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푸틴 정상회담, 백악관·NATO “예의주시”

한동훈
2022년 02월 5일 오후 2:40 업데이트: 2022년 02월 5일 오후 2:4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중공) 총서기가 4일 동계 올림픽 개막 전 베이징에서 만났다.

시진핑이 외국 지도자와 직접 얼굴을 마주 대한 것은 400여 일 만이다. 이날 나토는 “중·러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반응했고, 백악관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이 중국의 글로벌 이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베이징에 경고했다.

이날 중공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진핑은 이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과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후 공동성명에는 두 정상이 지정학적 문제들에 대해 표명한 공감대와 나토의 확장에 대한 우려가 담겼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긴장 고조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양국은 “서로의 핵심 이익과 국가 주권을 지키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해 상호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러시아는 중공이 강조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 독립 반대를 지지했고, 중공은 나토의 확장에 반대한다며 러시아 편을 들었다.

나토는 나토가 확장하려 한다는 러시아의 비난을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독립 국가로서의 주권을 존중하며, 길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더욱 긴밀하게 협력함에 따라 중·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한다며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가입시키지 않는다고 보증할 것을 요구했지만, 나토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톨렌베르그 사무총장은 “그들(중·러)은 더 많이 함께하고 더 많이 훈련한다”며 “그들은 며칠 전만 해도 이란과 합동해상훈련을 했다. 우리가 당연히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중공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시진핑이 푸틴 대통령과 만난 후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갈등이 중국(중공)의 국제 이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베이징에 경고했다”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이 중·러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묻자 “우리는 유럽의 불안정한 갈등이 중국의 글로벌 이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중공)도 이를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중·러는 미국, 영국, 호주 3국이 맺은 안보동맹인 오커스(AUKUS)에 대한 반대 의사도 밝혔다.

미·영은 작년 9월15일 오커스를 출범시키며 호주의 핵잠수함 건조를 지원하기로 했다. 3국 공동성명에 명시되진 않지만 미·영 언론들은 오커스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 역량을 강화하고 중공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푸틴과 시진핑의 이번 만남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놓고 서방과 러시아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경을 따라 10만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했다. 나토 동맹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려하고 있다.

중·러 정상회담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중공에 러시아를 돕지 말라고 경고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3일 기자회견에서 중공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받게 될 제재를 회피할 수 있도록 러시아를 지원하면 안 된다며 미국과 동맹국은 러시아 제재를 피하려는 외국 기업에 대응할 ‘일련의 도구’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중·러는 에너지 협력도 강화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극동지역 천연가스 공급을 대폭 늘리는 내용의 새로운 천연가스 협정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의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새 파이프라인을 통해 중국으로의 천연가스 수출을 당초 2025년까지 연간 380억㎥였던 목표치를 480억㎥로 늘리기로 했다. 다만, 목표량 도달 시점이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그동안 대만을 상대로 군사적 선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중공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에 대한 분석이 활발하다.

세계 최고 싱크탱크의 하나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라이언 하스 선임연구원은 트위터에 올린 분석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더라도 중공의 대만 침공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하스 연구원은 오히려 미국과 동맹국이 중공이 ‘잘못된 선택’을 내리지 않도록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사적 태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푸틴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18개국 정상급 지도자의 한 명이다. 한국은 정부 의전서열 2위인 박병석 국회의장이 참석해 중공의 체면을 세웠다.

서방 주요국은 중국의 열악한 인권실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일본 등이 앞장섰고 유럽 국가들이 합류해 총 12개국이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베이징 당국의 엄격한 코로나19 통제를 이유로 올림픽 초청을 거부한 국가 지도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