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대통령, 사임 직전 군용기 타고 몰디브로 도피

한동훈
2022년 07월 13일 오후 4:35 업데이트: 2022년 07월 18일 오후 6:47

국가 부도 사태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스리랑카에서 대통령이 13일 새벽 국외로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리랑카의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인과 경호원 2명을 데리고 스리랑카 공군기 편으로 몰디브 수도 말레를 향해 떠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현지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10일 사임을 발표하고 13일 공식 퇴임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기습적으로 국외로 탈출했다. 그는 몰디브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9일 스리랑카 최대 도시 콜롬보에서는 경제난에 분노한 수천 명의 시위대가 대통령궁과 총리 공관을 난입,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리랑카 국민들은 지난 몇 달간 식량, 연료, 의약품 부족을 겪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경제난 주범으로 지목됐으나 사임하지 않고 버텼지만, 대통령궁이 점거되자 백기를 들었다. 시위대를 피해 콜롬보의 국제공항 인근 공군기지로 피신한 라자팍사 대통령은 당일 밤 국회의장을 통해 전격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날 라자팍사 대통령의 국외 탈출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더는 불체포특권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리랑카 출입국 관리들은 법률에 따라, 현직 대통령의 출국을 막을 수 없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출입국 관리들은 라자팍사 대통령의 출국을 ‘현행법’의 틀 안에서 저지해왔다. 지난 12일에도 라자팍사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로 출국을 시도했으나, 보안검색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아서는 출입국 관리들과 대치하던 끝에 UAE 항공편 4편을 놓치며 돌아섰다.

스리랑카의 국가 부도는 사회간접자본(인프라) 투자를 위해 대규모 외채를 끌어 쓰다가 빚어진 일로 평가된다. 특히 중국이 주도하는 인프라 건설사업인 ‘일대일로’ 참여가 결정적이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중국의 차관을 받아 2010년 함반토타 새 항구를 건설했지만, 사업 부진으로 빚더미에 빠지자 2017년 항만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겨줬다. 2013년에는 함반토타에서 가까운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마탈라 라자팍사 국제공항’을 건설했지만 이용객이 적어 빚만 늘리고 끝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지난 1월 자국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에게 채무 재조정을 요구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스리랑카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주요 채무국인 중국의 협조를 요구했으나 중국은 IMF에서 먼저 자금을 투입하라며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