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에겐 자유를” 자녀 셋 데리고 10개국 거쳐 美 망명한 中 아버지

소피아 람(Sophia Lam)
2023년 01월 12일 오후 4:02 업데이트: 2023년 01월 12일 오후 4:02

자유를 갈망하던 한 중국인 가족이 약 3개월에 걸쳐 남미 8개국 등 총 10개국의 국경을 넘나든 끝에 미국으로 망명해 화제다.

자유를 위해 망명길에 나선 이들 가족은 열대 우림을 지나고 물살 빠른 강을 건너며 위험천만한 여정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쑨진차이와 그 가족의 얘기다.

소년이 꿈꾼 세상

열세 살 어린 소년 시절, 쑨진차이는 홍콩의 록밴드 노래를 즐겨 들었다. 중국 본토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사회인 홍콩의 노래들은 자유로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린 소년은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소년이 청년이 됐을 때, 청년은 잠깐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중국 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던 SNS를 사용할 수 있었다. 청년은 중국의 민주화운동인 천안문 사태 관련 자료를 처음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어릴 적 나의 꿈을 이뤄야겠다”고 결심했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현지 시간) 에포크타임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쑨진차이는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과 그의 가족이 목숨을 건 사연을 공개했다.

이날 쑨진차이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오쩌둥 시대의 전체주의로 후퇴 중인 가운데 지난 3년간 중국 본토에서의 강력한 봉쇄 정책까지 겪으면서 중국 탈출을 최종적으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쑨진차이는 자신의 SNS 계정에 “모두가 본 기회는 더 이상 기회가 아니며, 모두가 본 위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적은 바 있다.

쑨진차이는 중국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망명할 수 있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계획을 세웠다. 중국 공산당 정권(CCP)은 일반 자국민의 해외여행을 제한하기 때문에 계획 실행은 무척이나 신중해야 했다.

지난 2022년 8월 10일, 쑨진차이와 그의 아내, 이들 부부의 세 아이들은 첫 여정을 시작했다. 쑨진차이 부부는 자신들의 부모님에게도 작별인사를 남기지 않았다. 부모님이 연루될 일을 우려해서였다.

2022년 8월 중국을 탈출할 때 쑨진차이 가족이 사용한 여권 | 사진=쑨진차이 제공

세관소, 그리고 구사일생의 탈출

쑨진차이 가족이 망명길에 오른 2022년 8월 당시 중국 당국은 여전히 강력한 국경 봉쇄 정책을 실시 중이었다. 당연히 해외여행은 금지됐다.

이에 쑨진차이는 중국의 특별행정구인 마카오를 첫 번째 정류장으로 정했다.

중국인이 자국에서 출국하려면 해관(세관) 검사대에서 지문을 스캔해야 한다. 출국이 가능한 사람으로 분류되면 게이트가 자동으로 열리는 시스템이다.

마카오 옆 도시인 주하이 세관 사무소에 도착해 지문을 스캔하는 순간이었다. 과거 우크라이나에 우호적인 내용의 게시글을 온라인에 올렸다가 며칠 동안 구금된 전력이 있는 쑨진차이였다. 중국은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국가다.

쑨진차이가 손가락을 갖다 대자 게이트는 열리지 않았고, 대신 국경경찰이 다가와 쑨진차이를 별도의 방으로 데려갔다.

경찰은 곧장 쑨진차이의 스마트폰과 SNS 계정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쑨진차이는 중국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은 뒤 곧바로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을 모두 삭제했었고, 경찰은 심문 끝에도 별다른 수확이 나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쑨진차이 가족을 풀어줬다.

쑨진차이는 “중국의 정치체제는 뿌리째 썩었다”며 “중국의 경찰 또한 유니폼을 입은 조폭들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에콰도르 한 주택가 | 사진=쑨진차이 제공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에콰도르, 그러나 병에 걸린 아내

쑨진차이는 가능한 한 미국과 가까운 나라의 비자를 받을 계획이었다.

쑨진차이 가족은 일단 마카오에서 태국으로 향했다. 방콕에서 9일을 머무른 뒤에는 터키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남미 국가인 에콰도르행을 목표로 했는데, 에콰도르행 항공권을 터키 이스탄불에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터키에서 보름 동안 지낸 끝에 쑨진차이 가족은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로 가는 이코노미 항공권을 구했다.

그렇게 키토에 도착한 쑨진차이 가족은 미국이 있는 북쪽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쑨진차이의 아내가 병에 걸렸다.

급히 찾아간 병원에서 아내를 진료한 의사는 이들 가족에게 진료비를 청구하지 않았다.

쑨진차이는 “에콰도르는 작은 나라로, 부유하지 않다. 하지만 에콰도르 국민들은 걱정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에콰도르 정부는 국민에게 곤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며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전했다.

정글을 가로지르는 미국행 이민자들. | 사진=쑨진차이 제공

파나마 열대우림을 관통하다

이때까지 쑨진차이 가족은 비자를 발급받고 합법적인 여행 중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들은 불법 밀입국을 해야만 했다.

에콰도르를 지나 콜롬비아, 파나마, 니카라과,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를 가로질러 멕시코와 맞닿아 있는 미국 국경 장벽을 오르는 모든 과정에서 쑨진차이 가족은 매번 목숨을 걸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위험천만한 때는 파나마 열대 우림을 지나는 5일 동안의 여정이었다. 인신매매가 성행하는 이곳 정글에서는 오직 운이 좋은 사람만이 살아남았다.

성인에게도 힘든 길인데 쑨진차이는 6살, 9살, 11살 아이들을 데리고 있었다.

2022년 10월 3일, 쑨진차이 부부와 어린아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밀림으로 발을 내디뎠다. 수많은 사람 중 쑨진차이 가족이 유일한 중국인이었다.

사람들은 진흙 속을 걸어야 했다. 때로는 밧줄에 의지해 강을 건너야 했다. 거대한 나무들이 시야를 가렸다. 고개를 들면 푸른 하늘 대신 우거진 나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뒤를 열심히 따라왔다. 쑨진차이는 “어떤 것도 자유를 향한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강을 건너는 미국행 이민자들. | 사진=쑨진차이 제공

“밀림에 있던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모두가 그랬다. 그러나 중국에서 보통 사람들은 ‘사람’으로 대우받지 않는다. 중국에서 보통 사람이란 단지 ‘노예’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주의가 아무리 보통 사람들을 핍박하더라도, 보통 사람들도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었다”

밀림 속을 헤쳐나간 지 사흘째 되던 날에는 아내가 밧줄로 강을 건너다 밧줄에서 떨어져 강에 빠지기도 했다. 천운으로 근처에 있던 현지인들이 아내를 구해주었다.

쑨진차이는 감사를 표하며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내는 죽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실제 지난 1년간 최소 853명 이상이 미국 국경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지난해 9월에는 12명 이상이 강을 건너려다 익사했다.

그럼에도 쑨진차이는 중국을 탈출하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쑨진차이는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은 낙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모두가 목숨을 걸고 도망치는 곳은 지옥임에 틀림없다”고 표현했다.

발에 온통 상처를 입고 나서야 쑨진차이 가족은 밀림을 빠져나왔다. 꼬박 5일이 지난 뒤였다. 아이들도 모두 무사했다. 당도한 난민 캠프에서 미국 국기를 본 쑨진차이의 아이들은 “중국 국기보다 미국 국기가 멋져 보여요”라고 말했다.

2022년 11월 3일 자정, 쑨진차이 가족은 사다리를 이용, 6미터에 달하는 멕시코-미국 국경 장벽을 넘었다. 미국 국경경찰은 올라오는 쑨진차이 가족을 막지 않았다.

마침 동이 트고 있을 때였다. 쑨진차이 가족은 마침내 미국 땅을 밟았다. 중국 땅을 떠난 지 약 3개월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