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중국 정부의 ‘거친 입’ 외교부 대변인

최창근
2021년 12월 27일 오후 8:46 업데이트: 2021년 12월 28일 오후 12:04

한중수교 시 외교부장이던 첸치천이 최초 대변인…이후 현재까지 32명 임명
2012년 부터 3인 체제 유지 주5일 외교부 ‘푸른색 방’에서 브리핑
외교부 내 출세코스… 부부장, 부장, 부총리로 영전하거나 주요국 대사 발령
대변인의 필수 자질은 험한 입? 폭언 가까운 막말 쏟아내
수석 대변인 화춘잉… 10년 째 자리 지키며 국장, 차관보로 승진

“중국인들은 원칙과 굽히지 않는 기개가 있고 고의적인 중상모략에 강력히 맞서 싸워 국가의 명예와 민족의 존엄을 단호히 수호할 것이다”

중국 외교 수장 왕이 국무원 외교부장은 2020년 5월 양회(兩會·정협과 전인대) 기간 중 이같이 말했다. 왕이 부장이 언급한 중국의 명예와 민족 존엄을 수호하는 최전선에 선 자는 ‘중국 외교부의 입’ 혹은 ‘중국의 입’이라 불리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다. 이들은 에포크타임스를 비롯하여 중국 관련 매체에 매일같이 등장 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중국 외교부 ‘대변인(發言人·발언인)’ 자격으로 언론 앞에 서기 시작한 인물은 첸치천(錢其琛)이다. 1976년 외교부 공보업무 부서인 신문사(新聞司) 사장(司長·국장)을 맡으며 외교부의 대외 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첸치천의 첫 외교부 브리핑은 6년 후인 1982년 3월 26일 이뤄졌다. 중국 외교 사상 첫 브리핑이었다.

1982년 3월 24일,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장문의 연설을 했다. 연설 주요 내용은 중국을 향한 비판이었다. 마지막으로 브레즈네프는 “그래도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인정하니 앞으로 중·소 관계를 개선하자”고 말했다.

당시 실권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외교부로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브레즈네프의 연설에 대한 반응을 신속히 국제사회에 전달하라.”

첸치천은 훗날 대변인, 외교부장으로 영전하는 리자오싱(李肇星)을 영어통역관으로 대동하고 외교부 청사 출입구로 갔다. 베이징(北京) 주재 외국 특파원 몇 명이 외교부의 연락을 받고 나와 있었다. 첸치천은 단 세 문장으로 된 발표문을 읽어내려 갔다.

“우리는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3월 24일 타슈켄트에서 발표한 중·소관계 관련 연설에 대해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그의 연설 내용 가운데 중국에 대한 공격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중·소 양국 관계 개선에 대한 부분은 소련의 실제 행동을 지켜볼 것이다.”

첸치천의 첫 브리핑은 발표문을 읽어내려 가는 것으로 끝났다. 추가 문답은 없었다. 다만 중국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공개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서 첸치천의 발표는 국제적인 뉴스가 됐다. 이후 이듬해인 1983년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 제도가 시행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차오양먼(朝陽門)대로 2호에 자리한 외교부 청사 별관 격인 남루(南樓)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후 3시에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정례 브리핑이 진행된다. 브리핑이 열리는 장소의 이름은 남청(藍廳), ‘푸른색 방’이라는 뜻이다.

2012년부터 외교부 대변인은 ‘3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수석 대변인 격인 화춘잉(華春瑩) 신문사 사장, 자오리젠(趙立堅) 신문사 부사장(부국장), 왕원빈(汪文斌) 부사장이 번갈아 가며 브리핑을 한다. 이 외에도 신문사에는 후젠(胡鍵)·장샤오옌(蔣小燕) 등 2인의 부사장이 더 존재하지만 이들은 대변인 업무는 수행하지 않는다.

외교부 대변인의 맏이 격인 화춘잉은 1970년 장쑤(江蘇)성 화이인(淮陰)현 태생이다. 양친은 지역 공산당 간부였다. 자신은 어머니 화제(華杰)의 성을 따라 화(華)씨가 됐고, 여동생은 아버지 첸융(錢勇)의 성을 받아 첸(錢)씨가 됐다. 1988년 화이인현 전체 수석으로 난징(南京)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1993년 국무원 외교부에 입부하여 서유럽(西歐)사에 배속됐다.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주싱가포르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근무했고, 1999년 귀임하여 외교부 서유럽사에서 다시 근무했다. 2003년부터는 주유럽연합(EU)대표부에서 1등 서기관, 참사관(參贊)으로 일했고, 2010년 외교부 유럽(歐洲)사 참사관으로 전임됐다.

화춘잉은 2012년 외교부 신문사 부사장 겸 대변인으로 임명됐다. 당시 신문사장이던 친강(秦剛) 현 주미국대사는 “20년 외교 경력의 화춘잉은 양호한 소통 능력을 보유했으며 여성 대변인에 매우 적합한 인물이다. 기자들과 어울려 즐겁게 협력할 것으로 믿는다”고 소개했다. 화춘잉은 “중국과 세계의 관계가 심각한 조정기를 맞이한 오늘날 중국은 세계를 더 많이 이해하고 세계 역시 중국을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온 힘을 다해 여러분께 적시에 정확하게 전면적으로 중국 정부의 외교정책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답했다. 28번째 외교부 대변인이 된 화춘잉은 중국 사상 5번째 여성 외교부 대변인이다.

2019년 외교부 북미대양주(北美大洋洲)사 사장으로 전임된 루강(陸慷) 신문사장 겸 대변인에 이어 새로운 대변인단에 합류한 자오리젠(趙立堅)은 1976년 ‘대지진’ 발생지로 유명한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 출신이다. 1972년 생으로 창사철도대학(長沙鐵道學院) 졸업 후 1996년 외교부에 입부했다. 아주(亞洲)사에서 근무하며 파키스탄 업무를 담당했다. 1999년 주파키스탄대사관으로 발령났고, 2003년 아주사로 돌아와 2등 서기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2005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공공정책 과정에 입학하여 석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2009년 주미국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서 워싱턴D.C로 부임했고, 2013년부터 아주사에 근무하며 다시 파키스탄 업무를 맡았다. 이 시절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인 파키스탄·중국 경제회랑(CPEC)사업을 주관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주파키스탄대사관 참사관·공사참사관으로 근무했다. 파키스탄 근무 시절 자오리젠은 트위터를 통해 중국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입장을 밝혀 명성을 얻었다. 그러다 2019년 외교부 신문사 부사장 겸 대변인을 맡았다.

중국 외교부 사상 32번째 대변인 왕원빈(汪文斌)은 주유엔중국대표부 부대사로 전보된 겅솽(耿爽)의 뒤를 이어 2020년 대변인단에 합류했다. 1971년 안후이(安徽)성 둥청(桐城) 태생으로 외교학원 프랑스어과 졸업 후 1993년 외교부에 입부했다. 전공 언어인 프랑스어를 살려 주세네갈대사관, 카메룬 두알라총영사관 등에서 초기 경력을 쌓았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서유럽사에 근무했고, 1999년부터는 정책연구실에서 외교정책을 연구하다 2002년 기획·조정을 담당하는 판공청으로 전임돼 1등 서기관, 참사관으로 2004년까지 근무했다. 이후 2006년 아프리카 동부 도서(島嶼)국 모리셔스 주재 대사관  참사관으로 발령 났다. 2010년 정책규획(政策規劃)사 참사관으로 복귀했고 2013년 정책규획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8년 주튀니지대사로 부임했다 2020년 외교부 신문사 부사장 겸 대변인으로 전임됐다.

외교부 차원을 넘어 중국 공산당 정부의 얼굴이자 입으로 꼽히는 대변인 자리는 ‘출세 코스’로 꼽힌다. 초대 대변인이었던 첸치천은 외교부 부부장, 부장을 거쳐 국무원 외교담당 부총리까지 승진했다. 첸치천은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외교부장으로서 수교 실무를 지휘하기도 해 한국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6대 리자오싱(李肇星)도 외교부장까지 승진했다. 2대 대변인 치화이위안(齊懷遠)은 외교부 부부장을 거쳐 국무원 외사판공실(外事辦公室) 주임이 됐고, 24대 마차오쉬(馬朝旭) 역시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10대 대변인 우젠민(吳建民)은 정협 상무위원, 외교학원 원장을 역임했다. 20대 쿵취안(孔泉), 21대 류젠차오(劉建超)는 나란히 중국 공산당 외사공작회 판공실 부주임이 됐다. 15대 대변인 추이톈카이(崔天凱), 22대·26대 친강(秦剛)은 2021년 주미대사 자리를 ‘임무 교대’했다. 이 밖에 외교부 의전 책임자인 훙레이(洪磊) 예빈사(禮賓司) 사장(27대), 미국 업무를 총괄하는 루강(陸慷) 북미대양주사 사장(29대) 등 외교부 주요 포스트 책임자나, 주유엔대표부 부대사(겅솽, 30대) 등 주요 공관장 및 부공관장의 이력서에는 ‘외교부 대변인’ 경력이 기재돼 있다.

신문사(대변인실) 책임자인 화춘잉도 2021년 10월 인사에서 신문·의전·통역 담당 부장조리(차관보)로 승진했다. 그는 2017년 왕이(王毅) 부장, 러위청(樂玉成) 부부장과 함께 3명의 외교부 중국 공산당 대표로 뽑혀 제19차 중국 공산당 대회에 참가하면서 승진 가도를 이미 예약했다. 역대 다섯 번째 여성 대변인직을 최장 기간 수행 중인 화춘잉이 역대 세 번째 여성 부부장(차관)에 오를지도 주목된다.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의 최일선에 선 외교부 대변인들의 설화(舌禍)는 끊이지 않는다. 화춘잉은 아베 신조(安倍 晋三) 전 총리의 “대만해협 유사시는 일본의 유사시” 발언을 두고서 “과거 중국에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대만에 대해 언급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 잘못된 길로 점점 더 멀리 나가지 말라. 그러지 않고 끝내 불장난을 하다가는 스스로 불에 타 죽게 된다”고 발언했다. 대학 시절, 친구들이 ‘영춘화(迎春花·개나리)’라고 이름을 거꾸로 불렀던 여인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수위의 발언이다.

아베 전 총리의 같은 발언을 두고 왕원빈 대변인은 “대만은 중국의 신성한 영토로서 다른 사람이 함부로 손대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 인민의 마지노선에 도전하면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변인 임명 전부터 외교부 내 최고의 ‘싸움닭(鬪鷄)’으로 꼽히던 자오리젠은 ‘쓰레기’ 발언을 자주 한다. 2021년 8월 마크 루비오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 ‘틱톡(TikTok)’과 중국 공산당의 연계를 거론하며 미국 내 틱톡 사용 금지를 촉구하자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정객이 개인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실을 무시한 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반중(反中) 발언을 하는데, 그는 역사의 쓰레기 더미로 쓸려 들어가게 돼 있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자오리젠은 또한 지난 11월 ‘대만’이란 명칭의 대표부 설치를 허용한 리투아니아를 향해서는 “신의를 저버리고 공리와 정의의 대립면에서 서 있어서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할 것이다. 또 리투아니아 일부 사람, 세력이 ‘대만 독립’ 분열 세력과 의기투합하여 끝까지 외곬으로 파고들면 결국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정리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거친 입담의 소유자들이 대변인을 맡는 전통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속에서 외교부 청사 별관의 푸른색 방도 시끄러울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