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로 경제 불확실성 확대…한국 경제 문제없나

이윤정
2022년 04월 6일 오후 8:25 업데이트: 2022년 04월 7일 오전 9:22

中 코로나 봉쇄, 美 금리 인상, 엔저 등 동시다발 리스크
한국, 정권교체기 겹쳐 내우외환 직면…위기관리 중요”
“해외 의존도 높은 한국, 최악의 상황 대비해야”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불확실성이 지속 확대하고 있다. 이 속에서 정권교체기까지 겹친 우리나라로서는 경제 운용에 공백이 우려되는 등 내우외환의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한 무역적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 불안, 국내 물가 상승 등 동시다발 리스크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3월 18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미 연준 금리 인상 등 주요국 통화정책 전환이 개시된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영향으로 글로벌 공급망 차질,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우려 등이 심화하면서 원자재·금융시장 변동성이 더욱 증가하는 등 불확실성이 지속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수 여건에 대해서도 “최근 고용 증가세 확대가 이어지고 수출도 개선세를 지속하고 있으나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 등에 따른 내수 회복 제약이 우려된다”며 어둡게 전망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3% 전망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당초 수출 실적, 민간소비 회복 등을 근거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3%대로 예측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세계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질 것이란 관측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LG경제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은 2.8%,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2.7%로 성장률 전망을 제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교역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은 데다, 미국이 물가 상승에 대응해 공격적인 금리인상 등 과도한 긴축 행보를 보이면서 경기 침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외 리스크 고조…정권교체기 위기관리 중요

3월 28일 코로나19 봉쇄령이 내려진 중국 상하이에서 보호복을 입은 경찰이 황푸강을 건너 푸둥신구로 통하는 터널 통행을 통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설상가상으로 중국의 코로나19 확산도 국제 공급망 차질과 물류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수도’로 불리는 인구 2500만 명의 상하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지난 3월 28일부터 무기한 봉쇄에 돌입했다. 코로나 방역 조치로 트럭 운행에 차질이 생기는 등 육상 운송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상하이항의 선박 선적·하역 정체도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육·해상 물류난은 중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p 하락하면 최대 교역국인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5%p 하락 압력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 속도도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3년 만에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데 이어 연말까지 6회 금리 인상을 예고한 바 있다. 이처럼 미국이 치솟는 물가에 대응해 긴축 행보에 나서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속하고 있다.

최근 일본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점도 우리나라 수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엔저 현상이 장기화할 경우 일본과 수출 경쟁을 벌이는 우리나라 품목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교체기라는 국내 상황도 위기 상황 관리에 대한 염려를 낳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미 금리 인상 등의 대외적 파고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와중에 이에 대처할 정책컨트롤 타워 부재는 주요 정책 추진과 정교한 경제 운용을 약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역수지도 연속 적자

국제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가 급등하면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던 무역수지마저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수출로 번 돈보다 수입으로 나가는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수출 실적은 좋지만, 수입액이 더 큰 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 무역수지는 1억4천만 달러(약 1702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3월 수출액은 사상 첫 13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수입액도 역대 최대를 기록하면서 무역수지는 적자가 났다. 앞서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달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냈다. 2월에도 적자를 내다가 막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주요 원인이다. 지난 3월 유가(두바이유 기준)는 지난해 3월 배럴당 64.44달러에서 지난달 110.93달러로 72% 올랐다. 우리 정부의 코로나 극복을 위한 확장재정으로 재정 적자가 고착화하는 가운데 무역도 적자를 기록하는 재정·무역 쌍둥이 적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수출 기업 및 현지 진출 기업에 직격탄

수출화물 선적 장면 |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두 달째 접어들면서 국내 산업계의 피해도 가중되고 있다.

물류난에 서방의 대러 경제 제재까지 겹치면서 국내 수출 기업과 현지 진출 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 수출에 차질이 빚어졌고 반도체 업계는 원자재 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 LG전자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현지 사업에 타격을 받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3월 20일 자사 글로벌 뉴스룸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모든 선적을 중단한 상태”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해상 물류 상황이 악화한 게 원인이다.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에서 TV 공장을 가동 중이던 삼성전자는 이보다 앞선 3월 5일, 러시아행 제품 선적을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도 전쟁 장기화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도체 필수 소재인 네온, 크립톤 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자동차업계도 아우성치긴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이 현지 물류체계 마비로 가동을 멈춘 데 이어 국내 공장까지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전반적인 물량조절이 불가피해졌다. 최근 중국산 부품 공급 차질까지 겹치면서 주요 완성차 조립라인의 가동을 일부 조정했다.

한국무역협회는 장기적인 반도체 공급 불안,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상승, 중요 부품 공급 차질에 따른 생산 차질 등 자동차 업계의 고통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당장 러시아에서의 자동차 수요도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는 러시아 자동차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치솟는 국제 유가에다 원자재 가격의 추가 상승이 지속하면 원가 부담 및 공급망 차질에 따른 피해가 전 산업에 확산하는 도미노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물가상승률 4%대…서민경제 위협

지난해부터 시작된 물가 오름세도 한층 더 가팔라지며 서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약 10년 만에 4%대로 치솟았다. 통계청이 4월 5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6.06(2020년=100)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 상승했다.

물가가 4%대 상승률을 보인 것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지난해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로, 9년 8개월 만에 3%대로 올라섰다. 이후 5개월간 3%대를 유지하다 지난달에 4%를 넘어선 것이다.

석유류 등 공업제품과 외식 등 개인 서비스 품목이 전체 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 가격이 눈에 띄게 상승하면서 빵(9.0%) 등 가공식품 가격은 6.4% 올랐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 따르면 밀은 지난해 3월 t당 234달러(약 28만 원)에서 올해 3월 7일 475달러(약 58만 원)로 두 배 넘게 뛰었다.

지난 2020년 이후 사상 최대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계와 소상공인들의 부채폭탄이 터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2020년~2021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24.6%p 증가했다. 외환위기(13.4%p), 신용카드 사태(8.9%p), 글로벌 금융위기(21.6%p) 때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대내외 충격이 발생하면 그만큼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 연준이 올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한 가운데 금리 인상의 영향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지난 2월 기준 76.5%로,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0년 이후 빚을 늘려온 가계와 자영업자, 한계기업 등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되는 이유다.

세계 경제, 전쟁·코로나 이중고…“한국도 최악의 상황 대비해야”

무디스 로고 | 연합뉴스

국제 신용평가사인 피치와 무디스는 지난 3월 17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7%로 0.3%p 낮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경제 성장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주요 20개국(G20)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4.3%에서 3.6%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기존 예상보다 1%p 하락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인한 경기 침체 속에서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지난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에 노출된 것이 아니라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지난 300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던 주요 원인은 전쟁과 전염병이었다”면서 “최근 2년간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세계 경제 흐름을 바꿔놨다”고 설명했다.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저소득 국가가 맞닥뜨릴 경제적 타격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히 “금리 상승, 에너지 가격 폭등, 물가 상승,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악화 등 ‘4중고’를 겪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와 같이 경제 구조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연구원이 3월 22일 진행한 ‘우크라이나 사태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전망과 영향’ 세미나에서 김석환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는 “한국처럼 해외 의존 및 무역이 높은 국가에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단순히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글로벌 교역에서 차지하는 규모나 GDP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전략적 의미를 갖는 상품 및 핵심 금속 자원, 인력 등이 심각한 교란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날 김학기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러시아+중국’ 대 ‘미국+EU 등 서방 국가’ 간 패권 경쟁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세계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 국익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