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발명한 가짜 ‘장티푸스 백신’으로 1만명의 유대인을 살린 의사

황효정
2020년 01월 21일 오전 11:21 업데이트: 2022년 12월 20일 오후 5:26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일부러 거짓 처방을 하고도 수십 년 동안 들키지 않은 의사가 있다.

의사 유진 라조위스키(Eugene Lazowski)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 지역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남성이 유진을 찾아왔다. 집단 수용소에 끌려갔다 개인 사정상 잠시 가석방된 유대인이었다.

“수용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수용소에 다시 끌려가면 결국 저는 죽고 말 겁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어딘가로 달아나고 싶었지만, 남겨질 가족이 피해를 볼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남성은 마지막 동앗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의사를 찾아왔던 것.

유진 라조위스키 / 위키피디아

유진은 일단 남성을 돌려보냈다. 며칠이 지났다. 다시 찾아온 남성에게 유진은 주사를 한 대 놓았다.

“이걸 맞으면, 장티푸스에 걸리게 될 겁니다”

“예? 그러다 정말 죽기라도 하면…”

“걱정하지 마세요. ‘가짜’ 장티푸스니까요”

유진은 남성을 안심시켰다. 주사 안에는 유진이 지난 며칠 동안 개발한 가짜 백신이 들어있었다.

기사 내용과 관련 없는 사진 / 픽사베이

실제로는 장티푸스에 걸리지 않고 인체에 무해하지만, 장티푸스 검사를 하면 양성 반응이 나오도록 하는 백신 주사였다.

장티푸스는 복통, 구토, 설사 등을 유발하는 병이다.

당시 나치 독일 당국은 장티푸스를 매우 두려워했다. 앞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독일 군인이 장티푸스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가짜 백신을 맞은 남성은 결국 장티푸스 판정을 받고 수용소행을 피할 수 있었다.

가짜 백신으로 나치를 속일 수 있다는 게 확인되자, 유진의 진짜 선행은 이후부터 펼쳐졌다.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유진은 유대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마을을 직접 찾아다니며 가짜 백신을 주사했다.

유진은 들키지 않기 위해 이들에게도 자신이 놓는 주사가 가짜 백신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그러면서 가짜 백신 제조에 신중을 기해 실제 감염은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했다.

마을들에는 가짜 장티푸스 환자들이 숱하게 넘쳐나기 시작했고, 나치 당국은 해당 지역들을 전염 구역으로 지정해 격리 조치했다.

독일인들은 감염될까 두려워 전염 구역에 들어가기를 꺼렸다. 이곳 유대인들을 학살 수용소로 이송하는 일조차 포기했다.

National Archives

이 전염 구역은 이윽고 유대인의 천국이 됐다. 많은 유대인이 전염 구역에 들어와 나치의 수용소 연행을 피할 수 있었다.

그 뒤로 3년 동안 유진은 가짜 백신으로 유대인과 폴란드인 등 약 1만 명의 목숨을 구했다.

이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한 오스카 쉰들러가 구한 유대인 1,200명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진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유진의 선행은 수십 년이 지나 1977년 유진의 친구였던 스타니스와프 마툴래비츠 박사가 사실을 밝히기 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때까지 유진은 나치에 맞서 1만 명의 생명을 구한 자신의 선행을 한 마디도 고백하거나 자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