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에게 주는 첫 선물’…중국 온라인 들끓게 한 게시물

강우찬
2023년 03월 4일 오후 7:11 업데이트: 2023년 03월 4일 오후 7:16

미국·캐나다·중국 여권 펼쳐두고 ‘자랑’
‘제로 코로나’에 억눌렸던 中 민심 가열

중국 포털사이트 왕이(網易·넷이즈)에 실린 중국어 게시물 하나가 중국 온라인에서 찬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논란의 배경에는 중국을 벗어나 자유세계를 마음껏 오갈 수 있는 부유층 가정에 대한 질시 어린 시선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아빠, 엄마가 너에게 주는 첫 선물 두 가지’라는 제목의 게시물에는 사연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실렸다. 사진에는 아시아계 갓난아기 앞에 여권 3개가 놓인 모습이 담겨 있었다. 각각 캐나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미국 여권이었다.

글쓴이는 아기에게 주어진 첫 번째 선물은 여권(국적) 선택이라고 했다. 아기가 미국, 캐나다, 중국 국적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두 번째 선물은 ‘가족의 흔들림 없는 애정’이라고 밝혔다.

아기는 상하이 출생의 외동딸로, 6~7명의 어른으로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쏟아붓는’ 사랑을 아낌없이 받고 있다고 글쓴이는 전했다. 그러면서 “안심하렴. 엄마는 알고 있단다, 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하다는 것을”이라는 문구로 글을 끝맺었다.

글쓴이가 누구인지, 사진 속 아기가 글쓴이의 딸이 맞는지, 글에 실린 사연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글쓴이의 주장대로라면 이 게시물은 중국인 혹은 중국계 이민자로 추정되는 부모가 아이에게 3개국 어디에서든 자랄 수 있는 유복하고 자유로운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재력과 권한을 지녔음을 자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 글을 본 넷티즌은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댓글을 달았다. “훌륭한 부모가 맞나”, “나도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인생의 출발선에서부터 이긴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군” 등이었다.

글의 진위를 떠나 자신에게 이런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운데 붉은 여권(중국 여권)은 고려 대상에서 가장 먼저 제외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있었다.

해당 글은 꾸며낸 것으로 사진 역시 어디서 가져온 것을 사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실제로 트위터에는 같은 사진을 사용했지만 조금 다른 사연이 달린 게시물이 발견됐다.

“첫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며 “하지만 딸이 태어났을 때는 외국 여권을 선물할 수 있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인 나로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줬다. 만족한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게시물은 많은 ‘좋아요’가 달렸지만 얼마 후 삭제됐다. 글쓴이가 자발적으로 삭제한 것인지 누군가의 압력에 의한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문제 전문가 리닝은 “진위 여부를 떠나 이런 게시물은 오늘날 중국인들의 속내를 잘 짚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리닝은 “과거 중국인들은 자녀에게 특권과 재산을 물려줄 수 있기를 원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약간 달라졌다. 자녀가 중국을 벗어나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벗어나려면 재산과 특권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중남미 국경을 통해 걸어서 미국에 밀입국하려는 중국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자유를 선사해주고 싶다는 열망이 재산과 특권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4개월 동안 미 남부 국경을 통해 밀입국하다가 체포된 중국인은 약 3천 명으로 전년 동기(366명) 대비 7배로 급증했다. 1월 밀입국자만 계산하면 1084명으로 전년 동기(89명) 대비 10배 규모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이미지 구축에 힘써왔으나, 지난해 두 달간 이어진 상하이 봉쇄와 그 기간 가해진 인권 유린은 이러한 이미지가 허상이라는 인식을 중국인들에게 깊게 남긴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봉쇄 당시 중국인들은 “우리가 마지막 세대”라는 구호로 극단적 방역 정책에 항거했다. 처참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자녀에게 이런 현실을 물려주기 싫다는 의미가 짙게 깔린 절망감이 담겨 있다.

투자이주 컨설팅회사 헨리앤파트너스의 데이터 정보 파트너인 뉴월드웰스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이주한 중국인 부유층(자산 100만 달러 이상)은 1만8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였다.

리닝은 “3년이나 지속된 제로 코로나 정책, IT·사교육 등 각 분야에서 가해지는 불합리한 규제, 기부와 나눔을 강요하는 공동부유 정책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반응은 이제 공산당원들에까지로 확산되고 있다”며 “지금 중국인들의 가장 갈망하는 것은 공산당 치하 중국에서의 탈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 열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과거에는 주로 풍요롭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추구가 동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무서운 곳에서 달아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