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당서기의 승진으로 드러난 중공의 3가지 숨은 규칙

웨산(岳山)
2021년 05월 5일 오후 12:51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7

지난해 3월 우한(武漢) 지역에서 전염병이 크게 돌던 때, 낙하산으로 우한시 시 위원회 서기를 맡았던 왕중린(王忠林)이 지난 1일 후베이성(湖北省) 부서기, 성 정부 당서기를 맡게 됐다. 중공의 관례에 따라 그는 왕샤오둥(王曉東)의 뒤를 이어 후베이성 성장이 된다.

우한에 낙하산으로 오기 전 관료사회에서 어두운 역사를 쓰기도 했지만 유명하진 않았던 왕중린의 승진에는 중공이 사람을 쓰는 세 가지 숨은 규칙이 적용됐다.

새로운 숨은 규칙 하나: 전염병 틈타 승진하기

왕중린의 경우 ‘전염병 틈타 승진하기’에 해당한다. 중공의 한 전문가는 방역으로 얼마큼의 GDP를 창출했다며 양심적인 말이 아닌 진실을 말한 적 있다. 중공 정부와 일부 배경이 있는 사람들은 전염병을 틈타 큰돈을 벌었고, 관료사회에서도 전염병을 틈타 승진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이게 최근 2년 동안 불붙었던 하나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예를 들어 후베이성 상무위원 겸 기율위원회 서기를 지낸 왕리산(王立山)은 최근 상경해 중공 중앙기율위원회 주재 인민대표대회 기율검사감찰팀장 겸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기관 당조 멤버가 됐다.

또 지난해 전염병 발생 기간 낙하산으로 후베이성 상무위원과 성 위생건강위원회 주임을 겸했던 왕허성(王賀勝) 국가 위생건강위원회 부주임도 최근 귀경해 신설된 ‘국가 질병 예방∙통제국’ 초대 국장을 겸임하게 됐다.

잉융(應勇) 현 후베이성 당서기는 시진핑의 옛 부하로, 20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진입이 유력한 인물로 꼽혀 왔다.

누구는 기쁘게 됐고 누구는 근심만 쌓여간다. 원래 후베이성과 성도 우한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후베이 F4’, 당시 후베이성 서기 장차오량(蔣超良), 후베이성 성장 왕샤오둥, 우한시 서기 마궈창(馬國强), 우한시 시장 저우셴왕(周先王)은 시진핑 중앙 정부에 의해 산산이 조각났다.

장차오량과 마궈창은 면직됐으며 저우셴왕은 한직으로 옮겨졌고 왕샤오둥도 실각할 예정이다. 내부적으로는 전염병 통제 불능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전염병 통제 불능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면 사실 거국적인 체제 아래 병원∙지방 위생건강위원회 부서∙질병 통제 부서부터 중앙∙국무원 1급 부서∙중공 최고위층까지 중공 전체가 공모한 은폐가 전염병의 전 세계적인 확산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중공 체제 아래 숨어있는 규칙에 따라 이 네 사람은 내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시진핑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데다가 4명이 관료사회에 각각 후원자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진핑은 이 4명의 처리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장차오량과 마궈창 처리의 다음 단계를 찾아볼 수 없는데, 이들이 당을 대신해 뒤집어쓰는 공로를 세웠기 때문에 공으로 죄를 상쇄한 것이다.

관영매체는 왕중린에 대해 “방역에 있어 초극강의 실행력을 지녔다”고 치켜세웠는데, 여기서 말하는 실행력이란 당의 의지대로 사회를 안정시키는 것이고, 초극강의 힘이란 강경함이다.

왕중린이 우한에 부임했을 때 우한에서 전염병 실태를 보도하던 시민 기자 팡빈(方斌) 등은 이미 붙잡혀 있었고 변호사 출신 시민기자 장잔(展)은 5월에 붙잡혔다.

왕중린이 맡은 가장 중요한 임무는 바로 상부에 발맞춰 계속 전염병 사태의 진상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중공 최고위층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정치적 안정이지, 우한에서 몇 명이 감염됐는지 혹은 몇 명이 죽었는지 당으로서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숨은 규칙 둘: 충성심 표현이 지나칠수록 승진하기 쉽다

원래 관료사회 파벌 중 시진핑 사단과 인연이 없던 왕중린은 톈진시 서기 리훙중(李鴻忠)과 같은 ‘권력영합파’(鑽營派)로,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충성을 다해 승진했다.

왕중린을 일약 스타로 만든 것은 당과 시진핑 핵심에 대한 그의 공개적인 충성 행보다.

왕중린이 부임할 즈음이 바로 전염병이 피크에 달했을 때로, 국민들은 도탄에 빠져 처참한 상태였다.

3월 시진핑의 우한 방문을 앞두고 왕중린이 우한 사람들에게 “당에 감사하고, 시진핑에 감사하라”고 얘기했다가 파문이 일어나며 비난 여론이 들끓자 결국 당국이 긴급히 ‘진화’에 나서 기사를 철회했고 왕중린은 “인민에 감사한다”고 말을 바꿨다.

왕중린의 말 바꾸기는 쇼일 뿐 대중에게 효과는 없었다. 시민 기자 장잔이 우한 사람들을 인터뷰한 영상을 보면 민의를 알 수 있다. 영상 속 우한 사람은 “감사는 개뿔”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왕중린의 충성 수법은 당시 실패작으로 여겨졌다. 일각에선 방문을 준비 중인 시진핑을 위한 구덩이를 파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금 보니 왕중린의 이런 수작이 시진핑의 입맛에 잘 맞았고 잘 먹혔다. 이런 관리야말로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인가 요즘 온 조정이 ‘아부충’으로 가득하다.

숨은 규칙 셋: 인권 박해. 악행으로 얼룩져있어야 중용된다

왕중린이 성 부서기에 오르자 후베이성 관영매체는 그를 중공 18차 당대회 이후 후베이성 정부 당서기에 직접 오른 첫 우한시 당서기라고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관영매체는 왕중린이 공안 조직에서 여러 해 동안 근무했다며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집행이 엄격하고 신속하며, 기풍이 당당하고, 강경하다는 게 항상 그에게 붙는 수식어”고 “짜오좡(棗莊)시 교통경찰 파견 대장으로 있을 때 왕중린은 매일같이 40분씩 현장 근무를 섰다”고 전했다.

과거 낙마한 수많은 고위 관료들이 낙마하기 전엔 모두 ‘훌륭한 당원’이었으며 관영매체는 수많은 귀감이 되는 업적을 만들어 냈다. 이 같은 치켜세우기 보도는 왕중린의 미래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왕년의 왕중린에게는 사실 굉장히 어두운 역사가 있다.

올해 59세의 왕중린은 산둥(山東)성 페이(費)현 출신으로, 1980년 9월부터 1984년 7월까지 화둥정법학원(華東政法學院) 법률과 형법을 전공했다. 즉 처음부터 사회 안정 유지 조직 관료의 싹이었던 셈이다.

1984년부터 2011년까지 왕중린은 짜오좡시에서 근무했으며 그곳에서 여러 직무를 거쳤다. 그리고 지난해 2월 13일 후베이성 상무위원과 우한시 당서기 자리를 이어받았다.

왕중린은 산둥성 텅저우(滕州)시 당서기 시절, 부패를 폭로한 치충화이(齊崇懷) 전 중국 유명 기자의 박해에 가담해 인권 악당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치 씨는 2004년 12월 26일 겹겹이 쌓인 봉쇄를 뚫고 여성 아나운서가 시장의 침대에서 죽었다는 심층보도를 내면서 중공 산둥성 성 위원회의 불만을 사게 됐으며 중앙 선전부에 달려가 이 사실을 고발했다. 치 씨는 이때부터 우관정(吳官正·이후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 당시 산둥성 당서기를 포함한 산둥성 고위 관료와 왕중린 당시 텅저우시 당서기의 미움을 샀다.

치 씨는 텅저우시를 조사하던 중 왕중린 당시 서기의 부패를 건드렸다. 그는 당시 텅저우시 시 위원회, 시 정부청사의 초호화 건물 및 광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2007년 6월 4일, 이 사진들이 관영매체의 부패 척결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수많은 사이트 게시판으로 순식간에 퍼졌다.

텅저우시 고위 관료들의 부패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텅저우시 시 위원회와 시 정부가 발끈했고 텅저우시 공안국 ‘국가 안전 보위’ 대대, 텅저우시 공안국 형사대대가 지난(濟南) 지역으로 건너가 치 씨를 체포했다.

2008년 5월 치 씨는 당국으로부터 사취 협박죄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 5월 13일 치 씨의 재판 당시 텅저우 경찰 측은 경계태세를 높이며 120여 명의 경찰을 출동 시켜 경계했다.

왕중린 텅저우시 당서기, 텅저우시 선전부, 공안국, 검찰, 법원의 주요 관료들이 총출동해 법정 옆방에 모여 재판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재판은 오후 11시까지 16시간 동안 진행됐다.

2011년 복역 만료를 앞두고 치 씨가 자신이 고문을 당했으며 심지어 죽을 뻔했다고 외부에 밝히자 갑자기 징역 8년의 형이 더해졌다.

장민(張敏)이 쓴 ‘양심수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딸’이란 책에서 치 씨의 아내 쟈오샤(焦霞)는 인터뷰에서 왕중린이 당시 그에게 ‘당신 남편이 살아나오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10년 8개월의 억울한 옥고를 치른 치 씨는 2018년 3월 24일 백발이 되어 출소했다. 그러나 치 씨를 모함한 왕중린 텅저우시 서기는 이후 단숨에 지난시 서기로 승진해 ‘위기가 닥치자 임명을 받아’ 우한시 서기를 지낸 데 이어 이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

물론 왕중린 같은 사람이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한, 인권 박해는 치 씨 한 명에 국한되지 않고 파룬궁 수련생, 기타 권익 보호 인사 등을 포함할 것이다.

이런 부패 스캔들이 인터넷에 떠돌고, 정의로운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중공의 인권 악당이 승진을 거듭한다는 것은 이 체제가 퇴보하면서 소인이 뜻을 얻고 나쁜 사람이 득세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이런 암묵적인 규칙의 적용은 신장(新疆) 지역의 가혹한 관리, 천취안궈(陳全國)가 중용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오늘날 이 암묵적인 규칙이 거리낌 없이 명시적인 규칙으로 바뀌어 활개를 치는 것은 사실 역대 왕조가 몰락하던 때의 모습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