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發 곡물 가격 급등·수급 불안…한국 식량안보 이상 없나

이윤정
2022년 03월 8일 오후 11:01 업데이트: 2022년 03월 8일 오후 11:01

한국 식량자급률 45.8%, 곡물자급률 21%…OECD 최저 수준
식습관 변화로 쌀 소비 감소, 밀·육류 소비 급증
쌀 자급률마저 흔들…경지면적 9년째 감소, 쌀 비축량 역대 최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세계 식량 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으면서 글로벌 식량 위기가 임박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속에서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도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식량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기상 이변, 코로나 19 펜데믹 등의 영향으로 2020년 하반기부터 지속해서 상승해왔다.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남반구에서 계속된 가뭄으로 옥수수 가격이 상승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가 잇따르면서 농산물 수확량이 감소하는 추세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교역망이 붕괴할 조짐이 보이자 베트남·러시아·카자흐스탄 등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자국의 식량 안보를 위해 수출을 한때 중단하면서 가격 급등세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2년 2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40.7로 1년 전보다 20.7% 급등했다. 1996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고 수준이다. 식량가격지수는 2002∼2004년 식량 가격 평균을 100으로 정하고 현재 가격 수준을 나타낸 수치다. 세계곡물가격지수는 2020년 1월 100.7에서 2022년 1월 140.6으로, 2년 만에 40% 가까이 올랐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이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우크라이나 사태 발생 후 상황은 더 악화하며 세계 식량 가격은 기록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헝가리는 모든 곡물 수출을 중단했고 터키도 밀가루 수출 통제에 나섰다. 몰도바도 이달부터 밀, 옥수수, 설탕 수출을 일시 중단했다. 주요 곡물수출국들이 자국의 식량 안보를 위해 수출 중단에 나서면서 향후 곡물 가격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빵을 비롯해 밀가루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제품 가격 인상이 우려되고 있다. | 연합

식량 절반 이상 수입…식습관 서구화도 한 몫

국제 식량 가격은 치솟고 있지만, 국내 자급률은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국내 식량자급률 및 곡물자급률 현황’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식량자급률은 45.8%다. 전체 식량 작물 수요량을 100이라고 했을 때 45.8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54.2는 수입에 의존한다는 의미다. 2009년 56.2%에 비해 10년 새 10.4%p나 하락했다. 우리가 먹는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식량자급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데는 한국인의 식습관 변화로 쌀이 주식(主食)에서 밀려나고 있는 점도 한몫을 한다.

우리나라 쌀 자급률은 통상 100%가 넘었지만, 국민들의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먹거리가 다양해지면서 가구 부문 쌀 소비량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1985년 128kg이던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2021년 56.9kg까지 줄었다.

통계청이 지난 1월 27일 발표한 ‘2021년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 부문의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9kg으로 2020년(57.7kg)보다 1.4%(0.8kg) 감소했다. 가구 부문 쌀 소비량은 쌀로 직접 밥을 지어 먹는 것과 외식을 집계한 수치다. 가정간편식(HMR)·배달음식 등을 통한 쌀 소비는 포함하지 않는다. 30년 전인 1991년 쌀 소비량(116.3kg)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줄었다.

지난해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을 계산해보면 155.8g이 나온다. 햇반 등 즉석밥 한 공기가 210g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1인당 하루에 4분의 3공기 정도를 먹는 셈이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반면 육류와 밀 소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1인당 연간 고기 소비량은 1970년 5.3kg에서 2020년 54kg으로 급증했다. 식량 자급률보다 곡물 자급률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곡물 자급률은 축산물(소·돼지·닭 등)을 기르기 위한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한 자급률이다. 사료용 곡물이 없으면 축산물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곡물 자급률이 식량 위기 현실을 더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1%로, 2009년 29.6%에서 10년 사이에 8.6%p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호주는 275%, 프랑스 168%, 미국 133% 등 주요 선진국 대부분 곡물 자급률은 100%를 넘어서고 있다.

빵, 면, 과자의 주원료인 밀도 1인당 연간 소비량이 33kg으로, 지속해서 증가 추세지만 국내 밀 자급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2011년 1.9%에서 2020년에는 0.8%로 떨어졌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곡물 수급안정 사업 정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밀 자급률은 0.5%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매년 1700만 t 이상의 곡물을 수입하고 있는 세계 7대 식량 수입국이기도 하다. 식량 생산성은 지속해서 줄고 있다. 이래저래 국제 곡물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라면을 고르고 있다. | 연합

밀 가격 폭등…수입국 다변화 필요성도 제기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하자 유통업계에서는 빵 가격 인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밀 주요 수출국인 두 나라 간의 전쟁으로 밀가루 가격 인상을 비롯해 라면·과자·피자·햄버거 등 밀가루를 주원료로 사용하는 제품 가격 인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예상대로 최근 밀 가격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3월 3일(현지 시간),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CBOE)에서 1부셸(약 27kg)당 밀 가격은 전날 대비 7.1% 상승한 11.34달러를 기록했다.

미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량은 전체 글로벌 밀 수출량의 29%를 차지한다. 비옥한 흑토 지대를 자랑하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밀 재배 지역과 항구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에 몰려 있다. 이번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곡물 농작은 멈췄고 미국 등 서방국가의 대러 제재로 러시아산 식량 수출마저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밀 자급률이 1%에도 못 미치는 우리나라에서 빵을 비롯한 식품 가격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서방 일부 국가에 편중된 수입국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미국·호주·우크라이나 등 3개 국가에서 밀을 80% 가까이 수입한다. 만약 이들 국가로부터 식량 수입에 차질이 생긴다면 지난해 요소수 대란보다 훨씬 더 심각한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밀을 99% 이상 수입하는 현실 속에서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 우리나라 시장까지 요동칠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쌀 자급률마저 떨어져

설상가상으로 국내 식량 자급률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쌀 자급률도 100% 이하로 떨어졌다. 최근 2년간 장마, 태풍 등 기상 악화로 흉년이 들면서 정부 비축 국산 쌀 재고도 역대 최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기준 식량자급률은 45.8%지만, 쌀을 제외할 경우 10.2%에 지나지 않아 쌀 자급률이 떨어질 경우 식량 상황은 악화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종합감사를 앞두고 제출받은 ‘5년간(2015~2020년) 쌀 식량자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쌀 자급률은 101%였으나 2020년에는 92.8%로 8.2%p나 감소했다.

국내 쌀 생산량도 지속해서 감소 추세다. 전 세계가 기상 이변으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지난 2년간 극심한 쌀 작황 부진을 겪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생산량이 2022년 381만5000t에서 2031년 349만1000t으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2020년 환경부가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 말에는 쌀 생산량이 지금보다 25% 감소할 것으로 관측했다. 쌀 생산량이 줄면 농산물 수입 의존도를 더욱 높이게 되고 식량안보에 적신호가 켜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내 쌀 생산량도 감소하는 추세다. | 연합

식량 자급 비상상황에 대비한 정부 비축미도 역대 최저 수준이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2011년~2021년 9월) 가운데 국산 쌀 재고가 가장 많았던 때는 2017년 139만t이다. 그러나 2021년 9월 말 기준, 국산 재고는 15만t으로 2017년 기준 9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식량안보 차원에서 최소한 연간 소비량의 17~18% 곡물을 상시 비축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국내 최소 비축미 물량은 연간 70만t~80만t이다.

식량 위기 대비해야

식량 비축량을 늘리기 위해 새만금 일대에 곡물 저장고를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하면서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방안의 하나로 새만금에 식량자원의 저장·가공·비축 단지인 ‘식량안보 콤비나트’ 건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새만금 신항만 배후단지에 곡물 터미널과 가공기지 등을 건설해 동북아시아의 곡물 거래 허브로 만들자는 것이다.

김 사장은 당시 매체 인터뷰에서 식량 위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전염병과 이상기후 등으로 주요 곡물의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는 등 국제곡물시장이 불안정하다”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 속에서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수출제한 조치를 시행하면서 국가 차원의 공공 비축정책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자급률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경지면적부터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의 논과 밭 등 경지면적이 9년 연속 감소하고 있어서다.

통계청이 지난 2월 25일 발표한 ‘2021년 경지면적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경지 면적은 154만7000ha(헥타르·1ha=1000㎡)로 전년 대비 1.2%(1만8000ha) 감소했다. 1년 새 여의도 면적의 62배에 해당하는 경지가 사라진 셈이다. 통계청이 2012년 위성영상 촬영을 통해 조사를 진행한 이래 최저치다.

쌀 소비가 줄어든 데다 고령화, 일손 부족으로 유휴지가 확대되는 점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도로, 건물을 짓기 위해 농지를 없애거나 재생에너지 확대 움직임에 따라 태양광 발전을 늘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

‘쌀 생산조정제’를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쌀 생산조정제는 논에 벼 대신 콩 등 다른 작물을 심을 경우 일정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구조적인 생산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벼 재배 면적을 줄이고 콩 등 밭작물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 2003~2005년 처음으로 도입돼 이미 여러 차례 시행된 정책이기도 하다. 정부는 쌀 공급과잉과 소비 감소로 가격이 급락하자 2018~2020년 한시적으로 쌀 생산조정제를 도입해 콩 생산량이 증가하고 쌀값을 안정화하는 효과를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