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훈계’ 캐나다서 후폭풍…“저자세 외교의 결과”

한동훈
2022년 11월 19일 오후 6:01 업데이트: 2022년 11월 19일 오후 8:28

이전 정부가 잘못된 선례 남겨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에게 항의한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다. 캐나다 언론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캐나다가 중국을 상대로 벌인 저자세 외교의 산물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진핑 총서기는 지난 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마지막 날 연회에서 트뤼도 총리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전날 열린 양국 비공개 약식회담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데 따른 반응이었다.

로이터 통신이 공개한 40여 초 분량의 영상을 보면, 두 정상은 붐비는 행사장 한쪽에서 통역을 사이에 두고 서서 이야기했다. 시진핑은 “우리 대화 내용이 모두 언론에 유출됐다. 그건 적절하지 않다”며 “그런 식으로 대화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따졌다.

지난달 3연임이 확정된 시진핑은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 미국, 프랑스, 호주 정상과 잇따라 회담을 가졌지만 캐나다와는 공식회담이 아닌 약식회담만 약 10분간 진행하고 끝냈다.

시진핑은 통역을 통해 “성의가 있다면 서로 존중하는 태도로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처음에는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지만, 점차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책망하는 표정을 나타냈다.

시진핑의 눈을 똑바로 보며 이야기를 듣던 트뤼도 총리는 통역의 말이 다 끝나기 전에 차분한 어조로 응수했다.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는 자유롭고 투명하며 솔직한 대화를 지지한다. 중국과 앞으로 건설적으로 협력을 요구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의견 차이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진핑은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여건을 조성하라(創造條件), 여건을 조성하라”고 말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형 문장이었다. 이후 시진핑은 악수를 청했고 두 정상은 악수를 나눈 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떠났다.

16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마지막 날 연회장에서 중국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오른쪽)이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게 항의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차가운 양국 관계…캐나다의 이유 있는 냉대

전날 트뤼도 총리는 약 10분의 약식회담에서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 활동과 2019년 캐나다 연방선거에 개입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은 캐나다 정부 관계자를 통해 언론에 전달됐고 기사를 통해 캐나다 국민들에게도 전해졌다. 트뤼도 총리가 “캐나다는 자유롭고 투명하고 솔직한 대화를 지지한다”고 응수한 근거다.

반면, 중국 정부와 관영 언론은 트뤼도의 발언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공산주의 중국과 캐나다의 서로 다른 가치관과 언론 관행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점에서 시진핑의 마지막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중국 문제 전문가 탕징위안은 시진핑이 말한 “여건을 조성하라”에 대해 “우리와 협력하려면 우리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탕징위안은 “이는 시진핑이 국제사회와 소통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준다”며 “중국에서 습관이 된 공산당식 밀실조작을 국제사회에서도 그대로 되풀이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캐나다와 중국의 대면 정상회담은 2019년 오사카 G20 정상회의 이후 3년 만이다. 그동안 양국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이어졌다.

양국 갈등은 2018년 중국 통신 대기업 화웨이의 재무최고책임자(CFO) 멍완저우가 미국 당국의 요청으로 밴쿠버에서 구속되자, 중국 당국이 중국에 머물고 있던 2명의 캐나다인을 체포하는 보복성 조치를 가하며 표면화됐다.

캐나다 정부는 국가 안보상의 위험과 민주주의 침해를 이유로 중국 공산당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화웨이의 캐나다 5G 통신 인프라 진입을 금지했으며, 이달 초에는 혁신과학경제개발부의 프랑수아-필립 상파뉴 장관이 중국 기업의 캐나다 광물업체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또한 캐나다 연방경찰은 토론토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무허가 해외경찰서를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천쉬 제네바 유엔본부 주재 중국 대표가 지난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막된 제51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 제네바=로이터/연합뉴스

“인권침해 제재 않고 ‘대화’에 나선 결과”

경제·사회·과학 등 각 분야 교수 등 전문가 필진으로만 구성된 캐나다의 대안언론 ‘더 컨버세이션’은 18일 ‘시진핑은 왜 트뤼도를 꾸짖었나’라는 기사를 통해 이번 사건의 원인을 진단했다.

매체는 “중국 지도자들은 캐나다를 밀어붙일 수 있다고 자신한다”며 “왜냐하면 캐나다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 밀리는 상황을 개의치 않는다고 선전해왔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르면, 캐나다는 1990년대 장 크레티앵 정권(자유당) 시절부터 중국 공산당의 인권침해를 방관하며 조력자 노릇을 해왔다. 1989년 톈안먼 사태를 비롯해 중국의 인권침해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대신 ‘대화’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중국은 이러한 유화적 접근의 틈을 탔다. 중국은 인권문제 비판을 포함해 대화에 응하는 대신 조용히, 비공개로, 1대 1로 대화하자고 요구했다. 서방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중국은 대표적인 인권탄압 국가이면서도 유엔(UN) 인권위원회(이후 인권이사회로 개편)에 진입할 수 있었다.

매체는 “그 결과 중국은 유엔의 국제인권규범을 크게 바꿔놨고 이제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신장위구르 문제를 논의조차 할 수 없게 됐다”며 “중국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었던 일이다. 캐나다 정부 등이 도와줬기에 (유엔의) 시스템이 달라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6일 스웨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51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중국의 반발로 신장위구르족 등 무슬림 소수민족 인권탄압에 관한 특별토론 개최 여부를 묻는 토론이 무산됐다. 8월 보고서에서는 중국의 인권탄압이 ‘인류에 대한 범죄’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지만 중국은 “보고서가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더 컨버세이션’은 스티픈 하퍼 정부(2006~2015) 역시 중국과 무역을 강조하며 타협했고 존 배어드 당시 외교장관은 중국을 “동맹”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진핑은 “트뤼도 총리를 폐쇄적인 양자 관계로 다시 끌어들이려 한다”며 캐나다의 전임 정부들이 전례를 남겼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트뤼도 총리가 이를 바로잡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