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철환 대표 “北주민의 인권 무시한 한국의 대북정책은 실패”

이연재
2022년 06월 5일 오전 8:51 업데이트: 2022년 06월 5일 오전 9:10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 원인은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지 못해서입니다.”

강철환 대표(54)는 196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출신 간부로, 권력과 부유함을 갖춘 재일교포였다.

강 대표가 10살이 되던 1977년. 할아버지가 정치범으로 몰리면서 함경남도의 ‘요덕수용소’로 끌려가 10여 년간 수감됐다. 그는 “당시 북한에는 봉건시대 왕조국가의 처벌제도인 연좌제가 있었다”며,  “삼대(三代)가 수용소에 가게 됐다”고 회고했다.

1992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그는 ‘요덕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담은 ‘평양의 어항’(한글판 ‘수용소의 노래’)을 출간해, 이 책을 읽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초청으로 2005년 백악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강 대표는 자신의 고향에도 민주화된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자로 일하며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썼던 그는 현재 사단법인 ‘북한전략센터’에서 북한 민주화와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에포크타임스’는 강철환 대표를 만나 북한전략센터는 어떤 단체이며, 어떠한 활동을 하는지 또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대북정책과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열살배기 강철환, 요덕 정치범수용소 끌려가

–  1992년 한국에 오기 전 함경남도 15호 요덕관리소 혁명화 구역에 10여 년 간 수용됐던 것으로 안다. 수감된 이유는 무엇인가.

“조부가 북한 체제를 비난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치범으로 몰려 삼대(三代)가 북한 수용소로 가게 됐다. 북한에는 봉건사회의 왕조국가에 있었던 연좌제가 있다. 소련의 스탈린 때도 정치범의 가족까지 수용소에 몰아넣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 시대보다 더 열악하다. 북한은 연좌제를 통해 인민을 통제하고 정권을 유지해 왔다고 본다. 만으로 아홉 살에  들어가서 열여덟 살에 수용소를 나왔다.”

– 정치범 수용소 생활은 어땠나.

“중국에는 라오가이(勞改) 수용소가 있고 소련의 스탈린 시대에는 시베리아 수용소가 있었다. 또 히틀러 때에는 아우슈비츠가 있었는데 ,이들 세 개의 수용소를 합쳐 놓은 것이 바로 북한의 수용소다.

북한에는 수용소 종류가 여러 개 있다. 대부분의 수용소는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지만 나는 다행히 살아 나올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동물 사료로도 쓸 수 없는 옥수수를 먹으며 하루 열네 시간 이상 강제 노역했다.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걸린 상태로 과도한 노역까지 겹쳐 수용자들은 많이 희생됐다. 9년 8개월 간 공개 처형, 고문이 일상화돼 있는 곳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북한을 탈출할 기회가 있으면 전 세계에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화되어 나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전 세계에 최초로 알린 증언자가 됐다.”

– 탈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수용소 안에 해외에서 유학하고 온 친구들이 있었다.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수용소로 온 친구들인데, 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수용소에서 나와 라디오를 청취하면서 북한 정권이 거짓이며 공산당보다 더 안 좋은 악마 정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반체제 운동을 하다 정보기관에 발각되면서 탈북을 결심하고 북한을 탈출했다.

그때만 해도 중국에서 탈북자 색출이 없었다. 중국 공안들은 탈북자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고 북한의 보위부만 피할 수 있으면 됐다. 그래서 중국에 숨어 있을 수 있었고 6 개월 만에 중국의 대련항을 통해 한국으로 오게 됐다.”

북한 주민들에게 중국은 천국

그는 탈북과정에서 외부세계로는 처음 접하게 됐던 중국이 천국과 같은 나라로 비쳤다고 말했다.

–  북한이 얼마나 열악한 나라인지 알 것 같다.

“북한에선 김일성이 싫다고 말하면 바로 수용소로 보낸다. 정권에서 제작한 뉴스만 봐야 하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다 없다. 심지어 거주 이전의 자유도 없다. 신혼여행을 해외로 나간 커플이 하나도 없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다.

중국만 해도 여행의 자유가 있고 경제활동의 자유가 있다. 이곳에선 중국이 말도 안 되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보는 중국은 천국이다. 저 정도의 자유만 있어도 우리는 숨 쉬고 살겠다고 생각한다. 그것만 봐도 북한이 얼마나 열악한 나라인지 알 수 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로 인권 운동 시작

북한의 실상이 극히 제한적으로 서방세계에 열려졌던 1998년.

강 대표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 인권기구 주최 회의에 참석에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생생히 증언했다. 이날 증언은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유럽 세계에서의 첫 증언이라는 점에서 세계 인권 관계자들의 깊은 관심을 받았다.

강 대표는 2003년 한국 정부의 59차 ‘UN대북인권결의안’ 기권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북한 민주화 활동에 뛰어들었다.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명단 확보사업과 정치범수용소 관련 백서 발간사업도 추진했다.

– 북한 인권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나는 북한에서 겪은 일을 한국 사회에 폭로하면 북한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뜨겁게 반응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사회 분위기가 좀 이상했다. 북에서 온 실향민들만 북한 문제에 공감했다.

그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열심히 북한의 상황을 알려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렇게 북한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 2008년 설립한 ‘북한전략센터’는 어떤 단체인가.

“북한 주민들은 가짜 뉴스에 포장돼 있다. 사람이 굶어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것은 내가 굶어 죽은 이유를 모르는 거다. 누구 때문에 굶어 죽는지 모르고 죽는다. 얼마나 비참한가. 그냥 돼지가 굶어서 죽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게끔 북한 내부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북한 체제가 변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고 생각하며, 식량을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단체의 목표는 북한 인권 개선이다.”

– 그럼 북한에 정보를 어떻게 보내고 있나.

“USB에 담아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보낸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알 수 있도록 국제시장이나 인천 상륙작전과 같은 영화도 넣고 해외 다큐멘터리도 넣는다.  USB가 제대로 들어가면 USB 하나가 천 개가 복사될지 만 개가 복사될지 알 수 없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USB 마법’이라 부른다. ”

대북 정책의 핵심은 북한 주민의 인권

– 대북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북한의 김정은 정권과 똑같이 주민들의 인권을 무시했기 때문에 한국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강 대표는 “대한민국은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을 눈뜨고 지켜보기만 했다”며, “북한 인권 문제를 덮어둔다면 한국의 대북정책은 계속 실패할 것이고 핵문제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그렇다면 바람직한 대북정책은 무엇인가.

“일단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시켜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구분하려는 노력도 없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적인 이득만 챙겼다. 이렇다 보니 항상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린 것 아닌가.

우리가 핵문제 백날 얘기해봤자 북한의 지도부를 없애기 전까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핵 위협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핵문제도 따지고 보면 인권 유린의 ‘산물’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을 굶어 죽인 대가로 핵과 미사일을 생산해 냈다. 핵 문제도 인권으로 풀어야 한다.”

– 한국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한국 정부는 북한에 올바른 정보가 유입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대북지원을 하려면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혜택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은 폐쇄됐지만 개성공단만 해도 그곳에서 일했던 북한 근로자들은 한국 기업이 자신들에게 월급을 얼마나 주는지도 몰랐다. 북 정권은 북한 근로자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배를 불렸다.

이제는 북한 인권을 해결하기 위해 앞장설 때가 왔다. 기존에 해왔던 ‘대화하자. 그러면 도와줄게’ 하는 방식은 탈피해야 한다. 북한 정권이 아닌 북한 주민들을 바라볼 때다. 북한 문제는 인권으로 북한 정권에 압박을 가해서 풀어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인권법’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를 조사하고 알려서 개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거다.”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북한의 현실을 아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 지금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을 우리가 왜 지켜주어야 하는 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