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전환점에 선 중국 지도부, 혼란을 바로잡을 것인가

장산(臧山)
2019년 07월 30일 오후 12:28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9

송환법 반대 운동으로 촉발돼 계속되고 있는 홍콩 시위가 위안랑(元朗)역 백색테러 사건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21일 밤, 홍콩 위안랑 전철역에서 흰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괴한들 100여 명이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백색 테러단 배후에는 폭력조직 ‘삼합회’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고 이는 홍콩 시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홍콩 정세가 어떻게 전개되느냐는 홍콩뿐 아니라 중국 정세, 더 나아가 국제 정세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독재 체제의 권력은 최고위층에서 나온다. 하지만 중국은 업무구조가 극도로 복잡하기 때문에 권력자는 관료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독재국가인 중국의 정치는 일정한 규칙하에 변화·발전해 왔다.

이런 관료 시스템이 베이징의 최고 권력자에게 반격을 가하는 사례는 흔히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2016년의 레이양(雷洋) 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2016년 5월, 레이양이 베이징에서 경찰 조사 중 사망한 후 여론이 들끓자, 시진핑(習近平)과 왕치산(王岐山)은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베이징 경찰 측은 이 명령에 격분했고, 말단 경찰관 4천 명의 사직서를 협박용 무기로 삼아 반격에 나섰다.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지도부 집무실이 있는 곳)를 뒤흔든 이 사건에서 중국 공산당 최고위층은 신속히 이들과 타협했다. 베이징 요지의 치안이 이들 말단 경찰관들과 중하급 간부 경찰관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 레이양 사건은 확정 안건으로 처리됐고, 사건 관련 경찰관들은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의 주역은 베이징 공안 시스템 출신의 푸정화(傅政華)였다. 당시 공안부 부부장 겸 중앙 정법위 위원이었던 푸정화는 앞서 수년간 인권변호사와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강경한 탄압을 주도했고, 최고 권력자의 정적들을 감시하는 ‘투명 베이징’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이다.

시진핑은 이 사건에서 타협을 택했지만, 이때부터 본래 장쩌민(江澤民)파였다가 전향한 푸정화를 더는 신뢰하지 않았다. 그해 8월, 중앙정법위 위원에서 밀려난 푸정화는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 공안부에서 면직됐고 실권이 크게 줄어든 사법부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타협한 이 일은 중국 공산당 관료사회 전체에 ‘정권 안전과 정치적 이익으로 압박할 경우 황제도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새로운 본보기가 된 셈이다. 2016년 이후, 공안 시스템 인사들이 중앙 및 각 지역 정법위 위원직을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각 지방정부에서는 (국가 정책과 어긋나는) 지방 정책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으며, 베이징 각 부서와 위원회의 태도 또한 점점 강경해졌다. 결국 레이양 사건은 시진핑 정권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 뚜렷한 전환점이 된 것이다.

중국의 군주제 역사를 보면, 왕조가 처음 창건됐을 때 황제의 권위는 정부 시스템 전체를 관통했으며 각종 정책 및 인사 배치까지 모두 황제 한 사람이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 부서가 확대되고 황제의 실책이 늘어남에 따라, 갈수록 관료 시스템이 황제를 압박하며 국정(國政)을 주도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숭정(崇禎)이나 광서(光緒) 같은 능력 있는 황제도 간혹 있었지만, 그들도 이미 관료 시스템 앞에선 무력했고 왕조가 무너지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어찌하지 못했다.

홍콩의 현 국면은 사실 레이양 사건 때와 상당히 비슷하다.

중국 공산당의 전통적인 홍콩 시정(施政) 시스템은 그들의 견해와 입장을 가지고 있고, 전통적이면서도 익숙한 자신들만의 시정 도구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의 엄청난 이익과 관련이 있다.

현 상황에서, 최고 권력 당국이 모든 시스템에 상방보검(尚方寶劍·상급 기관이 하급 기관에 중대한 문제를 스스로 처리하도록 부여한 권한)을 하사하는 것이 시급하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이에 대한 확답과 명확한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상황을 격화시킬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홍콩 정세는 규모 면에서나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및 향후 중국 국내외 정세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나 모두 레이양 사건의 백배 이상의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이 만약 또다시 타협을 택한다면, 이는 사실상 새로운 정치에 대한 사망 선고인 셈이며, 최고의 권력이 ‘정치 명령이 중난하이를 벗어나지 못하던’ 후진타오나 원자바오 시대의 낡은 테두리 안으로 돌아갔음을 선고하는 것과 같다.

정치이념을 떠나 경제가 쇠퇴하고 민심을 잃고 관리들의 원망이 들끓을 것이며, 이로 인해 사회갈등이 폭발할 것이다. 시진핑이 정권을 잡은 후 실시한 반(反)부패 운동으로 만든 적은 수만 명의 탐관오리가 아니라 전반적인 제도적 부패 시스템이기 때문에, 시진핑이 평화적으로 물러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베이징이 홍콩 시정 시스템의 부패와 혼란을 철저히 해결해서 홍콩의 정치사회 권력을 홍콩시민들에게 넘겨주고, 그 가운데서 개방 사회 시스템을 관리하는 경험을 쌓고 이를 중국 본토에 도입한다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홍콩 사건은 베이징에 도전이자 하나의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극도로 낮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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