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은 중국보다 안전” 발언한 교수, 학생 신고로 정직

강우찬
2023년 03월 13일 오후 3:53 업데이트: 2023년 03월 13일 오후 3:53

중국의 한 대학 교수가 수업 중 자국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학생들의 밀고를 당해 정직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중국식 애국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청년 세대들이 새로운 홍위병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중앙사 등 대만 언론은 지난 8일 난징항공항천대학 경제경영학과 천사이빈(陳賽彬) 교수가 강의시간에 중국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는 학생들의 신고에 따라 정직 처분을 받고 학교 측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천 교수는 미국의 총기 문제와 관련해 총기 소유가 허용되면 자택에 침입하려는 이들로부터 자신을 더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면서 “그들(미국)이 더 발달하고 더 문명적이며 더 자유롭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천 교수는 이어 “선진국은 중국보다 범죄율이 낮고 안전하다”며 “우리(중국)는 탕산 집단폭행 같은 범죄가 많다”고 지적했다.

탕산 집단폭행은 지난해 6월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의 한 식당에서 폭력배들이 여성 4명을 잔혹하게 집단폭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중국의 열악한 치안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로 받아들여지며 중국 전역에서 엄청난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 중국 관영언론들은 미국의 총기 난사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미국은 야만적이고 위험하며 중국은 더 문명화되었고 안전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탕산 폭행 사건 발생 후 비슷한 기사와 논평을 쏟아내며 불만 여론을 무마하려 해왔다.

천 교수의 발언은 학자로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중국 언론에 일침을 가하는 한편, 자국 언론 보도만 접한 중국 학생들이 치우친 시각을 갖는 것을 경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천 교수는 중국의 경제 현실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중국 경제의 70%가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며 “외국이 중국을 경제 봉쇄하면, 중국인 절반은 굶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과 관영언론들은 중국이 세계 경제를 떠받들고 있다고 선전하지만, 중국 경제의 번영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며 외국과 도움을 주고받을 때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또한 수학, 물리학은 물론 중국 공산당이 최고의 이념으로 숭상하는 마르크스주의마저도 모두 서양에서 왔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대학에서 배우는 이론 중 중국인 이름이 붙은 것은 하나도 없다”며 학생들의 냉철한 현실 인식을 당부했다.

아울러 천 교수는 100여 년 전 북양 군벌의 시대가 “가장 민주적이었다”며 1928년 국민당 장제스가 중화민국 총통에 오르기 전까지 몇 년 사이에 여러 차례 총통이 교체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당시의 중국은 일당독재 체제인 현재와는 뚜렷하게 달랐음을 은연중에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수업 이후 칠판에 천 교수를 비난하는 글을 쓰는 등 격렬하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난징항공항천대는 8일 성명을 내고 “본교 교직원 중 한 명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며 “해당 교직원을 정직 처분하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성명은 대학 교무처가 아니라 대학 내 공산당 위원회 명의로 발표됐다.

전 상하이대 교수 구궈핑(顧国平·68)은 천 교수에 대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구 전 교수는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중국 경찰의 집중적 감시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베이징 시내 고가도로에 시진핑 파면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린 사건을 옹호해 또 한 번 정권의 눈 밖에 난 적이 있다.

구 전 교수는 미국 RFA와의 인터뷰에서 “천 교수의 이른바 ‘부적절한 발언’은 중국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학자가 어떤 사안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민주주의 부합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교사가 수업시간에 조금이라도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면 학생들이 소리를 질러 수업을 방해하고, 교내 공산당 조직에 고발하는 풍조가 최근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발언을 감시당하는 일은 교수와 교사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중화권 인기배우들은 정권 비판이 아니라 그저 대만이나 홍콩에 호의적인 발언을 하기만 해도 ‘대만 독립 지지자, ‘홍콩 독립 지지자’의 낙인이 찍혀 연예계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해외 브랜드나 외국계 기업뿐 아니라 중국 브랜드나 중국 기업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 평론가 리닝은 “현재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결합한 애국주의 교육은 사실 애국(愛國)이 아니라 애당(愛黨) 교육이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이용해, 공산당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젊은이로 만드는 세뇌교육”이라고 분석했다.

리닝은 “젊은층을 사상적으로 통제해 특정한 목소리를 묵살하려는 움직임은 중국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보수 인사 혹은 보수적 발언을 한 유명인사, 이들을 후원하는 기업이 온라인에서 보이콧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중국에서는 학생들이 수업을 방해하고 교사의 발언을 학교 측에 신고할 수준으로 그 정도가 심각해졌다”며 “결국 사회의 퇴보를 앞당길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