난 8개월 동안 중국의 총 반도체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10% 줄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중국 반도체 사업에 대한 견제도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8월 2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와 과학법안(The CHIPS and Science Act of 2022)’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반도체 관련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설립하도록 장려하고,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10년간 중국 공장에 28나노급 이상의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같은 달, 미국 상무부는 3나노급 이상의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전자설계자동화(EDA) 소프트웨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금지 목록’에 포함했다. 9월에는 AMD와 엔비디아(NVIDIA)의 고급 인공지능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제한했다.

갈수록 더 조이는 미국의 반도체 포위망에 대응해 시진핑은 기술 돌파의 희망을 거국체제에 걸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 9월 6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면심화개혁위원회 회의에서 ‘핵심 기술을 돌파하기 위한 신형 거국체제’에 관한 문서를 승인했다. 시진핑은 회의에서 “모든 힘을 집중해 큰일을 이뤄낼 수 있는 사회주의 제도의 현저한 장점을 발휘해 중대한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 당과 국가의 지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중국 언론은 거국체제가 반도체 기술 난관을 돌파하는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증권시보는 2018년 보도에서 산업화된 반도체 산업은 ‘양탄일성(兩彈一星)’과는 전혀 다른 경제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원자탄을 만드는 데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목표인 만큼 비용과 제품의 후속 업그레이드 문제는 기본적으로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반도체를 만드는 데는 성공의 기준이 지극히 까다롭다. 반도체는 생산해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상대보다 빨리 생산해야 하고 또 더 낮은 비용과 더 높은 수율로 생산해야 한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이긴 자는 반도체 시장을 독점하게 된다.

또한 양탄일성에 대한 자금 투입은 일회성이지만 반도체는 수십억에서 수백억 달러를 투자한다 해도 개발, 양산, 시기 3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되지 않으면 이윤을 남길 없어 ‘실패’로 귀결된다.

그래서 일부 중국 학자들은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실토한다.

류야둥(劉亞東) 난카이대 신문미디어학원 원장은 한 강연에서 “원자폭탄 제조의 난도를 1이라고 하면 유인우주선은 10, 항공엔진은 50, 반도체는 100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류야둥은 “이 작은 칩은 크기는 손톱만 하지만 모든 인류 공업 문명의 집대성이다. 너무 너무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