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 잘못 알고 있는 ‘전통 사회에서 아내의 지위’

2022년 04월 4일 오후 2:04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6:13

“복사나무의 아리따움이여, 곱디고운 꽃이로세. 이 아가씨 시집가면 집안을 화목하게 하리라(桃之夭夭, 灼灼其華, 之子于歸, 宜其室家).”

‘시경(詩經)’ 주남(周南)편에 실린 ‘도요(桃夭)’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는 3천 년 전 조상들이 소박하지만 열정적인 감성으로, 시집가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복숭아에 비유해 찬미한 노래다. 가정을 꾸리면 남편은 밖에서 생업에 충실하고 아내는 집에서 남편을 도와 아이를 가르치며 한평생 동고동락한다. 이것이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전통 가정의 전형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삶이 여성의 비극으로 간주된다.

전통 사회의 여성의 삶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은 자못 부정적이다.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규범 속에 갇혀 언행 하나하나에 구속을 받고 출가하면 남편의 부속품이 돼 시집살이로 평생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통사회의 도덕 규범과 인륜을 ‘여자를 옥죄는 굴레’쯤으로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고서나 전통문화를 통해 선인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해보면 전통 가정과 부부상에 관한 진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은 가정을 떠받치고 아내는 가정을 다스린다

경전이나 역사서에서는 부부를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륜 관계로 본다. 즉, 부부가 모든 인간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주역(周易)’에서는 “천지가 있은 후에 만물이 있고, 만물이 있은 후에 남녀로 갈려 부부가 있게 되고, 부부가 있은 후에야 부자(父子), 군신 등의 인륜 관계 있게 된다”[1]고 했다. 부부의 관계는 인륜의 시작으로, 이는 ‘사기(史記)’에서 “부부 관계는 인간 도리의 큰 윤리다”라고 한 것과 같다.

‘중용(中庸)’에서는 “군자의 도는 부부에서 시작되며, 그것이 지극한 데 이르면 천지에 밝게 드러난다”고 했다. 옛날 사람들은 부부 관계를 군자 수양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그것의 가장 높은 경지는 천지 간의 정도(正道)와 상통하는 것이었다. 부부 관계에서 부자, 형제자매, 친족 등 일련의 관계가 파생되어 나와 최종적으로 전체 사회관계망을 형성하기 때문에 부부 관계는 전체 가족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부부가 각자의 도리와 본분을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고 가풍이 바로 서고 사회가 안정될 수 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부부의 도는 국가의 흥망성쇠와도 관련된다. ‘주역’에서는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형은 형답고, 동생은 동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워야 집안의 도가 바르게 된다(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而 家道正)”고 했다. 그리고 가정이 바로 서야 천하가 안정된다(正家而天下定矣).

이는 유가에서 강조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사상과 일치한다. 이렇듯 가정과 부부 관계를 중시한 선인들이 남편만 귀히 여기고 아내를 멸시했겠는가?

그렇다면 옛날에는 부부를 어떻게 정의했을까?

‘백호통(白虎通)’에서는 “부(夫)란 돕는다는 뜻이고, 처(妻)란 가지런하게 한다는 뜻이다”라고 정의했다. 즉 남편은 한 집안의 중심으로서 가정을 이끌고 보살필 책임이 있다. 반면 아내는 남편과 동등한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서 남편과 힘을 합해 가정을 잘 꾸려야 한다. 또 아내를 ‘부(婦)’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복무한다’, 즉 집안일을 맡아 하고 가족을 돌본다는 뜻이 있다.

아내는 가정의 재상(宰相)

부부는 한 몸이지만 남자와 여자는 다르고 또 각기 고유한 특색이 있다. 그래서 “일음과 일양을 일러 도라 한다(一陰一陽謂之道)”[4]고 했다. 즉 음과 양이 만물의 근본인데, 이 둘은 특색이 다를 뿐 우열은 없고, 오히려 특색이 다름으로 해서 만물이 생기고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남자는 양을 대표하고 여자는 음을 대표한다. 따라서 남자는 양의 특색에 따라 밖을 주관하고 여자는 음의 특색에 따라 안을 주관한다. 이것은 천지의 도를 본받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남존여비의 악습이 아니다.

‘예기’에서는 “남자는 안을 말하지 않고 여자는 밖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남자는 집안일에 간섭하지 않고 바깥일에 집중해야 하고, 여자는 남편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가사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전통적인 삶을 사는 여자는 평생 집안일에 얽매여 자신의 삶이 없다고 여긴다. 이는 집안일이 바깥일보다 가치가 없다고 단정한 데서 나온 편견이다. 만약 그런 잣대로 본다면 정치나 사업 또는 농사일을 하는 남편도 자신의 삶이 없다고 봐야 하지 않는가. 일 자체에는 가치 차등이 없다. 그것은 달이 해보다 빛이 강렬하지 않다고 해서 보잘것없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달이 없으면, 해가 없을 때와 마찬가지로, 만물을 생육할 수 없지 않은가.

전통적인 부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시대의 사명

주공(周公)이 예악(禮樂)을 만든 후 전통혼례에 많은 의미가 담겼다. 혼례식에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 심지어 죽은 조상에게까지 부부가 서로 공경하고 신의를 지키겠다고 서약하거나, 부부가 일심동체가 되어 고락을 함께하기로 맹세하는 절차 등이 생겨났다. 또한 많은 고전들이 부부의 도와 전통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의식과 ‘예기’ ‘열녀전’ ‘여사서(女四書)’ 등의 고전이 모두 아내의 순종과 효순(孝順)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남편의 사명과 책임을 강조하고 언행을 제약하는 경서·역사서·제자(諸子)·시문이 많다. 사실상 인의예지신도 주로 남자에게 요구하는 덕목이다. 선인들이 제시한 이상적인 부부상은 ‘남편은 의리가 있어야 하고 아내는 순종해야 한다(夫義婦順)’는 것이다. 전통 가정의 부부 관계를 이 틀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자칫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전통적인 부부 관계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부부가 전통 규범을 따르는 것은 도에 순응하고 천리를 따르는 것으로,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어도 지켜야 하는 순리다. 이러한 순리가 순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물질 만능의 가치관에서 움튼 극도의 개인주의, 그리고 진화론과 공산주의 이념이 낳은 무신론과 관련이 있다.

21세기의 이상적인 부부상은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오늘날 왜 이혼율이 이토록 높은지, 왜 가정이 자녀들의 보금자리가 되지 못하는지, 그리고 이 사회가 왜 이처럼 부도덕한지를 성찰할 때 오롯이 드러날 것이다.

– 에포크타임스 전통문화 부흥대회 출품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