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인내에 보내는 찬사…‘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시리즈 칼럼] 고전회화는 사람의 내면에 무엇을 남기는가

에릭 베스(Eric Bess)
2021년 05월 17일 오후 3:20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6:15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많은 이들은 그런 삶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도덕성을 진정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자주 분투해야하고 인내해야 할 뿐 아니라 때론, 투쟁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 인내와 투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타협하거나 포기하고 만다. 그들은 자신의 소위 ‘한계’를 받아들이고, 더 나은 존재가 되려는 노력을 내려놓는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몇몇은 인내와 투쟁을 극복하고 더 높은 존재로 올라선다. 성 안토니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성 안토니우스의 고행

‘수도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성 안토니우스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산으로 들어가 홀로 지내며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긴 수행의 삶 속에서 그는 악령들과 사악한 생명체들에 의해 반복적으로 괴롭힘과 고난을 당했다. 악령들은 때때로 사나운 야수로 나타나 공포감을 주면서 고행과 신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게 하려 했다. 안토니우스를 죽도록 구타한 적도 있었다.

악령들이 사나운 수법만 쓴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안토니우스의 욕정을 시험했다. 물질적 풍요와 부유함에 대한 향수를 일으켜 탐욕에 이끌려 산을 내려가게 하려고도 했다.

한번은 악령들이 안토니우스의 거처를 공격했는데, 그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굳은 결심을 지켜냈다. 고통이 마지막으로 치달을 무렵, 안토니우스는 하늘이 열리며 쏘아지듯 떨어지는 한줄기 빛을 봤다. 빛은 사악한 악령들을 제거했다.

안토니우스는 온갖 유혹과 고난을 끊임없는 기도와 고행을 통해 극복했다. 이후 그는 금욕생활을 접고 세속에서 생활하기도 했는데, 영적 순결과 자유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였다.

이젠하임 제단화와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이젠하임 제단화(祭壇畵)는 1512년에서 1516년 사이 니콜라스 하그노버(Niclaus of Haguenau)와 마티아스 그뤼네발드(Mathias Grünewald)가 수도원의 주문을 받고 만든 대형 접이식 제단화이다. 니콜라스 하그노버가 조각 부분을, 그뤼네발드가 회화 부분을 담당했다.

이제하임 제단화는 안토니우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맥각병 환자들을 돌보던 수도원 병원 예배당에 있었다. 맥각병은 당시 유럽에서 흔히 발병하던 병이었는데, 곰팡이균에 감염된 호밀로 만든 빵을 통해 감염되는 질병이었다. 제단화에 그려진 성 안토니우스의 이미지는 이 맥각병으로 고통받던 환자들에게 많은 위로가 됐다.

제단화의 가장 안쪽에 그려진 두 개의 패널에는 성 안토니우스 생애의 일부가 묘사돼 있다. 이 중 안토니우스의 고난을 보여주고 있는 오른쪽 패널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을 살펴보겠다.

그뤼네발드가 이 작품에서 묘사한 장면은 안토니우스의 전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 장면은 안토니우스를 향한 악령들의 거센 공격과 그의 인내, 그리고 신과의 소통을 표현하고 있다.

게오르크 셰자(Georg Scheja)는 그의 저서 ‘이젠하임 제단화’에서 이 장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안토니우스에 대한 악령들의 전방위적 공격은 그가 사막에서 금욕 수행을 막 시작할 때 일어났다. 그때 신은 먼저 안토니우스가 어떻게 평정을 유지하는지 지켜봤고, 그런 후에 그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했다.”

“온 사방이 거친 야수 형상의 유령들로 가득 찼고 그를 강하게 압박했다. 그의 온 육신은 소름 끼치도록 무서운 고통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토니우스는 그곳에 가만히 누워 영적으로 밝게 깨어있으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고통이 그 끝으로 치닫는 순간, 그는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한 줄기 빛의 광선이 내려오더니 악령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을 봤다.”

신은 안토니우스에게 말했다.

“안토니우스, 나는 줄곧 여기에 있었고 너의 투쟁을 지켜보았다. 네가 네 신앙을 굽히지 않고 지켜냈으므로, 나는 너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자로 삼을 것이다. 또한 네 이름은 세상 모든 곳에서 찬양받을 것이다.”

“안토니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에게 새로 주어진 신비로운 힘을 느꼈다. 그것은 그가 이전에 가졌던 그 어떤 힘보다 강력한 것이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드(Mathias Grünewald)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1515년경, 운터린덴 박물관. | Public Domain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그뤼네발드의 작품 속 안토니우스는 비록 바닥에 누워있지만, 그 얼굴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다. 빨간 셔츠 위에 파란 망토를 걸치고 있으며, 흰 머리와 턱수염은 그의 나이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기괴한 형상의 악령들이 사방에서 안토니우스를 공격하고 잡아당기고 있고, 작품의 앞쪽에는 새 머리 형상의 악령이 막대기를 들고 그를 공격하고 있다.

작품 왼쪽에는 용의 얼굴에 뿔이 난 악령이 안토니우스의 망토를 잡아당기고 있고, 또 그 악령의 뒤쪽에서 뻗어 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손은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있다.

작품의 맨 아래 왼쪽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보인다. 그의 온몸엔 종기가 나 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그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다.

작품의 맨 아래 왼쪽으로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이 보인다. 그의 온몸엔 종기가 나 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지만, 그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드(Mathias Grünewald)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부분. | Public Domain

묘하게도 그것이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를 작품의 맨 위쪽으로 이끈다. 작품 상단에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무엇인가와 싸우고 있는 악령들과 그들이 파괴한 안토니우스의 오두막이 있다.

자, 이제 하늘을 보자. 그곳에는 빛의 존재와 싸우는 어두운 존재들이 있고, 왼쪽 상단으로는 하늘이 열리고 안토니우스를 돕기 위해 온 신성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늘에는 빛의 존재와 싸우는 어두운 존재들이 있고, 왼쪽 상단에서는 하늘이 열리고 안토니우스를 돕기 위해 온 신성한 존재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마티아스 그뤼네발드(Mathias Grünewald)의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부분. | Public Domain

두려움 없이 악을 극복하기

안토니우스에게는 목표가 있고, 그 목표는 신과 신의 사랑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악령들 역시 그들의 계획이 있다. 바로 안토니우스가 그 노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악령들은 실패할 운명일 뿐이다. 안토니우스는 결코 혼자서 그 고통을 감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먼저 자신의 결의를 증명해야 한다. 그가 신의 도움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안토니우스는 이 모든 고난을 인내하며 차분히 견뎌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뤼네발드는 사방에서 몰려든 악령들의 공격을 받는 안토니우스를 고통도 일말의 걱정도 없는 침착한 상태로 표현했다.

신을 믿는 많은 사람이 신성이 바라는 도덕적 요구에 따른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면서도,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신에게 고통을 제거해 줄것을 요청한다. 그중 일부는 마치 그들이 신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세속적인 선물로 자신들을 축복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 안토니우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신성한 존재의 개입에는 도덕적 요구사항이 선행한다는 것이다. 유혹을 이겨내고, 신의 도움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우리는 깊이 성찰해 봐야 한다. 신성이 그 빛으로 어둠을 파괴하길 바라기 전에, 먼저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우리의 영혼에 맴도는 어둠과 의연히 맞서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과연 두려움 없이 악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가? 진정으로 신의 사랑을 함양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기꺼이 인내해 낼 수 있는가?

고전회화는 현대인의 마음에서 그 의미를 잃어 가고 있는 영적 표현과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시리즈 칼럼] 고전회화는 사람의 내면에 무엇을 남기는가’는 도덕적 통찰력을 통해 시각 예술을 해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오랜 세대를 걸쳐 고민해 왔던 질문들에 대해 절대적인 답을 제공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시리즈를 통해 던져진 질문들이 ‘보다 진실하고 남을 위하며 용기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당신의 성찰 여정에 깊은 영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에릭 베스(Eric Bess)는 현재 비주얼 아트 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젊은 화가 겸 예술전문 기고가다. 고전회화를 중심으로 예술 작품 큐레이션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