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샤댐 상류 산사태에 중국 저명 건축공학자 “하류 지역 대피하라”

한동훈
2020년 06월 22일 오후 7:23 업데이트: 2020년 06월 23일 오전 11:38

“마지막으로 한번 말합니다. 이창(宜昌) 아래 지역은 달아나세요.”

지난 17일(현지 시각) 중국 온라인에서는 중국판 트위터인 ‘위챗’(微信·Wechat)의 개인 홈페이지인 ‘모멘트’(朋友圈)에는 누군가 남겨 놓은 ‘한 줄 게시물’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별 설명도 없는 이 글이 관심을 끈 것은 작성자가 중국 건축과학원 교수 황샤오쿤(黃小坤)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중국의 콘크리트 역학 권위자다. 국가1급 구조공학자, 중국 국영기업 건축연구과학기술유한공사 수석기술자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중국 건축과학원 교수 황샤오쿤(黃小坤)의 위챗 메시지. 붉은 네모 부분. | 화면캡처

그런 인물이 이창에 사는 사람들에게 빨리 대피하라고 한 것이다.

황 교수가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었다.

중국에서 이창하면 떠오르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삼국지의 고장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세계 최대 댐인 싼샤(三峽)댐이다. 싼샤댐이 있는 곳이 바로 이창이다.

황 교수의 발언은 싼샤댐 하류 사람들은 모두 대피하라는 의미가 자명하다.

싼샤댐은 2000년 초반부터 안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지난해 7월 크게 부각됐다.

한 중국 독립 경제학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구글 어스(Google Earth)에 포착된 싼샤댐 사진을 캡처해 올리면서부터다. 사진 속 댐은 일부가 뒤틀린 모습이었다.

대만과 홍콩 언론에서는 댐 안전성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했고, 이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중국도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중국 인공위성 응용센터는 구글 측 위성 사진이 보정되지 않아 그렇게 보일 뿐이라고 해명했고, 댐이 멀쩡하게 보이는 중국 측 위성사진도 공개했다.

싼샤댐 안전성 논란은 올해 6월 남부지방에 찾아온 폭우와 함께 재점화됐다.

지난 2일 시작된 폭우는 지역에 따라 온종일 또는 수일간 지속했다. 광시, 윈난, 광저우, 쓰촨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도로가 침수되고 가옥이 물에 잠기는 등 홍수 피해가 잇따랐다.

그 가운데 지난 17일 발생한 산사태가 시선을 끈다.

이날 새벽 중국 남부 쓰촨성에서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불리는 단바현(丹巴縣)의 장족(藏族)마을 일부가 산사태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마을 주민들은 “새벽 3~4시에 소음을 듣고 잠이 깼다”며 이후 “산사태로 집이며 마을이며 다 없어져 버렸다”고 지역 언론에 전했다.

이곳은 싼샤댐의 상류에 속한다. 그동안 중국 남부지방 폭우는 싼샤댐 하류에 집중됐는데, 이날 상류에서 큰 수해가 발생한 것이다.

황 교수는 이 영상이 중국 온라인에 쫙 퍼진 그날 오후 늦은 시간에 “달아나라”는 글을 남겼다. 시점이 예사롭지 않다.

싼샤댐을 운영하는 중국 정부 측의 움직임도 이러한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지난 6월 8일 관영 신화통신은 싼샤댐이 야간에 물을 방류하는 사진을 게재했다.

보도에 따르면, 싼샤댐에서는 보름간 221억 m³의 물을 방류했다. 홍수 예상을 위해 건설된 댐이 오히려 폭우 기간에 물을 방류해 하류에 홍수 피해를 키운 셈이다.

더 큰 의문은 하류 피해가 뻔한데도 물을 방류한 이유가 뭐냐는 점이다. 당국은 수량 조절, 저수 능력 유지라는 설명을 달았지만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너비 135m, 길이 2309m의 싼샤댐은 약 10여 개의 콘크리트 블록을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블록 자체의 강도와 무관하게 연결 부위의 약점이 자꾸 지적된다.

중국의 유명 수리(水利)전문가 황완리(黃萬里) 전 칭화대 교수는 2001년 별세하기 수년 전 싼샤댐에 대해 12가지 예언을 남겼다. 하류 제방 붕괴, 수질 악화, 이상기후 초래, 지진 빈발, 생태계 악화 등이다.

지난 20년간 이 가운데 11가지가 적중하고 하나만 남았다. 바로 마지막 예언인 ‘댐 붕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