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출범특집]“야당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 돼야”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신정부출범특집]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⑧

최창근
2022년 04월 7일 오후 5:16 업데이트: 2022년 04월 7일 오후 6:22

제20대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됐습니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대통령은 ‘성공’을 갈망하는 국민의 지지 속에서 청와대에 입성합니다. 다만 5년 후 청와대를 나오는 대통령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공을 바라지만 성공한 대통령은 가지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에포크타임스는 신정부 출범 특집으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전직 정부 각료, 전직 청와대 참모진, 학자, 언론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연속 대담을 통하여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그 여덟 번째 순서로 정책 전문가로서 국회의원, 각료를 역임한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 시 유의점, 보건복지 정책 추진시 주안점, 대통령과 야당 관계 등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책전문가로서 국회의원, 각료를 경험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후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사회학 석사,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신한국당(국민의힘) 부설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 연구진 공채 1기로 입사하여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 입문하여 교육위원회, 정무위원회, 운영위원회, 여성위원회에서 활동했고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6정책조정위원장, 원내 공보부대표를 역임했다. 2008년 제18대 국회(서울 성동갑)에서 당선됐고 여의도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됐다.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로 활동했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010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저서로는 ‘교육, 이제 솔직해지자’ ‘스마트 복지’ 등이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로 활동했습니다. 인수위원회 활동에서 유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진수희 전 장관은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합류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며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정책 전문가인데 정무 분과 간사로 갔습니다. 청와대,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감사원 등을 관할하는 분과였었습니다. 인수위원회 활동 초기에는 너무 긴장해서 한동안 수면제 없이 잠을 못 잘 정도였습니다.”라고 당시 인수위원회 활동을 회고 했다. 그는 인수위원회 활동 기간 동안 언행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정권 재창출이 아닌 정권 교체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은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인수하는 측, 인계하는 측 모두 서로 배려하면서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이명박 당선자, 이경숙 인수위원장(숙명여대 총장), 김형오 부위원장, 진수희 정무분과 간사, 백용호 경제 1분과 인수위원(이화여대 교수) 등이 보인다.

여야 정권 교체 시 인수위 활동은 겸허해야
갈등 최소화하여 국민 불안하게 만들지 않아야

당시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설화(舌禍)도 있었습니다.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의 ‘아륀쥐(오렌지) 발언’이 문제가 됐었죠. 해당 발언은 이른바 ‘국민 정서법’ ‘국민 감정법’에 저촉됐습니다. 그 영향인지 이경숙 위원장은 인수위원회 활동 후 정부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진수희 전 장관은 인수위원회의 지나친 자신감이 화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인수위원회 정부혁신·규제개혁 TF팀장으로 활동했던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평가와도 일치한다. “‘겸손해져야 한다’ ‘인수위원회는 점령군이 아니다’라고 내부 구성원 들이 모여서 다짐도 하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잘 안 됐습니다. 그리고 인수위원회 참여자들은 ‘의욕’에 넘쳐서 열심히 하려 한 것인데 외부자나 정권을 넘겨야 하는 노무현 정부 관계자들에게는 ‘오만’으로 비칠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인수위원회 활동은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요.”

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조언한다면요?

진수희 전 장관은 2007년 대선과 2022년 대선은 선거 결과, 현직 대통령 지지율 등에서 천양지차라며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말 국정 지지율이 10% 전후에 머물 만큼 극심한 레임덕을 겪었습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도 이회창 후보가 출마해서 표를 분산시켰음에도 이명박 후보의 ‘압승’이었죠. 이 속에서 인수위원회 참여자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말한 그는 0.7% 포인트 차이로 신승(辛勝)한 윤석열 당선자와 인수위원회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좌·우 간 극심한 진영 대결의 부산물이라 하겠습니다. 분열된 민심을 여과 없이 보여 주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속에서 당선자 측은 ‘박빙 승부 끝에 이기기는 했지만 승리했으니 위축될 필요는 없다’는 태도로 정권 인수에 임할 수 있다고 보는데 위태롭게 보입니다.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 시각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점이죠. 안타깝기도 하고요.” 이렇게 이야기 한 진수희 전 장관은 다음과 같이 충고했다. “흔히들 하는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라고 하잖아요. 물론 사람은 감정이 있으니 실천에 옮기기 힘들기도 하지만요. 여기에 답이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5년간 권력을 행사할 당선자와 인수위원회가 현임 정부에 양보하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 국민에게는 보기 좋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승자의 겸양이 필요하다 할까요.”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 시절 진수희 전 장관(왼쪽). 가운데는 박진 현 국민의힘 국회의원, 그 오른쪽은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분과 인수위원이던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다. 현인택 교수는 이명박 정부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차기 권력이 현 정부 앞에 고개 숙이는 태도 필요
승자의 겸양 요구돼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 시 전임 전재희 장관과 업무 인수 인계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전재희 장관과 업무 인수인계 과정에서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재희 장관은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 직업 공무원 출신으로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입각했잖아요.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서 서로 간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진수희 전 장관은 대신 보건복지부 관련 단체가 취임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보건의료 관련 단체에서 ‘전문성이 결여 됐다’는 명분을 들어 반대했습니다. 나는 본래 사회학 전공자니까요. 다만 나는 반대로 생각했어요. 전문성이 없다는 것은 해당 단체와 이해관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내가 의사, 약사, 간호사 출신이었으면 많든 적든 해당 직역(職域)과 이해관계가 있을 텐데 없었던 것이죠. 이 점에서 나는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장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실제 장관 취임 후 이익 집단 간 갈등 속에서 그간 묵혀 두었던 정책 과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요.” 진수희 전 장관은 보건복지부 장관 취임사에서 “겸애교리(兼愛交利)의 마음가짐과 행동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묵자의 겸애교리란 남의 일도 내 일처럼 생각하고 실천방도로 의식주를 보장한다는 뜻이다.

영리병원 도입 등 ‘정책 저항’이 큰 정책 추진에 있어서 유의할 점은 무엇이라 보나요?

“이슈성이 있는 과제나 찬반 양측 갈등이 첨예한 정책을 밀어 붙이기식으로 추진하면 후유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라며 진수희 전 장관은 해법을 제시했다. “결국 시간을 두고 갈등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 듣고 때로는 한자리에 모아 놓고 서로 입장을 이해하게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역지사지하게 하는 것이죠. 말은 쉽지만 인내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는 영리병원 문제는 이익 집단 간 갈등이 아닌 이념이 개입되어 있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측은 이 문제가 의료 전반 민영화로 가는 것이라는 일종의 ‘프레임(frame)’을 구축했습니다. 이는 국민에게 어필하기도 쉽습니다. ‘영리병원 도입되면 건강보험 체계도 무너지고 간단한 수술을 해도 거액 들어간다’고 하면 되니까요.”

저항 큰 정책은 갈등 조정과정 거쳐야
때로는 여론 도움 받아 정책 추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론 관리도 중요합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광우병 쇠고기 파문은 대통령과 정부가 대국민 홍보·설득 과정을 생략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여론의 역풍을 맞고 나아가 정권의 존립 기반까지 흔들린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정권 초기 여론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촉발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슈 자체가 생활 밀착형이었습니다. 거기에 정부가 구구절절 변명하다 여론전에서 밀린 것이죠.”라고 이야기한 진수희 전 장관은 여론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일반의약품(OTC·Over the counter)의 약국 외 판매 문제였다.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관심을 기울인 문제였습니다.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싶어하던 정책이었는데 문제는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약사협회에 ‘하지 않겠다’ 공약했던 것입니다. 형편이 그래서 국무총리나 나를 채근하기도 했죠. 약사협회는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협회는 ‘둑에 균열이 나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다’라고 판단한 것이죠. 당시 모 일간지 보건복지 전문기자가 이 문제를 기사화했어요. ‘국민 편의를 위해서 일반의약품은 수퍼마켓이나 마트,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게 맞다’고 썼습니다. 국민 여론도 호응했고요. 실제 의약 분업 후 약국들이 병원 주변으로 몰리다 보니 동네약국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병원 휴진 시간이나 휴일에 문을 닫는 약국도 많았고요. 이 속에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요구하는 민원도 줄 이었습니다. 결국 ‘보건복지부령’으로 일반의약품 일부 약국 외 판매를 허용했습니다. 약사협회는 나를 상대로 소송도 걸었고요. 결과적으로 약사협회의 우려는 기우였다는 것이 드러났고 제도가 잘 시행되고 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 관심을 가졌던 정책 관련 이야기는 자연 청와대와 내각 간 정책 주도권 이야기로 이어졌다.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관련 당정 협의회에서 논의하는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우)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좌).

정책 주도권을 두고서 일선 부처보다는 청와대 참모진에 무게가 실리는 현상이 지속됩니다.

“일반 의약품 약국 외 판매 문제는 좀 특수한 경우이고 나머지 정책 면에서는 청와대가 주도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한 진수희 전 장관은 정책 추진이나 인사권 행사에 있어서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했다. “부처 내부 인사도 고위공무원단 가급(1급) 승진 대상자를 제외한 고위공무원단 나급(2급) 이하 인사는 자체적으로 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이 업무 파트너였죠. 검증이 필요하니 협의해야 했습니다.” 그는 인사 원칙도 세웠다고 했다. “인사 적체가 있어서 인사를 단행해야만 했었는데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일단 보건복지부 업무 분야가 크게 ‘보건의료’ ‘복지’로 되어 있는데 두 분야 직원을 맞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여성 공무원을 주무 과장으로 발탁한 것이죠.”라고 이야기 한 진수희 전 장관은 당시 직원 인사 설명을 이어갔다. “보건의료 분야 직원과 복지 분야 직원을 바꾼 것은 지나치게 한 분야에서만 일할 경우 부패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서였습니다. 다른 직역 업무를 경험하는 것은 해당 공무원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고요. 여성 고위공무원을 주무 부서 과장으로 임명한 것은 전체 직원 조회에서 선언했습니다. 여성 장관이라 여성 우대한다고 남성 공무원들은 불만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세운 원칙이니 받아들여 달라고요. 이런 원칙을 가지고 직원 인사는 장관 주도로 했습니다. 산하 기관장 인사에서도 장관으로서 의견 개진하고 했죠. 물론 건강보험공단이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인력·조직·예산이 방대한 조직의 수장이니 관할 부처 장관이라 하여도 인사를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의견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인사비서관과 협의해서 추천이나 공모 절차 등 정상적인 인사 프로세스로 지명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만기친람했다는 것은 오해
부처 직원 인사권 등 장관에게 위임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만기친람하면서 부처의 자율권을 침해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합니다. 경험자로서 어떻게 평가하나요?

이에 진수희 전 장관은 “기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만기친람했다고 외부에서는 평가하는데 그렇게만 볼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 경영자 출신으로 다양한 경험이 있습니다. 지식 면에서도 해박하고요. 대통령 개인 특성이 이러하다 보니 각 부처 업무에 있어 구체적으로 의견을 내기는 했지만 이를 만기친람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 경험만 비춰 봐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의제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료집이나 메모장 들고 읽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 정리가 되어 있었죠. 대통령이 의제를 제시하면 각 부처 장관이 의견 개진하면서 활발한 토론이 이뤄졌습니다. 그 속에서 정책의제가 조율됐고요. 다만 국정 운영에 대통령이 미주알고주알 식으로 간섭한 것은 아닙니다.”

2010년 8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장관·청장 임명장 수여식. 앞줄 오른쪽부터 이재오 특임장관, 박재완 고용노동부장관,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장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장관. 뒷줄 오른쪽부터 조현오 경찰청장, 이현동 국세청장.

대통령의 참모(staff)’인 청와대 보좌진이 계선(line)’조직 책임자인 장·차관 위에 군림하는 문제가 지속 제기됩니다. 실상은 어떠한가요?

“대통령실에서 공식·비공식적으로 간섭한 적은 있다.”며 진수희 장관은 당시 경험담을 들려줬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내가 청와대 담당 비서관실 이야기를 안 듣고 하니까 대통령실 관계자가 따로 보건복지부 실·국장 불러다 보고받고 지시하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업무 프로세스상으로도 대통령의 참모가 계선 라인 책임자에게 직접 지시하는 것은 옳지 않고요, 개인적으로 불쾌하기는 했습니다. 청와대 인사는 ‘대통령의 뜻이다’라는 명분을 내세워 관철시키려 하고 내가 수용하지 않으니 편법을 썼던 것이죠.”

대통령 참모가 일선 부처 업무에 직접 개입해서는 안 돼
복지부 장관 시절 ‘경제성’ 강조한 정책 환경으로 어려움 겪어

청와대 정책실 독주 문제도 제기됩니다.

진수희 전 장관은 청와대 정책실 독주 문제보다는 정책실장과의 가치관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당시 청와대 대통령실장이나 정책실장은 경제학이나 재정학을 배경으로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경제 관료 출신이거나 아니면 경제학, 재정학 전공 학자 출신이었죠. 대통령도 이른바 ‘경제 대통령’이었고요. 정책 환경이 전반적으로 ‘경제적 효율성’ 추구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아울러 당시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중시했고요. 이러한 기조와 환경 속에서 당시 정책실장이나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 문제에서 엄격했습니다. 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니까 예산을 지출해서 복지를 확충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정부 재정 지출을 책임진 기획재정부는 ‘혈세는 아껴 써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복지 정책이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는 정책도 아니고요. 이 속에서 갈등은 필연이었습니다. 서로 간 입장 차 때문에요. 전임 장관도 비슷한 문제로 기획재정부나 청와대 정책실 등과 부딪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 진수희 전 장관은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였지만 공사(公私) 구분은 엄격했다며 복지 예산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소회했다. “한번은 국무회의 다음 날 해외 출장이 잡혀 있었습니다. 예산 편성을 위해서는 기획재정부 장관을 설득해야 했죠. 회의 틈틈이 간청하는 편지를 썼다 회의 마치고 기획재정부 장관 양복 주머니에 넣어 주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경험은 국무위원 전체 간담회에서 복지정책과 예산 소요를 두고 발표할 기회가 있었는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의 사연을 소개하다 나도 몰래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그게 통했는지 해당 사업 예산 반영은 순조로웠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책실 폐지론로 제기됐습니다. 어떻게 보나요?

“대통령 중심제이다 보니 자연 힘이 청와대로 쏠리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이 있으니 권한을 위임해서 책임지고 일하게 해야죠. 청와대가 개입하고 국정 운영권 주도권을 쥐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정책 현안에 직접 나서고 정책을 주도하면 그 책임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고 봅니다. 장·차관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책임을 물어야죠. ‘정책실 폐지론’이 제기된 것도 이 문제 때문이라 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두드러졌는데 정책실이 각종 정책 현안을 주도하니까요.” 진수희 전 장관은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실 축소, 민관합동위원회 설치는 옳은 방향이며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정부 정책에 민간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시도인데 취지는 좋다고 봅니다. 운영을 잘해야겠죠.”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학자 출신으로 여의도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7대,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간사를 거쳐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관료 출신 외부 전문가가 장·차관이 될 경우 독자 업무 영역과 전문성에 기반한 관료에게 포획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진수희 전 장관은 재임 시 청와대나 내부 직원 모두 존중했던 것 같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관료집단도 장관의 배경, 성향 혹은 정치적인 힘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그들은 국회의원 출신은 대통령과도 가깝고 정치적 힘이 있으니 부처 예산 확보에서도 유리하고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부처를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죠. 국정 감사 등에서도 국회의원은 동료 의원이 장관이니 감싸주는 것은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 점에서 관료집단에 포획되거나 휘둘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장관 자리에 오래 있게 되면 부처 내부 논리에 물들게 되는 문제는 분명 있죠.” 진수희 전 장관은 자신은 현직 국회의원 출신으로 입각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료집단으로부터 존중받은 측면이 있다며 관료주의는 존재한다고도 덧붙였다. “관료집단은 직업 공무원 출신이 승진하여 차관 되고 장관으로 부임하면 더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부처 업무에 정통하니 ‘시어머니’ 역할 할 수도 있고 설사 그러지 않는다 해도 공무원 입장에서는 시어머니 모시는 기분일 수도 있죠. 대학 교수 출신은, 이도 경우에 따라 다른데,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없거나 하면 장관으로 취임해서 업무 파악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현실이죠. 여기에 더해 현황에는 어두우면서 평소 소신대로 정책 추진하려다 보면 실무 공무원들과 갈등 벌이게 되고요.”

전문가, 정치인, 관료 출신 장관 각각 장점 단점 지녀
정치권과 관료집단 간 갈등 자체는 건강

관료집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 문제는 어떻게 보나요?

“문재인 정부에서 코로나 19 재난지원금 추가 경정 예산 편성을 두고 여당과 기획재정부가 갈등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러한 갈등은 건강하고 필요한 것이라 봅니다. 갈등 자체가 문제는 아니죠.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 중요한 거죠.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이라 봅니다.”

보건복지부는 예산을 지출이 큰 부처입니다. 부처 수장으로서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은 예산 낭비는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가 맞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예산 규모도 크고 복지정책 특성상 예산 집행 과정에서 누수 현상도 존재합니다. 예산 누수를 방지하려 들면 행정 비용이 지나치게 발생하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누수 현상이 있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완벽하게 막지는 못하는 것이죠. 제도 면에서 한국 복지제도는 완벽에 가깝다고 평가합니다. 이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정책을 시행하기보다는 기존 제도와 정책을 ‘비용-효과분석(cost-effectiveness analysis)’ 면에서 평가해서 손질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장관은 부처 수장이기에 앞서 국무위원입니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이해하고 뒷받침하는 국무위원과 각 부처 책임자인 장관으로서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국민 전체의 편익 증진 차원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오래 재임할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부처 내부 논리에 함몰되어 국민의 이익이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고 봅니다.”

전문가 집단, 정치인, 관료집단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 보시나요?

“나는 사실 공부만 하다 정책연구소를 거쳐 정치권에 들어가고 장관까지 됐습니다. 총 세 단계를 밟은 것이죠. 연구자였다 정계 입문하고 다시 행정 부처 책임자가 됐습니다. 전공이 사회학인데 학문 특성상 현실 문제와 밀접합니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 마친 후 정당 부설 연구소(여의도연구소)에 몸담게 됐습니다. 내가 만든 정책 아이디어가 실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다만 국가 정책은 법제화가 되어야 효용성을 지니는데 국회의원이 되어서 입법 활동을 하게 되면서 입법 과정을 통해 정책이 현실화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행정부에 들어가 실제 집행할 기회도 얻었습니다.”라고 이야기한 진수희 전 장관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고충도 있었지만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장관이 ‘임기 동안 이런 일은 중점적으로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부처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구체적인 계획안을 만들어서 보고합니다. 물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장관이 져야 하지만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죠.” 그는 연구자-정치인-관료집단 수장을 각기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 집단의 장·단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전문가 집단 혹은 정책 전문가 그룹은 주로 연구 활동을 해 온 사람들이에요.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정책 입안 분야에서는 능력을 발휘하지만 현장 경험이 부족하니 정책 집행 분야에서는 약합니다. 한국 관료 집단은 기본적으로 우수합니다. 업무 영역별 전문성이 뛰어나죠. 문제는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선거를 통해서 주기적으로 바뀌고 이에 따라 정책 방향성도 달라지는데 공무원 집단은 여기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흔히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는데 영혼이 있으면 피곤해지는 것이죠. 정치인들은 염치가 없다고 비판하는데 장점도 있어요. 전문가 집단이 만든 정책을 정무적 판단 거쳐 행정부에서 집행하게 하는 것이죠. 상대적으로 전문가 집단이나 관료 집단에 비해 영역이 넓다 하겠습니다.”

정치 경력 짧은 대통령이 장점도 지녀
야당과 소통하며 협치해야

차기 정부는 최소 2년간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국정운영을 해야 합니다. 국정운영 경험자로서 조언하고 싶은 것은요?

“차기 대통령과 정부를 둘러싼 정치환경이 나쁩니다. 여소야대이죠. 더불어민주당 원내 의석이 압도적으로 많고요.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협치(協治)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아니, 협치를 하지 않으면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였습니다. 대통령 본인의 리더십이 중요한 대목이죠. 야당과 대화하면서 국정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진수희 전 장관은 윤석열 당선자가 정치, 정당 경험이 일천한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통령 당선자의 정치 경력이 짧은 것을 두고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는 질문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계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정당에 소속된 지도 짧으니 정파색이나 이른바 ‘진영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특정 정파의 리더가 아닌 국민 전체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인사나 정책에서 국민의 복리를 우선해야겠죠. 여소야대 정국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같은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에서도 여소야대 구도는 자주 발생하니까요. 문제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무라인’이 국회, 특히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지만 역대 대통령이 소홀한 부분이고요. 대통령과 정파를 달리하는 야당 국회의원이라도 기본적으로 국가 지도부의 일원이라는 의식은 있습니다. 내 개인적인 경험인데 대통령이 직접 전화하면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점에서 대통령이 야당 지도부나 국회의원에게 직접 전화하고 설득하면 좋은데 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들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한 진수희 전 장관은 앞으로 대통령이 야당 의원과 더 교류하고 소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가 국정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절실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야당을 설득해야 합니다. ‘웨스트 윙’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미국 백악관을 배경으로 한 정치 드라마를 보면 미국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야당 의원에게 전화하고 때로는 백악관에 초청해서 식사나 음주를 같이 하면서 법안 통과 지지를 얻어 내는 것이잖아요. 한국 대통령도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두고 여당에서 ‘대통령이 여당은 소외시키고 야당만 챙긴다’고 서운해해서는 안 될 것이고요. 대통령과 청와대 정무라인이 야당과 소통하는 데 전력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대통령이 이렇게 노력하는데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한다면 ‘거대 야당이 대통령 상대로 힘자랑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고요.”

진수희 전 장관은 정치색이 옅은 윤석열 차기 대통령이 협치를 실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실 개편하면서 정무수석비서관 폐지 이야기도 흘러 나오는데 정무수석비서관이든 정무장관(특임장관)이든 여당이 아닌 야당과 소통하는 창구가 됐으면 합니다. 내가 몸담았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무수석비서관 외에 특임장관 제도를 운영했는데 야당과 소통을 제대로 하고 협조를 구했는지는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