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추진하는 ‘의법치국’ 어떻게 실현될까

장톈량(章天亮)
2017년 01월 16일 오전 6:33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6

작년에 미국에 있는 나에게 주 정부에서 배심원으로 출석하라는 편지가 한 통 왔다. 판례법 체계를 취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법률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기본적인 상식과 정상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불러 배심원으로 출석하도록 한다. 피고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여부를 상식선에서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문제를 깨닫게 된다. 비록 법률 조항들은 복잡하지만, 법제도의 기초와 법제도의 정신은 간단하다. 기본적인 감정과 상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복잡한 이론은 잠시 내려두고, 중국에서 의법치국(依法治國.법에 의거해 나라를 다스림)을 실현하는 방안에 대해 상식으로부터 출발해 논의해 보도록 하자.

1. ‘부패와의 전쟁’과 의법치국

올해로 취임 4년째에 들어서는 시진핑은 그간 헌법에 위배되는 노동교양제도를 폐지하는 등 ‘의법치국’을 목표로 눈에 띄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부패와의 전쟁’에 있어서도 ‘법에 따르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와의 전쟁’은 전반적으로 수많은 질타를 받았다. 정적들의 고의성 폄하발언을 차치하더라도, ‘중앙기율위를 통해 부패인사를 체포, 심리한 시진핑의 방식은 위법이고 위헌’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법률적인 관점에 따르면 법집행기관이 아닌 중기위에는 국민의 인신자유를 제한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개별 안건 심리에 있어서 역시 ‘오직 사실만을 근거로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음이 역력하다. 이 점은 주지하듯 보시라이, 저우융캉, 궈보슝 등이 수수한 뇌물이 법정상에서 공표된 수치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과, 그들의 반인류적 죄행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진핑이 이들에 대해 취한 조치를 우리는 여전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는 기본적인 상식에 근거한 판단이다.

예컨대 제2차대전 당시 전쟁범죄와 반인류적 범죄를 자행한 히틀러를 생각해 보자. 당시 우리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에게 “연합군은 법집행기관이 아니니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독일의 법률에 따라 히틀러를 체포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고지식하다고 비웃음을 샀을 것이다. 법률이 실제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유태인에 대한 학살은 처음부터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치 정부는 법률 위에 군림하는 독재정부였고, 법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치 정부부터 궤멸시켜야만 했다.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 재판[의 판결]은 파시스트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실현가능성을 가지게 되었다.

마찬가지 원리로, 중국의 최고법원과 최고검찰원, 공안부가 모두 정법위원회 서기인 저우융캉의 아래에 있는 상황에서는 정법위를 개혁하지 않는 한 저우융캉을 체포할 수 없다.

시진핑과 장쩌민 간 힘겨루기의 본질은 전쟁이다. 나는 이 ‘전쟁’ 과정에서 어떤 ‘법적인’ 분쟁해결 통로가 이용되리라고는 애초에 기대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이미 상황이 달라졌다. 시진핑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전쟁’이 끝나려는 시점에서 나는, 앞으로 시진핑과 중국 국민들 사이에 ‘전쟁’ 상황이 빚어져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의법치국’이 ‘뉴 노멀’이 되어야 한다.

중국의 현 제도 하에서 ‘의법치국’의 실현은 가능할까? 이 글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이것이다.

2. ‘의법치국’, 어떤 ‘법’에 ‘의거’할 것인가

‘의법치국’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어떤 ‘법’에 ‘의거’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금 기본적인 문제, 즉 법률을 제정하는 원칙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선 중국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기원전 141년 불과 16세의 나이로 제위에 오른 한무제는 곧바로 조령을 내려 현량하고 품행이 바르며 간언에 능한 선비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천인삼책(天人三策)>으로 널리 알려진, 한무제와 동중서(董仲舒) 간의 세 차례 문답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동중서는 문답에서 ‘제자백가를 모두 내쫓고, 오직 유학만을 숭상해야 한다(罷黜百家,獨尊儒術)’는 요지의, 유명한 주장을 펼쳤다. 이 이야기는 흔히 유교가 최고 지위에 등극하게 된 계기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동중서가 ‘법제가 자주 바뀌면 일반 백성들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게 된다(法制數變,下不知所守)’고 말한 이유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드물다. 국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법제도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동중서는 이미 2천여 년 전에 예민하게 포착해냈던 것이다. 그리고 안정적인 법제도를 위해서는 법률을 제정하는 기반 역할을 해 줄 안정된 국가 이데올로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나라 이전 중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는 크게 3가지 단계—전국시대의 백가쟁명, 진나라 때의 법가, 그리고 한나라 초기의 도가—를 거쳤다고 본다. 백가쟁명 당시는 탐색 단계로서 대규모 실험은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논하지 않겠다. 법가를 숭상했던 진나라의 법령은 혹형을 원칙으로 했는데, 그 결과 진나라는 2대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한나라 초에는 정반대의 추세가 나타났다. 도가의 관대함과 ‘무위’를 원칙으로 한 한나라에서는 비록 경제는 번성했으나 지나친 관용으로 인해 내부적 정치 위기가 발생했다. 한나라 경제(景帝) 때 일어난 ‘칠왕의 난(七國之亂)’이 그것이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흉노의 침입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도가에서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을 이상적인 국가로 본다. 그러나 중국처럼 광대한 영토와 거대한 인구를 가진 국가의 경우 아무런 법제도 없이 완전히 ‘무위’에 맡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동중서는 법가와 도가 사이의 중도, 즉 지나치게 관대하지도 지나치게 엄격하지도 않은 제도를 선택했는데, 유가의 방식이 바로 그랬다. 이후 2천여 년 간 중국에서는 법률을 제정하는 원칙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이는 각 시대 각 왕조마다 모두 유가 사상을 국가 이데올로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법률 측면에서는 도가나 법가 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안정이 유지됐다.

이제 서양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양의 법률은 그들의 신앙에 따라 좌우된다. 하버드대 버만(Harold J. Berman) 교수는 <법률과 종교>라는 얇은 책에서 ‘법률은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종교와 유사할 뿐만 아니라 원칙이라는 측면에서도 종교의 교리에 부합하는데, 이는 법률이 종교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언급했다. 그는 “법률은 반드시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명무실해지고 만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법학자들은 서양에서 법률을 제정하는 근원은 ‘모세의 십계명’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모세의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세 가지 계명은 사람과 신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예수가 말씀하신 대로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해 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나머지 일곱 계명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 것으로, 예수가 정리하신 대로 ‘타인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내용이다. 뒷부분의 일곱 계명은 앞선 세 계명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신을 사랑하므로, 신도 사람을 사랑하시며, 그러므로 사람들은 서로 돌봐 주어야 한다’는 세상에 대한 단순한 인식을 따른다.

그러므로 법률의 목적이 아무리 범죄를 처벌하는 데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전제는 ‘사랑’이다. 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기독교에 기반해 건국된 나라인 미국은 이러한 관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굳게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없었고, 그렇기에 민주제도를 실시했다. 마틴 루터 킹 박사가 백인과 흑인 간의 평등을 요구하고 결국 인종간 격리제도를 폐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이념 덕분이었다.

미국의 이러한 운동들이 개별 악법에 저항하는 방식 역시 법률의 기본 원칙과 정신을 되새김으로써 이루어짐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비폭력 저항’ 과정에서 폭력을 맞닥뜨렸을 때 그들이 보여준 평화와 비폭력, 동시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초기 기독교가 300년간 로마제국의 박해를 견디는 과정에서 견지한, 평화롭지만 끈질긴 항명행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상술한 내용은 다소 산만해 보이지만 총 세 가지 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국가에 안정적인 국가 이데올로기가 있어야만 안정적인 법률이 있을 수 있다. 두 번째, 고대 중국과 현대 서양 법률이 안정을 유지한 것은 국가이데올로기가 각각 유가의 윤리 혹은 종교적 신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들의 기본적인 교리는 천 년이 가도록 변함없다. 세 번째, 법률을 제정하는 원칙은 선량함과 사랑에 기반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로 하여금 법률을 적대시하거나 조롱하지 않고 신뢰, 존중하도록 할 수 있다.

3. 중국에서 법치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일까

위에서 정리한 세 가지 결론을 출발점으로 삼아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현재 중국의 이데올로기 하에서는 ‘의법치국’을 실현할 방도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선 공산당에는 불변의 원칙이 존재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계급투쟁을 위주로’라는 기조는 ‘경제건설이 핵심’으로, 그리고 다시 장쩌민 후반기의 ‘파룬궁 탄압이 핵심’으로 바뀌었다. 사회주의 ‘공유제’는 ‘(특권층의)사유재산은 신성불가침’이라는 제도로 바뀌었다. 60여 년간 헌법은 제4호까지 개정됐는데, 제4호 헌법이 1982년 공포된 이후로도 4차례 수정이 가해졌다. ‘법제가 자주 바뀌면 일반 백성들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모르게 된다’는 동중서의 말 그대로다.

공산당의 법률은 한 번도 윤리나 신앙을 핵심으로 둔 적 없이 이익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수시로 일어나는 이익관계의 변동은 필연적으로 법률의 수시 변동을 초래하게 된다.

한편 공산당이 법률을 제정하는 원칙은 ‘사랑’이 아닌 ‘미움’에서 출발한다. 법률의 목적은 사회 공평과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공산당) 통치계급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마르크스는 “법은 통치계급의 의지가 표현된 것’, ‘계급사회의 산물이자 계급통치의 도구’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한 공산 국가의 국민들이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2분간 증오를 훈련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을 묘사한 바 있다. 이 소설에서 국민들은 스크린상에 등장하는 당의 원수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면서 마음속의 공포와 분노를 발산한다.

일견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 장면은 사실 지난 60년간 현실 속에서도 모습을 달리해 나타나고 있었다. “XXX의 대가리를 깨부숴 버려라”라던 문화혁명 시대의 비판투쟁부터 ‘6.4 폭도’들과 진, 선, 인을 믿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향한 분노가 그것이다. 때로는 민족주의적인 모습으로도 나타나는데, 이 때 분노는 대만, 일본, 미국 및 ‘중국을 반대하는 각종 ‘반중세력’으로 향한다.

통치계급의 이익에 도전한 너희 적들에게는 일말의 ‘사랑’도 줄 수 없다는 식의 이러한 시스템은, ‘통치계급의 의지’(즉 공산당의 이익)에 반기를 들 경우 누구라도 즉시 진압 대상이 되도록 만든다.

변호사의 관점에서, 법률 조문들은 언제나 현실보다 힘이 약하다. 법률 조문을 인용해 그 조문에서 규정한 정의(正義)를 구하는 자가 있을 경우 공산당의 법관들과 검찰들은 그에게 ‘법률의 정신’을 들먹인다. 그렇다. 그들은 학술적인 어휘가 아니라 통속적인 일반인의 언어로 ‘법원은 공산당 것’이니 당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 자신은 별 생각이 없겠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공산당 국가의 ‘법률의 정신’이다.

그러니 이런 법률은 끊임없이 변동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신성성도 찾아볼 수 없다. 버만 교수가 이야기한 “법률은 반드시 신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명무실해지고 만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계급통치의 도구’에 기반한 공산당의 ‘법률의 정신’은 지난 60여 년간, 아니 심지어 지난 100년간 수없이 많은 억울한 오판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공산당’이라는 명의를 계승하는 지도자는 누구라도 과거 8천만에서 1억 명에 달하는 인명을 학살한 씻을 수 없는 죄값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목숨은 목숨으로 값고, 돈은 돈으로 값는다’는 기본적인 상식으로 볼 때 공산당이 법치를 이행하고자 할 경우 우선 공산당 자신부터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공산당의 손에 묻은 피는 다시 피를 부른다는 현상을 우리는 종종 목격해왔다. 과거에 인명을 살해한 책임을 공산당에 미루는 사람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공산당 통치를 위협하는 인물이 된다. ‘법률은 통치계급의 의지의 표현’이라는 원칙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연히 향후 공산당이 진압, 손에 새롭게 피를 묻히도록 하는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하면, 공산당에게 있어 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가령 저우융캉이 아직 정법위 서기로 재직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검찰원으로 하여금 자신을 조사하고 최고법원에 공소를 제기하도록 명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인 것이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