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종이로 나타낸 무수한 항의…중국 ‘백지혁명’ 시작됐다

한동훈
2022년 11월 28일 오후 5:47 업데이트: 2022년 12월 29일 오후 4:02

공산당 정권 향해 백지 들고 무언의 항의
온라인엔 흰색 도배… “
우리 시대의 혁명

코로나19 봉쇄 중 19명의 사상자를 낸 신장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이후 중국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퍼지고 있다.

시위대는 봉쇄구역을 둘러싼 철제 울타리를 밀어 넘어뜨리는 한편, 저마다 아무 글자도 쓰지 않은 A4 용지 한 장을 치켜들었다.

이는 봉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마저 삭제하는 공산당 당국의 검열에 항의하는 의미다.

프랑스 공영라디오 RFI는 현지 언론을 인용해 이를 ‘백지혁명(白紙革命)’으로 전하며 중국 각지에서 반정권 물결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상하이 시민들은 26일 ‘우루무치 거리’에 모여 지난 24일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아파트 화재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시진핑 퇴진, 공산당 퇴진”, “독재 말고 민주, 핵산(PCR) 검사 말고 자유” 등의 구호를 외치며 다음 날 새벽까지 집회를 가졌다.

대만 자유시보에 따르면 경찰이 시위대에게 접근해 “누가 시위를 주모했나”라며 조사를 벌이자 적잖은 시민들이 “내가 주모했다, 중국인이 주모했다”고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신장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 추모 집회 | AP/연합뉴스

이 장면을 촬영한 영상은 중국의 온라인 만리장성 차단벽 너머로 전해져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톈안먼 사건 이후 최대의 물결”, “제2의 89운동”이라는 평가 나왔다.

89운동은 1989년 중국의 민주화 운동을 가리킨다. 중국 공산당은 그해 6월 4일 톈안먼에 모인 학생과 시민들을 유혈 탄압해 민주화 운동을 진압했다.

이번 시위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면서 중국 여러 도시와 거리, 대학에서 참여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묵묵히 백지 한 장을 들어 올리는 것만으로 저항의 뜻을 나타낸다는 것도 특징이다.

27일 트위터에 난징(南京)의 한 지하철역 내부에서 한 여성이 아무 말 없이 백지 한 장을 손에 들고 서 있는 가운데, 이를 본 다른 여성이 같이 백지를 들고 합세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공유됐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흰 종이는 중국에서 ‘따바이(大白)’로 불리는 방역요원의 하얀 옷차림을 꼬집는 동시에 한 마디의 이의 제기도 용납하지 않는 중국 공산당을 향한 수많은 아우성을 담은 무언의 항의다.

같은 날 베이징의 명문 칭화대에서도 코로나19 봉쇄에 항의하며 “민주주의와 법치, 표현의 자유를 원한다”고 외친 학생들이 백지를 든 모습이 포착됐다.

당초 여학생 한 명으로 시작된 백지혁명은 서서히 다른 학생들이 가세하더니 수백 명 이상이 참여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재학생(석박사 과정 포함)만 5만 명에 이르는 칭화대 규모를 고려할 때 참가자가 1천~2천 명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중국 칭화대 학생들이 27일 ‘제로 코로나’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웨이보

이 장면을 본 한 네티즌은 “과거 시위대를 보면 늘 외톨이였는데, 이제 중국인들이 한자리에 서게 됐다”며 감동의 목소리를 냈다.

인터넷에서도 ‘백지혁명’ 혹은 ‘백지운동’이 확산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프로필이나 배경을 흰색으로 바꾸거나, 빈 종이 사진을 게재하는 식이다. 게시판·복도·식당·공원을 백지로 가득 채우자는 제안도 호응을 얻고 있다.

백지혁명을 지지하는 인들은 “우리 세대 일생일대의 혁명”이라며 “그들이 우리를 말 못 하도록 하게 놔두지 말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유, 존엄 그리고 우리의 중국”이라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중국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주인이 되는 국가에 대한 열망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