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그 캐릭터는’…中 매체들, 민감어 피해 “푸푸곰 맞았다”

류지윤
2021년 05월 10일 오후 4:00 업데이트: 2021년 05월 10일 오후 8:55

시진핑 연상 디즈니 캐릭터 곰돌이 푸…중공 ‘민감어’
중 매체들, 검열 피해 “푸푸곰”, “아기곰” 표현

중국 상하이 디즈니랜드에서 곰돌이 푸 캐릭터를 쓴 행사요원이 한 남자아이에게 두들겨 맞는 사건이 벌어졌다.

단순한 주먹질 사건으로 넘어갈 뻔했던 이 사건은 중공 언론들의 기이한 보도행태 때문에 오히려 대중의 시선을 끌고 있다. 언론들은 곰돌이 푸의 중국판 정식 명칭인 ‘작은 곰 위니(小熊维尼)’ 대신 ‘푸푸 곰(噗噗熊)’이라는 신조어를 썼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사건 발생 당시 곰돌이 푸로 분장한 직원이 디즈니랜드에서 관광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던 중 한 아이가 갑자기 달려들어 곰돌이 푸의 배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짓궂은 장난으로 보인다.

이후 디즈니랜드 직원이 아이의 부모를 상대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부모는 “잘못됐냐? 왜 그러는 거냐, 파손됐으면 우리가 배상하겠다. 아이가 이미 사과했는데 더 이상 뭐 어쩌자는 거냐”라며 오히려 역정을 냈다는 게 기사의 주된 내용이다.

아이가 곰돌이 푸를 때리는 모습(왼쪽)과 디즈니 측의 조사에 항의하는 아이 부모(오른쪽, 노란색 상의) | 웨이보

문제는 얻어맞은 캐릭터가 곰돌이 푸라는 사실이다. 이 단어는 2013년부터 중공이 지정한 유명한 ‘민감어(금기어)’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 서기와 닮았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언론들은 ‘두들겨 맞은 상하이 디즈니랜드 푸푸 곰’, ‘말썽꾸러기가 디즈니 아기 곰 때려’, ‘상하이 디즈니랜드 푸푸 곰, 어린아이한테 맞아’ 같은 제목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이 중 ‘두들겨 맞은 상하이 디즈니랜드 푸푸 곰’ 기사는 웨이보 검색 건수만 1억 건이 넘어 바이두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보도는 곧 실시간 검색어에서 사라졌고 관련 게시판도 폐쇄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 누리꾼이 “이거 위니 더 푸 아닌가? 왜 푸푸라고 부름?”이라고 묻자 “저기 어디 누구 닮지 않았냐”, “설명 못 함, 설명했다간 내 계정 없어짐”이라는 답변이 달렸다.

디즈니 캐릭터 곰돌이 푸(왼쪽 두 번째)와 그 친구들 맨 오른쪽이 티거다. | Michael Buckner/Getty Images

“어쩐지, 이러니까 내가 보고서 무슨 곰인지 모르지, 어떻게 아직도 푸푸 곰이라고 부르냐, 예전에 내가 하던 게임에서 누가 맨날 공개 채팅창에 ‘티거 친구가 누구더라’라고 물어봐서 누가 답해주면 그 사람 영구채팅 금지당하고 그랬는데”라고 말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곰돌이 푸가 민감어가 된 것은 지난 2013년 시진핑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서니랜즈에서 만나 나란히 걷는 사진이 공개되면서부터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각각 ‘푸’와 ‘티거’에 비유됐으나 곧 베이징 당국에 의해 차단됐다.

하지만 중국의 웨이보 유명인사 런즈창(任志強), 유명 투자자 리카이푸(李開復) 등이 연이어 리트윗하면서 관련 사진은 빠르게 인터넷을 달구었다. 리카우프는 당시 웨이보에 “시나닷컴이 어제 수많은 푸와 티거를 죽였다. 긍정적인 만화인 데다 뭐 나쁜 것이 있다고 손을 쓰나?”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2013년 6월 8일(현지시각) 미중 정상회담 기간 산책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디즈니가 2018년 개봉한 곰돌이 푸의 실사 영화가 상영 금지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 베이징 당국은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해당 영화의 원제는 ‘크리스토퍼 로빈’으로, 홍콩과 대만은 각각 ‘위니와 나’, ‘단짝 위니’로 번역했다.

미국에 체류 중인 전직 소후닷컴 언론인 리마오쥔(李茂君)은 2020년 NTD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위니 더 푸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는데, 친구들에겐 ‘프로필 사진 없음’ 상태로 표시됐다고 밝혔다.

리마오쥔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중국 언론 일을 할 때 매일같이 중공 선전부서로부터 기사를 걸러내고 검열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중공의 요구에 맞지 않는 글을 올리면 중공이 글 삭제나 사이트 폐쇄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