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산 칼럼] 자오웨이와 ‘정치 사기꾼’

스산(石山)
2021년 09월 3일 오전 10:00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2

시국이 변화무상하고 세상일은 바둑과 같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그렇고 정치는 더욱 그러하다.

오늘은 중국에서 한때 잘나가던 자오웨이(趙薇) 관련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과거 30년 동안 필자는 중국 영화나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다. 합치면 대략 두 편 반 정도 봤다. 하나는 ‘공화를 향하여(走向共和)’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랑야방(瑯琊榜)’, 그리고 10여 년 전에 본 ‘촹관둥(闖關東)’이다.

사극을 포함해 다른 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당시 히트했던 ‘황제의 딸(還珠格格)’도 보지 않았다. 그래서 자오웨이에 대한 인상이 깊지 않다.

필자가 자오웨이 사건을 주목하는 것은 주로 정치적 차원에서다. 이 사건은 분명 단순한 연예계의 일도, 재계나 투자계의 일도 아니다.

중국 대륙에서 최근 여러 유명인, 연예계 스타들이 당국의 단속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번 자오웨이 사건은 좀 다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사건을 파헤치면 진상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건의 특이점을 파악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우선 자오웨이는 갑자기 사라졌다. 자오웨이는 지난 8월 26일 대륙의 각종 영상물 플랫폼에서 퇴출되고 또 개인과 회사의 커뮤니티 계정이 모두 폐쇄되면서 순식간에 인간 세상에서 증발했다. 자오웨이가 사라진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당국은 언급하지 않고, 인터넷에서도 오리무중이고, 친지들도 모른다.

예전에는 연예인 사건이 터질 때는 항상 죄명이 먼저 공개됐다. 예를 들면 무슨 독립을 주장했다거나 무슨 레드라인을 밟았다거나 하는 죄명이 먼저 정해진다. 그러나 자오웨이 사건은 그런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씌워진 죄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이것이 첫 번째 특이점이다.

자오웨이 사건은 또 하나의 특이점이 있다. 즉 지금까지 그 어떤 기업도 자오웨이와의 계약을 해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단지 모델 공식 홈페이지에서 그녀의 사진만 조용히 내렸을 뿐이다. 이는 자오웨이 사건이 여론 선전, 애국주의 등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까지 중국 중앙선전부는 아마 이 사건을 처리하는 데 관한 지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마오(五毛)들의 집단행동이 아직 보이지 않고, 업체들도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자오웨이는 갑자기 대중의 시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인터넷에서나 영화, 드라마에서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죄목도 비판도 없이 철저히 사라졌다. 필자는 이 몇 가지 특이점을 관통하는 설명은 딱 한 가지뿐이라고 본다. 그것은 자오웨이가 저지른 일이 너무 크고 너무 광범위하게 얽혀 있어 결코 영화권이나 연예계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일반적인 금전 문제를 초월한다. 이런 유의 사건은 정치권의 거물급 인사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자오웨이의 사건은 잠시 두고 다른 사건을 이야기해 보자.

8월 16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는 국가감사위원회 홈페이지에 류신윈(劉新雲) 산시(山西)성 부성장 겸 공안청장이 심각한 기율 위반으로 당적과 공직에서 퇴출됐다고 고지했다. 중기위 통보에서 언급한 부정부패, 뇌물수수 등의 혐의는 다른 통보 내용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중 특별한 내용이 있었다. 바로 그가 “정치 사기꾼과 사귀었다”고 비판한 점이다.

‘정치 사기꾼’은 한 부류의 사람들일까, 아니면 한 사람일까?

이 표현은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한 차례 나온 바 있다. 1971년 9월 린뱌오(林彪)가 도주하다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하자 중국 공산당은 린뱌오 문제를 당에서만 처리하고 당 외에는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각종 선전 보도에서 사라졌다. 몇 달 후,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는 린뱌오를 비판하기 시작했지만, 관영 매체들은 여전히 린뱌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류사오치(劉少奇)와 같은 정치 사기꾼’이라고만 했다.

당국이 린뱌오를 ‘정치 사기꾼’으로 지칭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최고 지도자의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서다. 당시 마오쩌둥은 린뱌오의 지지에 기대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린뱌오를 친밀한 전우라고 했고 또 린뱌오를 법적 후계자로 당장(黨章·당헌)에 써넣기까지 했다. 전(全) 중국은 “마오 주석 만세”를 외친 후에 “린 부주석의 건강을 기원한다”고 외쳤는데, 갑자기 반당분자로 몰면 어찌 지도자의 체면이 서겠는가.

둘째, 당시 중국 내 당권파(當權派)가 받아들일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마오쩌둥과 문혁파는 기존의 관료들을 타도하고 권력을 탈취했다. 린뱌오는 문혁파의 2인자였기 때문에 1970년에 이르러 모든 당권파가 린뱌오와 관련이 있었다. 특히 군부가 그랬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은 린뱌오를 숙청하고 나서 린뱌오의 측근들을 교체하는 한편, 당시 집권했던 문혁파에게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을 줘야 했다. 그래서 너무 서두를 수 없었다.

린뱌오가 실각한 지 2~3년이 지나서야 중국 관영 매체들은 린뱌오에 대한 비판을 선언하고 린뱌오와 공자를 비판하는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을 공식화했다. 그 전까지 린뱌오는 단지 ‘류사오치 같은 정치 사기꾼’이었다.

왜 정치 사기꾼인가? 백성을 속였을까? 아니다. “마오 주석을 속였다”는 것이다. 마오 주석은 틀릴 리 없고 항상 정확한데, 그런 마오 주석을 린뱌오가 너무 교활해 속였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위대한 지도자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정치 사기꾼’이라는 표현은 당내 선전 부서에서 조심스럽게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세력을 잃은 사람들을 비판해야 했고, 또 실세(實勢) 지도자의 체면을 세워줘야 했다. 중국 공산당의 ‘정치 사기꾼’이라는 죄명은 그때 단 한 번 사용했다. 노선 투쟁이나 중앙을 분열한다는 등의 죄명은 자주 쓰인다. 하지만 ‘정치 사기꾼’이란 표현은 한 번밖에 쓰지 않았다.

이번에 산시성 공안청장이자 부성장인 류신윈이 낙마하면서 우리는 놀랍게도 ‘정치 사기꾼’이라는 죄명을 다시 듣게 됐다. 이 점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중국 공산당의 논리대로 류신윈이 ‘결탁’한 사람은 직위가 상당히 높을 것이다. 또한 이 정치 사기꾼은 틀림없이 최고 지도자가 매우 신임했던 인물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기꾼’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마오쩌둥과 린뱌오의 상황과 유사하다.

셋째, 중공도 지금 이 사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어렵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비판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이 정치 사기꾼의 대략적인 윤곽은 짐작할 수 있다. 몇 년 전 인터넷에는 “도화담(桃花潭)의 수심이 천 자(尺)라 한들 장정(江曾·장쩌민과 쩡칭훙)이 나에게 준 정(情)에는 못 미친다”는 말이 전해졌다. 누군가가 이백의 시를 빌려 현 정치를 이야기한 것이다. 즉 시진핑이 집권하고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장쩌민(江澤民)과 쩡칭훙(曾慶紅)의 추천 덕분이라는 것이다.

류신윈이 ‘결탁’한 이 ‘정치 사기꾼’은 누구일까? 여러분도 스스로 퍼즐을 맞출 수 있다.

이제 다시 자오웨이 사건으로 돌아가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중국 당국이 자오웨이를 다루는 방법은 다른 연예인을 다루는 방법과 완전히 다르다. 자오웨이가 사건에 연루된 가장 큰 문제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알리바바와의 관계이다. 2014년 12월 22일, 자오웨이와 그의 남편 황유룽(黃有龍)은 30억 8000만 위안(약5525억원)을 투자해 알리바바픽처스 주식 19억3000만 주를 사들여 2대 주주(9.18%의 지분 소유)가 됐다.

자오웨이는 영화배우이지만 투자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주로 연예계에 투자했다. 과거에는 영화와 드라마에 많이 투자했다. 중국 영화 업계에서 과거 20여 년 동안 ‘영화계의 차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쩡칭훙의 동생 쩡칭화이(曾慶淮)이다. 수년간 문화부 특별순시원 신분으로 홍콩에서 활동한 그는 홍콩 연예계에서 ‘말 한마디가 천금’인 인물이다. 중국에서 영화계를 주름잡으려면 ‘차르’와 같은 인물이 뒤를 봐줘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저장(浙江)성 관료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오웨이는 몇 년 전 6000만 위안으로 완자문화(萬家文化)의 백억 위안에 달하는 자산을 삼키려 할 때 바로 저장성 관료계의 인증을 통과했다. 하지만 막판에 베이징 당국이 제동을 걸었다.

최근 저장성 관료계에 대지진이 발생했다. 항저우(杭州)시 당서기 저우장융(周江勇)이 조사를 받았고, 저장성 관료 3만 명이 이른바 ‘정경 유착관계’를 스스로 시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번 저장성 관료계의 대지진 역시 마윈의 앤트그룹 상장과 관련이 있다. 앤트그룹 주식을 일시적으로 매입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려던 꿈이 앤트그룹의 상장이 중단되면서 깨졌고, 이로 인해 저장성 관료계의 많은 내막이 드러났다.

저우장융 사건의 경우, 가족이 은행에서 5억 위안을 대출해 앤트그룹 주식을 산 사실이 적발됐다.

저장성은 시진핑의 진정한 ‘용흥지지(龍興之地·왕업이 흥한 곳)이자 그의 권위의 기지로, 즈장(之江·저장성 항저우시의 강) 신군(新軍)의 관리들이 시진핑 집권 이후 이곳에서 출발해 국정을 주관했다. 저장성의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연루될 것이다.

당시 자오웨이가 완자문화를 인수할 때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했는데, 주로 샤오젠화(肖建華)의 밍톈(明天)그룹으로부터 빌렸다. 이 밍톈그룹은 금융제국이자 쩡칭훙의 아들인 쩡웨이(曾偉)의 금융 발판이었다. 당시 쩡웨이는 바로 이 발판으로 산둥성 최대 국유 전력기업인 루넝(魯能)그룹을 집어삼켰다.

정치 사기꾼, 알리바바, 앤트그룹, 저장성 항저우, 마윈, 장쩌민, 쩡칭훙, 자오웨이 등을 연결하면 더욱 선명한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