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경제제재 VS 러시아의 반격…누가 우세한가

허칭롄(何淸漣)
2022년 04월 11일 오전 9:20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11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전 양상으로 번지면서 치열한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러·우 전쟁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한 달여 동안 지속되고 있는 미국과 서방의 러시아 제재와 이에 대응하는 러시아의 반격이다. 러시아 의회는 지난달 4일 ‘반(反)제재법’을 통과시키면서 맞서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금융 제재를 가한 데 이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을 금지했고, 러시아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화로만 받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러시아, 천연가스 내세워 초강수…유럽 뾰족한 해법 없어

푸틴 대통령이 3월 31일 서명한 대통령령에 따르면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48개국은 4월 1일부터 러시아 천연가스 구매 대금을 루블화로만 지불해야 한다.

EU는 표결을 통해 푸틴의 요구를 거부하려 했지만 헝가리가 반대해 부결됐다. 이 때문에 EU 회원국들은 EU 명의로는 루블화 결제를 거부할 수 없게 됐다.

2월 말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시스템에서 배제한 조치는 ‘금융 핵폭탄’으로 간주됐다. 당시 이 조치로 러시아 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EU의 ‘필살기’에 맞대응하는 조치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대금을 루블화로만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서구 좌파 정부의 지도자와 싱크탱크는 선거전에는 능하지만 치국(治國)에는 서툴다. 국제사회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좌파 진영은 자신들의 킹 카드와 적의 약점만 보고 자신들의 약점과 적이 쥔 카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이 좌파 진영 언론의 선전에 고무된 결과다.

미국과 유럽은 이번 제재에서 두 가지 오류를 범했다. 첫째,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가 정치화됐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이후 중국은 미국과의 디커플링에 대비해왔다. 둘째, EU 회원국의 경제가 자원 의존형이거나 시장 의존형이란 점을 가볍게 봤다. 물론 독일처럼 자원과 시장에 모두 의존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 EU 국가들, 특히 독일로서는 러시아가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데다 파이프라인으로 공급하는 운송의 특수성 때문에 러시아를 대체할 공급처를 찾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가스 수출량 데이터가 잘 설명한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연간 수출량은 227억310만㎥에 달한다. 미국이 2위로 131억8520만㎥, 카타르가 3위로 125억1470만㎥를 수출한다. 연간 3억5490만㎥를 수출하는 중국은 35위다.

다년간 그린에너지를 추구하면서 탄소배출권 거래까지 발명해낸 유럽에서는 천연가스가 ‘비탄력적 수요(Inelastic Demand)’가 됐다. 이는 상품 수급 관계에서 가격의 영향을 덜 받는 수요를 말한다. 즉, 가격이 오르거나 내려도 수요는 큰 변화가 없음을 말하는데 꼭 필요하고 또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 힘든, 주택·소금·밀·쌀 등의 상품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것의 상대개념이 ‘탄력적 수요’다.

서방의 좌파들은 네오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자 국제정치경제학자인 사미르 아민(Samir Amin)의 가르침을 잊은 게 분명하다. 아민은 ‘세계 자본주의는 부유한 국가에 기반을 둔 5가지 독점 수단, 즉 기술 통제, 자원 획득, 금융, 전 세계 언론, 대량 살상을 통해 통치를 유지하며,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에 유리한 자원항구주권 이론이 생긴다’고 했다. 그들은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에 있어 자원영구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이러한 판단 착오하에 EU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기조를 유지하려 했다. 민생과 직결된 비탄력적 수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요구에 직면한 EU는 선택의 기로에 섰고, 결국 지난 4월 1일 EU 집행위가 27개 회원국에 푸틴의 요구를 수용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EU-러시아 간에 에너지 공급 계약을 체결할 때 유로화나 달러화로 지불하기로 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헝가리가 반대함으로써 EU 집행위의 공동 대응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EU, 러시아 제재에 대한 입장 엇갈리며 내부 분열

폴란드, 체코, 발트 3개국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에 앙금이 쌓여 있어 제재에 적극적이지만, 나머지 EU 국가들을 각기 입장이 다르다. 러시아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제재에 반대하고, 의존도가 낮은 국가들은 제재를 지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EU는 2021년 러시아로부터 1550억㎥의 천연가스를 수입해 전체 가스 수입량의 45%를 차지했다. 국가별로는 독일이 약 50%, 이탈리아 46%, 프랑스 25%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국가들의 러시아 의존도는 훨씬 높다. 핀란드·세르비아·라트비아 등은 90% 내외이고, 마케도니아·몰도바 등은 전적으로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2015년 시리아 난민사태 때 난민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한목소리로 반대한 ‘비셰그라드 그룹(헝가리·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4개국으로 구성된 중부유럽 지역 협력체)’도 이번 대러시아 제재를 놓고는 두 쪽으로 갈렸다.

폴란드와 체코는 러시아 제재를 강력히 주장했고, 헝가리와 슬로바키아는 루블화로 러시아 천연가스를 구매하는 데 합의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EU의 대러 제재가 에너지 분야로 확대되는 것을 반대했고, 자국 영토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수송하는 것도 반대했다. 헝가리에서 소비되는 천연가스 가운데 러시아 천연가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64.1%에 달한다.

한편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지난 2일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가 필수적인 선택이 됐다.

유럽 국가 가운데 이에 대비한 나라는 그리스와 불가리아뿐이다. 그리스는 러·우 전쟁 발발 초기에 아제르바이잔, 알제리와 공급 계약을 맺었다. 그리스가 현재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는 전체 소비량의 40%, 석유는 26%이다.

불가리아는 천연가스 필요량의 80%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하지만 불가리아 스타라자고라(Starazagora)와 그리스 코모티니(Komotini)를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프로젝트(IGB)가 올 6월 완성되면 러시아 의존도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아제르바이잔 ‘샤 데니즈(Shan Deniz)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공급받기 때문이다. 불가리아는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인 국가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러시아 제재, 자원·농산물 수입 의존도 높은 EU엔 오히려 ‘자해’

이번 제재는 미국이 앞장서서 호소하고 EU가 호응해 이뤄졌으나, EU 국가들로서는 결정에 앞서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미국은 석유·가스 등 에너지 자원과 농산물을 자급할 수 있지만, EU는 그렇지 못하다. EU는 에너지 자원과 곡물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천연가스는 러시아 의존도가 높다. 이 점이 EU의 ‘아킬레스건’이다. 결국 러시아의 루블화 결재 요구에 굴복한 나라들이 나오면서 서방의 러시아 제재 효과가 미미해졌다. 러시아 루블화 환율이 전쟁 발발 전날(2월 23일) 달러당 80.42루블에서 한때 170루블까지 떨어졌으나, 7일 79.51루블로 회복된 것이 그 증거다.

러시아 재무부는 3월 러시아 우랄산 원유 가격이 배럴당 89.05달러로 2021년 3월(배럴당 63.62달러)보다 1.4배 올랐다고 발표했다. 루블화 위세는 그대로인데 오히려 달러 파워가 약해진 것이다. 러시아는 이 돈으로 전쟁을 더 오래 끌고갈 수 있게 됐다.

필자는 이번 러시아 제재에 대한 평가를 컬럼비아대 잘츠만전쟁평화연구소의 리처드 하라니아(Richard Hanania) 연구원의 보고서 내용(결론)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보고서 제목은 ‘비효율적이고, 비도덕적이고, 정치적으로 편리한: 미국의 과도한 경제 제재 의존과 대응 방법(Ineffective, Immoral, Politically Convenient: America’s Overreliance on Economic Sanctions and What to Do about It)’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제재는 이론적으로는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인도적 비용이 들더라도 국가 안보 목표를 달성하는 각도에서 출발할 수는 없는가? 제재가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인명 피해를 초래할 뿐 아니라 정책 입안자가 설정한 기준에 따르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또 민주화와 인권 존중 등 미국의 정치적 목표를 촉진하기보다는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 지난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