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살던 ‘장수말벌’이 미국에 놀러가서 벌어진 일

김연진
2020년 11월 2일 오후 1:51 업데이트: 2022년 12월 13일 오후 5:13

미국 워싱턴주의 한 양봉 농가에서 꿀벌 6만 마리가 몰살당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꿀벌의 머리가 통째로 잘린 채 죽었다는 것이다. 6만 마리 모두 머리가 없었다. 하나 같이.

꿀벌 떼죽음의 범인으로 지목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장수말벌’로 불리는 토종 말벌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장수말벌은 현재 미국 전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WSDA

어떻게 장수말벌이 미국으로 넘어갔을까.

미국 abc뉴스는 “한국과 일본, 중국, 태국 등 아시아에서 넘어온 컨테이너에 장수말벌이 섞여서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장수말벌은) 꿀벌의 5배가 넘는 거대한 크기로, 꿀벌 수만 마리를 삽시간에 몰살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장수말벌은 성체의 몸길이가 5~6cm에 달한다. 또한 꿀벌의 천적으로 알려져 있어 양봉 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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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을철에는 장수말벌이 대대적인 ‘꿀벌 사냥’에 나서기 때문에 꿀벌들은 속절없이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사는 꿀벌들은 오랜 시간 천적인 장수말벌과 맞서 싸우면서 특별한 대응책을 마련했다. 소위 말하는 ‘필살기’다.

장수말벌이 벌집 안으로 침입하면 수많은 꿀벌들이 장수말벌을 둘러싼다. 공처럼 둘러싼다고 해서 ‘꿀벌 공’이라고 불린다.

꿀벌 공 / wikipedia

꿀벌 공을 형성하면 단 5분 만에 내부 온도가 섭씨 46도까지 치솟는다. 그러면 장수말벌은 찜통 안에 갇힌 것처럼 ‘쪄 죽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꿀벌이 죽어나가지만, 천적에 대항하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문제는 미국 꿀벌들에게는 이런 필살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장수말벌의 위력을 처음 겪어본 미국 꿀벌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장수말벌은 강력한 턱 힘을 이용해 꿀벌의 머리, 목 등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한다. 이런 이유로 꿀벌 수만 마리의 머리가 잘린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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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미국에서는 생태계와 양봉 농가를 지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장수말벌 퇴치를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미국 농업 당국은 장수말벌 3마리를 생포,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벌집을 찾았다.

이후 전신 보호 장구를 착용한 뒤, 대형 진공청소기를 동원해 장수말벌 퇴치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