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미국이 대만을 지키는 이유는?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 미국-대만 관계의 근간 3공동성명, 3법 그리고 6개조 보장

최창근
2022년 08월 1일 오후 8:06 업데이트: 2022년 08월 1일 오후 9:15

미·중 갈등의 핵심으로 떠오른 대만은 미국의 동맹국이 아니다. 공식 국교도 없다. 그럼에도 미국은 대만 방위을 지키려 애쓴다. 그 근간은 3개의 미·중 공동성명, 1979년 1월 1일, 미·중 수교와 동시에 단행된 미·대만 단교 이후 제정된 3개의 법률 그리고 6개 조항으로 구성된 보장이다. 그 연원과 내용은 어떠할까.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성립했다. 그해 12월 국부천대(國府遷臺·국민당 정부 대만 파천) 이후 미국과 중국은 공식적인 적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양국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았고 1950년 발발한 6·25전쟁 이후 미국은 대만의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정통성을 인정하며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6·25전쟁 정전 2년 후인 1955년 ‘미국-중국(대만)상호방위조약(Sino-American Mutual Defense Treaty)’이 발효하여 미국과 대만은 공식 군사 동맹국 관계가 됐다. 냉전 체제하에서 대만은 미국에 있어 ‘침몰하지 않는 항공모함’이었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미국은 외교 기조를 바꾸었다. 당시 공산주의 진영 양대 거두이던 소련과 중국은 갈등을 지속했다. 급기야 양국은 1969년 국경 분쟁 지역인 우수리강 유역의 전바오다오(珍寶島·다만스키섬)에서 무력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이 속에서 미국은 소련을 견제할 새로운 파트너로 중국을 선택했고 관계 개선에 나섰다. 1971년 일본 나고야 세계탁구 선수권대회가 끝나고 중국은 대회에 참석한 미국선수단 15명과 기자 4명을 공식 초청했다. 이 친선경기로 두 나라는 우호적인 접근을 시작했다. ‘핑퐁외교’의 서막이다. 1971년 7월 헨리 키신저가 베이징을 극비리에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담했다.

이듬해인 1972년 2월, 닉슨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고 그 결과물은 ‘상하이코뮈니케’에 담겼다. ▲외교 관계 정상화 ▲아시아·태평양 지역 평화 ▲대만 문제 등을 담은 코뮈니케를 통하여 미국은 대만 주둔 미군의 단계적인 철수를 약속했다. 또한 코뮈니케에서는 상호 영토·주권 존중, 상호 불가침, 내정 불간섭, 평등 호혜, 평화 공존 원칙에 합의했다.

1972년 2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중국을 방문한 닉슨 대통령(좌)과 마오쩌둥(우). | 연합뉴스.

1978년 12월 16일 발표된 ‘미·중 수교코뮈니케’를 통하여 미국과 중국은 국교를 정상화했다. 미국과 중국은 1979년 1월 1일부로 외교 관계를 정상화함과 동시에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미국은 대만과 단교하기로 했다. 코뮈니케에서 미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이고 중국은 오직 하나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다” “미국은 이러한 범위 내에서 대만과 경제, 문화 및 기타 비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미·중 국교 정상화 3년 차인 1982년 8월 17일 ‘8·17코뮈니케(제2차 상하이코뮈니케)’가 발표됐다. 미국과 중국은 앞서 ‘상하이코뮈니케’ ‘미중 수교코뮈니케’에서 확정한 양국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미국의 대(對)대만 무기 판매는 중국 주권을 침범하는 행위로서 중국은 반대한다 ▲중국 주권에 대한 미국의 실제적인 존중이라는 전제하에 판매 무기량을 점차 줄이다 최종적으로 중지하는 것에 동의한다.

미국은 단교한 대만에 대한 안정 보장도 약속했다. 1979년 1월 단교 후 미국은 ‘국내법’ 형식을 빌려 대만 안전 보장을 약속하기로 한 것이다. 1979년 4월, 미국 연방 상·하원을 통과한 대만관계법(Taiwan Relations Act·TRA)이 대표적이다. 법에는 ▲대만과 미국 국민 간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와 기타 서태평양 지역 국민들과의 포괄적이고 긴밀하며 친근한 상업적, 문화적 및 기타 관계를 유지하고 촉진한다 ▲대만 지역 평화와 안정이 미국의 정치·안보·경제 이익과 관련되며 국제적 관심사라는 점을 천명한다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한 결정은 타이완의 미래가 평화적 수단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는 기대에 기초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대만에 방어적 성격의 무기를 제공한다 ▲대만 주민의 안보 혹은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을 위협하는 어떠한 힘의 사용이나 기타 형태의 강압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미국의 전투 능력을 유지한다 ▲대만 주민의 안보 혹은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에 발생한 위협과 관련하여, 미국 대통령과 의회는 그러한 위협에 대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헌법 절차에 따라 결정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1978년 12월, 미국 정부가 이듬해 1월 1일부로 중국과 수교 대만과 단교를 발표한 후 대만을 방문한 미국 특사단에게 항의하는 타이베이 시민들.

이를 근거로 미국은 타이베이에 미국재대만협회(American Institute in Taiwan·AIT)라는 상주 대표부를 설치하여 실질적인 대사관·총영사관 역할을 수행하게 했으며, ‘방어용 무기’ 판매를 비롯한 비공식적 방위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

이후 미국은 1982년 8·17 코뮈니케(제2차 상하이코뮈니케) 발표 직전 대만 안전 보장에 관한 ‘6개 조 보장(Six Points)’을 발표했다. 이는 대만관계법과 더불어 미국의 대중국, 대대만 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은 대(對)대만 무기 수출에 관해 기한을 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대(對)대만 무기 수출에 있어 중국과 사전 협상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대만해협 양안 간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미국은 대만관계법을 수정하지 않는다 ▲미국은 대만의 주권에 대한 일관된 입장을 변경하지 않는다 ▲미국은 대만으로 하여금 중국과 협상토록 강요하지 않는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미재대만협회 타이베이사무처 신청사. 미재대만협회 타이베이사무처는 1979년 제정된 대만관계법에 의거하여 실질적인 주대만 미국대사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제2도시 가오슝에 총영사관 역할을 하는 가오슝사무소를 두고 있다. | AIT.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 정부는 대(對)대만 보장을 담은 법안 2개를 추가 제정했다. ‘대만동맹국제보호강화법(Taiwan Allies International Protection and Enhancement Initiative Act·TAIPEI Act)’과 ‘대만보증법(Taiwan Assurance Act·TAA)’이다.

2019년 제정되고 이듬해 시행된 대만동맹국제보호강화법은 ▲대만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14개국 그리고 앞으로 대만과 대사급 외교 관계를 맺을 국가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경제를 지원하고 안보를 보장한다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경제 원조를 중단하고 무역이나 경제 분야에서 불이익을 주며, 외교 관계를 격하한다는 내용을 담아 외교적 고립이 극심해진 대만의 국제사회에서의 지위 보장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21년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대만보증법은 다음의 5가지 보장을 담고 있다. ▲미국은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을 상시화한다 ▲대만은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중요 동맹국이다. 미국은 대만이 비대칭 전력을 구축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대만의 수교국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것을 미국이 돕고 대만이 다국적 군사훈련에 참가하도록 한다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을 미국이 지지한다.

이러한 3개 코뮈니케(공동성명), 3개 법과 6개조 보장은 1979년 단교 이후 미국-대만 관계의 기초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