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자연발생설은 비과학적” 美펜타곤 보고서

한스 만케
2023년 05월 20일 오후 6:21 업데이트: 2023년 05월 20일 오후 11:45

뉴스분석

2020년 5월 미 국방부 보고서, 최근 발굴돼 공개
파우치 박사 주도한 ‘자연발생설’ 근거 논문 분석
보고서 “논문, 과학적 근거 부족하고 논리적 결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자연발생설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펜더믹 초기 미 국방부 소속 과학자들에 의해 제출됐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국방부 보고서는 미 고등연구계획국(DARPA) 소속 해군 군의관 장 폴 크레티앵 중령, 미 국방정보국(DIA) 소속 과학자 로버트 커틀립 박사가 쓴 것으로 2020년 5월 26일 작성됐으며 지난 15일 바이러스 기원을 끈질기게 추적해 온 한 단체에 의해 일반에 공개됐다(보고서 전문).

크레티앵 중령 등 두 과학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추정 기원에 대한 비판적 분석(Critical analysis of Andersen et al. The proximal origin of SARS-CoV-2)’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코로나19 기원에 관한 자연발생설에 심각한 논리적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보고서는 작성 두 달 전인 2020년 3월 발표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추정 기원(The proximal origin of SARS-CoV-2)'(이하 자연발생설 논문)이라는 논문을 분석한 것이다(자연발생설 논문 링크).

이 논문은 미국 면역학자 크리스티안 앤더슨 교수 등이 작성했으며 자연발생설의 근거로 널리 인용되며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당시 미 방역 사령탑이었던 앤서니 파우치 박사도 이 논문을 근거로 실험실 유출설을 부인하고 자연발생설을 내세웠고, 파우치 박사의 영향력으로 인해 각국에서도 실험실 유출설은 비과학적 음모론으로 비판을 받게 됐다.

그러나 국방부 보고서는 ‘자연발생설 논문’에 대해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부당한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며 “설득력이 거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자연발생설 논문, 파우치가 직접 작성 지시

자연발생설 논문은 파우치 박사가 최초로 고안했다. 하지만 논문 참여자 명단에 파우치 박사의 이름은 없다.

파우치 박사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2월 1일 비공개 전화회의를 통해 스크립스연구소(TRSI)의 앤더슨 교수, 툴레인 의대의 로버트 갤리 교수 등에게 실험실 유출설을 부인하고 자연발생설을 뒷받침할 논문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워싱턴포스트(WP)가 미국판 정보공개법인 ‘정보자유법(FOIA)’에 의거해 입수한 파우치 박사의 이메일에서 드러난 내용이다.

파우치 박사는 해당 전화회의에서 두 가설을 검토해 객관적 결론을 도출하라고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자연발생설로 결론을 정해두고 그에 짜맞춘 논문을 쓰라고 한 것이다.

이 논문에 파우치가 깊게 관여한 사실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앤더슨 교수와 갤리 교수 등도 이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해당 논문을 발표한 이후 거액의 연구 보조금을 받고 있다.

자연발생설 논문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세계적 권위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의 생물의학 분야 온라인 자매지 ‘네이터 메디신’에 게재됐다는 사실도 작용했다.

여기에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감염병 전문가 제레미 파라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파우치 박사의 자연발생설 굳히기에 협조한 그는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의 수석과학자(CS)로 재직 중이다.

그러나 작년 말 독립언론인 지미 토비아스가 정보공개법에 근거해 입수한 이메일에 따르면, 네이처 내부 검토 과정에서 논문의 논리적 결함이 지적된 사실이 밝혀졌다. 결함이 있음에도 논문이 통과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파우치 박사는 또한 자연발생설 논문과 무관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17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이 중국 우한 연구소에서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이날 열린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파우치 박사는 실험실 유출설을 부인하고 자연발생설을 주장했다.

파우치 박사는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매우 뛰어난 진화 생물학자 집단이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과 박쥐의 진화한 (유전자) 서열을 조사했다”며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돌연변이를 발견했다고 답변했다(백악관 기자회견 전문).

이어 파우치 박사는 기자들에게 “지금 저자의 이름이 기억나진 않는데, 논문은 제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앤더슨 교수 등 저자들과 전화 회의를 열고 논문 작성을 지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으로 평가된다.

국방부 보고서가 밝힌 자연발생설 논문의 결함

자연발생설 논문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몇몇 특성을 자연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하나 이는 실험실에서 신약이나 백신을 개발할 때 동물 바이러스의 인간 전염성과 발병 능력을 알아보려 인위적으로 더해진 특성이라는 가설에도 잘 들어맞기 때문에 실험실 유출설을 부인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게 국방부 보고서의 설명이다.

특히 이런 특성 중 하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퓨린 절단 부위(furin-cleavage site)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돌기형태의 스파이크 단백질에 퓨린 절단 부위가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 숙주세포의 퓨린 단백질을 절단, 바이러스 유전자를 숙주세포에 진입시킨다.

즉 퓨린 절단 부위는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를 상대로 강력한 전염성을 갖도록 만드는 핵심 구조이며 지금까지 자연적으로 발생한 어떠한 베타-코로나바이러스에서도 관찰된 것이 없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로 나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베타-코로나바이러스에 속한다.

자연발생설 논문은 “지금까지 실험실에서 생성된 것으로 알려진 바이러스에는 이 기능(퓨린 절단 부위)이 없었다”며 이를 자연적인 진화 과정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국방부 보고서는 이에 대해 “이전에 실험실에서 이런 작업이 일어났다면 보고서나 논문으로 출판됐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과학적 분석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자연발생설 논문은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수용체 결함 도메인(RBD)과 관련해 비슷한 식의 비과학적 논의가 이뤄졌다면서 “특정한 실험적 조작에 관한 문헌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그런 조작은 없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심각한 논리적 결함”이라고 했다.

어떤 실험실에서 인간 감염 기능획득연구(바이러스에 없었던 기능을 장착하는 연구)를 수행하고도 공개하지 않았거나 혹은 공개했더라도 논문 저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논문 저자들이 발견하고도 모른 척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국방부 보고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2015년 ‘네이처 메디신’에 실린 박쥐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논문을 소개한 대목이다.

해당 논문은 2002년 중국 남부에서 발생한 사스(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비슷한 박쥐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면서 실험실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세포 내에서 강력한 복제력을 갖도록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논문 링크).

이 논문은 기능획득연구 분야의 세계적 선구자인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 랄프 바릭 교수 등이 참여했으며,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스정리 박사도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비슷한 박쥐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람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2015년 네이처 메디신 논문.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스정리 박사의 이름이 공동 저자 명단에 보인다(빨간 네모). | 화면 캡처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에 매달려 ‘박쥐 여인’이란 별명이 붙은 스정리 박사는 특히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만드는 기능 획득 연구에 힘써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한 연구소가 어떤 경로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제조할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었는지 짐작게 하는 연결고리인 이 연구는 자연발생설 논문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자연발생설 논문 저자들이 한정된 문헌만 보고 섣부르게 결론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또 하나의 근거다.

국방부 보고서는 코로나19의 기원을 규명해 어느 한쪽을 명확하게 지지한 것은 아니다.다만, 파우치 박사가 자연발생설의 중요한 근거로 인용한 논문이 과학적 근거로 작성됐는지만 분석했을 뿐이다.

그 결론은 해당 논문에 실린 여러 ‘근거’ 중 어느 것도 실험실 유출설의 가능성을 낮추지는 않았으나 이 논문은 오히려 실험실 유출을 부인했다는 것이었다.

고등연구계획국은 국방부 산하 핵심 연구개발 기관으로 인터넷, 위치정보시스템(GPS) 등 혁신적 기술이 개발된 곳이다.

이 곳은 mRNA 백신과도 밀접하다. 고등연구계획국은 지난 2013년 mRNA 기술을 연구하던 직원 3명의 작은 회사에 자금을 지원했는데 이 회사가 바로 모더나다.

한편, 국방부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커틀립 박사는 2021년 국방부를 떠났으며 현재 웨스트버지니아주의 페어몬트 주립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보인다.

커플립 박사의 경력에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책본부 소속으로 미국 대통령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나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보고가 올라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