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윤석열 후보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서…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최창근
2022년 01월 17일 오전 11:33 업데이트: 2022년 01월 17일 오전 11:33

1월 2주차 리얼미터 조사결과 윤석열 40.6% 이재명 36.7%, 안철수 12.9%
윤석열 상승, 이재명 답보, 안철수 약진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복원 이후 ‘단일화’가 승패 좌우
1997년 DJP연합이냐? 2002년 노무현-정몽준 방식이냐?

1월 17일, 공개된 리얼미터의 1월 2주 차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제3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지지율은 5주 연속 상승하며 2주 연속 두 자릿수 지지율을 얻었다.

리얼미터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의뢰로 1월 10∼14일 전국 성인 유권자 3,0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1.8%포인트), 윤석열 후보는 1월 첫 주보다 6.5%포인트 상승한 40.6%의 지지를 얻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주보다 3.4%포인트 하락한 36.7%에 머물렀다. 두 후보 간 격차는 3.9%포인트로서 윤 후보가 오차범위 밖에서 이 후보를 앞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전주 대비 1.8%포인트 오른 12.9%의 지지를 얻었으며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0.8%포인트 떨어진 2%에 머물렀다. 그 외 기타 후보는 2%, 지지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4.5%, 모름·무응답은 1.3%였다.

일별 조사 결과에서는 주 후반으로 가면서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 사이 격차가 다시 좁혀졌다. 1월 10일 응답자 중 윤석열 후보 지지율은 41.6%를 기록했으나 1월 14일 조사에서는 38.8%로 하락했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1월 10일 37%였고 1월 11일 34.9%까지 떨어졌다가 1월 14일 37.5%를 기록했다. 두 후보 간 격차는 5.7%포인트까지 떨어졌다가 주 후반 1.3%포인트로 줄어들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 단일화를 가정하고 조사한 결과, 단일화 후보가 모두 이재명 후보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를 가정하면 윤석열 45.2% 대 이재명 37%로 격차는 8.2%포인트였다.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를 가정한 조사에서는 안철수 42.2% 대 이재명 34.3%로 격차는 7.9%포인트였다.

윤석열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에는 보수층이 결집되고,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는 중도로의 확장력을 지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후보로 단일화 시나리오에서 이념적 보수층은 윤석열 74.9% 대 이재명 13.6%, 중도는 윤석열 41% 대 이재명 40%의 결과를 얻었다. 안철수 후보로 단일화할 경우 보수층에서는 안철수 54.6% 대 이재명 14%, 중도층에서 안철수 46.7% 대 이재명 34.7%의 결과가 나왔다.

이 속에서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가능성이 부각됐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복원 이후 단일화 사례는 총 4건이다.

1987년 12월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이른바 ‘3김씨’의 분열 속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한 노태우 후보가 36.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듬해 1988년 4월 제13대 총선에서도 민주정의당 125석,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59석, 신민주공화당 35석 등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됐다. 이 속에서 1990년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보수대연합’에 합의, 3당 합당을 통하여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그 결과 김영삼은 거대 집권 여당 대통령 후보로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41.96%의 득표율로 차점자로 33.82%을 기록한 김대중 민주당 후보를 비교적 여유 있게 누르고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제통화기금(IMF) 정국에서 치러진 1997년 제15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이 ‘내각제’를 고리로 단일화를 이뤘다. 당시 지지율에 앞서 가던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에 맞서 진보·보수 이념 차를 뛰어 넘는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지역적으로는 호남에 기반한 새정치국민회의와 충청에 근거지를 둔 자유민주연합 간 연대였다. 김대중-김종필 양당 총재는 공동 내각 구성, 대통령 임기 내 내각제 개헌에 합의했고,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1.6% 포인트 차이로 신승(辛勝)했다. 반면 여권은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가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을 창당하여 분열됐다. 결과적으로 여권 분열, 야권 통합으로 선거 결과가 뒤바뀌었으며 ‘단일화’의 위력을 보여 준 첫 선거였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단일화가 이슈였다. 한국 정당 역사상 처음 도입된 전국 순회경선을 통해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노무현은 후보 선출 후 지지율 하락 문제로 당내에서 후보 교체 여론이 비등했다. 이 속에서 대선 2주를 앞두고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여론조사 방식 단일화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대선 투표 전날 정몽준의 지지 철회 파문이 일었지만, 결과적으로 2002년 12월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게 2.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다.

2012년 대선도 단일화가 관건이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킨 안철수 후보 간 후보 단일화 협상 중 안철수 후보가 사퇴를 선언하며 문재인 후보의 손을 들어줬지만, 선거 과정에서 통합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는 후보 단일화가 만능이 아님을 보여준 사례로 기록됐다.

3월 9일, 실시되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도 단일화 여부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 예상된다. 그중 가장 파괴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윤석열-안철수 단일화 여부이다. 특히, 국민의힘 선대위 파행 사태 속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던 유권자 상당수가 안철수 후보에게로 옮아간 양상이다. 연초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에서 빠진 지지율이 고스란히 안 후보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안철수 후보는 ‘키맨’으로 떠올랐다.

문제는 단일화 조건이다. 1997년 DJP연합 모델과 같은 권력 나누기를 통한 공동 집권 방식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모델과 같은 여론조사 경선 승자는 후보가 되고 패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물러나는 방식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DJP연합 모델에 가까운 ‘대통령-책임총리제’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보들이 권력 분점, 여론조사 문구 등을 놓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양보할 수 있는 자세가 돼 있느냐가 단일화 성공 여부를 가르는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현재까지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는 없다”며 대선 완주 의지를 밝혔다. 1월 16일 KBS ‘일요진단’ 프로그램에 출연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단일화 관련 질문에 “정권 교체를 바라는 야권 지지자들이 과연 어떤 후보가 더 적합한 후보인지, 어떤 후보가 더 확장성 있는 후보인지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진행자가 ‘안일화 발언은 단일화 없이 안 후보가 1등 한다는 말인가, 단일화를 통해 그렇다는 말인가’라고 묻자, 안 후보는 “둘 다의 경우에 해당되니까 그런 말들이 도는 거겠죠”라고 답변했다.

안철수 후보는 “단일화 자체가 정치공학적인 생각들 아닌가. 두 사람이 합치면 지지율이 그만큼 될 것이다(라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또 “사실 유권자에 대한 굉장한 실례다. 유권자를 단순히 수동적인 표로 보는 것인데, 유권자는 만일 단일화가 되면 (지지 후보를) 다시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야권 대표선수로 나가면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 답보 상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간 지지율 ‘시소게임’ 속에서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의 필요성은 점점 부각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