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더버그 감독, 신작 ‘더 런드로맷’서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 조망…중국씬 충격의 13분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중국에서는 관련 정보 차단

베니스=Dennis Wu
2019년 09월 8일 오후 11:31 업데이트: 2020년 01월 2일 오전 11:59

‘파나마 페이퍼스’ 사건을 다룬 영화 ‘더 런드로맷(The Laundromat·세탁소)’이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주목을 받았다.

지난 7일 폐막한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신작 ‘더 런드로맷’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대상인 황금사자상은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에 돌아갔지만, ‘더 런드로맷’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가운데 세기적 사건이었던 ‘파나마 페이퍼스’를 다룬 내용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는 소설 ‘시크리시 월드: 자본가들의 비밀 세탁소(Secrecy World: Inside the Panama Papers)’를 원작으로 지난 2016년 국제사회를 뒤흔들었던 문서유출 사건 ‘파나마 페이퍼스’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세계 각국의 정치인, 권력자, 부호, 재벌들이 조세를 포탈하고 자금은 세탁하며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모습이 메릴 스트립, 게리 올드만,  안토니오 반데라스, 샤론 스톤, 데이빗 쉼머, 제프리 라이트 등 연기파 배우가 총출동한 가운데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영화 ‘더 런드로맷’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시사회장에서는 미국 뉴욕부터 프랑스 파리를 거쳐 파나마와 러시아 그리고 중국까지 종횡무진하며 충격적인 장면을 유머와 풍자로 버무린 96분간의 코미디에 관중석은 수시로 웃음을 터뜨렸다.

‘파나마 페이퍼스’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문제작

‘더 런드로맷’ 예고편은 지난 7월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 소식과 함께 전 세계에 공개됐지만, 중국 온라인에서는 예고편은 물론 영화에 대한 모든 정보와 네티즌 반응까지 순식간에 삭제되거나 차단됐다.

파나마 페이퍼스는 조세 회피처인 파나마의 최대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가 보유한 비밀문서 1150만 건으로 역외회사 20만 곳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유출된 문서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의 최대 고객은 중국으로 전체 고객의 1/3이 중국 고위층이었다. 그에 따라 ‘더 런드로맷’은 러닝타임 중 약 13분을 중국에서 발생한 이야기 전개에 할애하고 있다.

베니스 시내에 세워진 영화 ‘더 런드로맷’ 대형 광고 | Marius Iacob/에포크타임스

중국 장면에서는 지난 2012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보시라이 충칭시 전 서기와 부인 구카이라이가 중국의 수련단체 파룬궁 탄압에 가담하고 수련자들로부터 장기를 적출하고 시체를 매매한 충격적인 실화가 그려진다.

소더버그 감독 “이 주제를 담론하는 것은 그저 시작일 뿐”

지난 1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과 주연배우 메릴 스트립, 게리 올드만, 원작소설 작가 제이크 번스타인이 영화제 기자 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소더버그 감독은 부정부패는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2000년에는 1%의 부자가 전 세계 부의 1/3을 차지하고 있었고, 현재는 1/2이 됐다. 투명성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만, 세계 많은 지역은 법률체계 자체가 부패해 일반 국민들은 그런 위법 행위를 추궁할 능력이나 항의할 수단마저 없다. 그러므로 지금은 매우 불안감을 주는 시대다. 이 화제를 담론하는 것, 이것은 그저 시작일 뿐이다.”

제76회 베니스영화제가 8월 28일부터 9월 7일까지 베니스 리도섬에서 열렸다. | Marius Iacob/에포크타임스

소설을 각본화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원작 소설가 제이크 번스타인이 대답했다.

“각본가 스콧 번스와 협력하게 돼 영광이었다. … 소더버그 감독은 책 속에서 보이는 각양각색의 문제에 관해 내게 질문했다. 어느 부분이 진실이며 어느 부분이 거짓인가 등등. 그들이 디테일에 대해 기울이는 관심은 정말 놀라웠다.”

번스타인은 “영화와 내 책은 한 가지 공통된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은 바로 ‘파나마 페이퍼스’를 통해 전 세계 금융 세탁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게리 올드만은 “현실성과 자연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어떤 대본 외 에드리브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모두 대본 속에 있었기 때문에 쓰여 있는 지시대로 하면 됐다. 잘 된 대본은 마치 지도처럼 어떤 길을 어떻게 가야 하고, 어디에서 멈추어야 하는지, 어디서 유머를 넣어야 하는지 등등을 다 알려줬다”라고 평가했다.

메릴 스트립은 이번 영화에 대해 “정말 오락적이고 신선하며 매우 어둡고 사악한 코미디를 재미있게 풀어낸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런 희극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수 있지만, 피해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피해자는 바로 기자들이다. 파나마 페이퍼스가 세상에 알려진 후, 탐사에 들어간 많은 기자가 살해당했다. 정부 고위관료를 조사하던 한 여기자는 숙소에 주차해 놓은 차가 전소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 일로 희생당한 사람도 있다. 생명의 위협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 영화는 매우 흥미롭지만 그들은 잔혹하다. 정말 진심으로”

 

관객들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1일 밤 8시 ‘더 런드로맷’의 두 번째 일반 관객 대상 상영이 팔라 비엔날레(PalaBiennale) 영화관에서 열렸다.

한 이탈리아 관객은 “영화 속 스토리가 흥미롭다. 배우들이 인물을 매우 생동감 있고 절묘하게 표현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중국 장면에서 다뤄진 장기 밀매 부분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라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더 런드로맷’은 토론토 국제영화제 특별 부문으로 초청됐으며 오는 10월 18일부터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다.

 


영화 ‘더 런드로맷’ 속 충격의 13분 중국 시퀀스 ‘장기밀매’ 사건

영화 ‘더 런드로맷’의 중국 씬은 호화로운 호텔 객실에서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둘다 극중 배역)가 위스키를 들어 올리면서 비즈니스 협상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 화면이 전환되며 두 사람이 언급하는 ‘비즈니스’의 실상을 그린 끔찍한 장면이 교차편집으로 전개돼 객석에 충격을 선사한다.

뒤이어 보시라이(극중 배역)가 경찰을 이끌고 나타나는 장면 역시 충격적이다. 이후에도 범죄 장면이 계속 진행되며 승승장구하는 둘의 모습이 그려지지만 공모자였던 왕리쥔이라는 인물이 밀고자로 변모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구카이라이(올해 60)는 2012년 영국 사업가 닐 헤이우드(2011년 말 사망) 살해 혐의로 체포됐다. 닐 헤이우드는 구카이라이가 권한 독이 든 위스키를 마시고 사망했다.

같은 해 보시라이는 오른팔이었던 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국 영사관 진입사건으로 수뢰·횡령·직권남용 혐의가 드러나 무기징역형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