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市, 中 푸단대 분교 설립에 ‘프리 홍콩 거리’ 조성 맞불

2021년 06월 5일 오후 7:49 업데이트: 2021년 06월 5일 오후 9:54

헝가리 중앙정부가 중국 푸단대의 분교 설립을 허가하자, 부다페스트 시장이 건설 예정지 주변 도로명을 ‘프리 홍콩 스트리트’로 변경하며 반격에 나섰다.

게르겔리 카라초니 부다페스트 시장은 2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고 시내 공업단지 남부 도로 4곳의 명칭을 ‘위구르 순교자길’, ‘달라이 라마 로드’, ‘프리 홍콩가’ ‘셰스광 주교길’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셰스광(謝士光) 주교는 중국 공산당의 종교탄압을 받다가 2005년 88세로 순교한 중국 지하 가톨릭 교회 주교다.

카라초니 시장은 이날 헝가리 중앙정부가 시민들의 반대에도 부다페스트 시내 공업단지 남부에 중국 푸단대 분교 설립을 허가했다며 이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고 설명했다.

헝가리 언론 텔렉스(Telex)에 따르면 시청 공무원들은 이날부터 거리에서 도로 표지판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푸단대 분교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빅토르 오르반 총리 내각의 한 관료는 “부다페스트의 도로명 변경은 일종의 도발”이라며 “이번 사업에 대한 우리의 지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쟈르 레벤테 헝가리 외교부 차관은 텔렉스와 인터뷰에서 “그들(반대 측)은 실질적인 영향은 줄 수 없으니 이러한 표면적인 것들로 호소하며 도발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월, 오르반 총리 내각은 상하이 푸단대와 오는 2024년까지 부다페스트 시내에 푸단대 분교를 설립하는 업무협약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대학이 예정대로 세워지면, 푸단대의 유일한 외국 분교이자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내에 들어서는 첫 중국 대학 캠퍼스로 기록될 전망이다.

당시 오르반 총리는 “푸단대 분교는 헝가리의 고등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 캠퍼스가 더 긴밀한 헝가리-중국 관계의 상징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 측은 이번 분교 설립 허용은 오르반 총리가 서구의 민주적 가치관에서 이탈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사업이 중국의 일대일로와 유사한 데다 거액의 세금이 투입된다는 점도 비난의 대상이다.

헝가리 언론 다이렉트(Direkt)36은 정부 문서를 입수해 “19억 달러(약 2조1200억원)에 이르는 총공사비 중 헝가리 중앙정부 부담금은 3억 달러이고, 나머지 15억 달러는 중국 정부가 차관 형식으로 제공한다”고 보도했다.

캠퍼스 건설은 중국 국유기업 중젠(中建)그룹이 맡아 중국 건설 자재와 중국인 근로자를 쓰게 된다. 헝가리가 투입하는 건설 자금은 전부 중국 기업들에 돌아간다.

이는 중국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유사한 형태다. 이는 EU의 공공사업 조달 규칙에도 어긋난다.

따라서 유럽 각국이 일대일로를 보이콧하는 가운데 중국의 푸단대 부다페스트 분교 건설 추진이 변형된 형태의 일대일로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고액의 차관이 ‘채무의 덫’으로 작용해 추후 헝가리가 중국의 정치적 입김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푸단대 분교가 건설되고 중국 측 인력이 대거 유입되면, 대학 캠퍼스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하는 전당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선전 거점으로 전락해 장기적으로 국가안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카라초니 부다페스트 시장은 ‘프리 홍콩(홍콩에 자유를)’ 같은 도로명 변경이 도발이라는 오르반 내각의 비난에 대해 “자유와 단결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중국과의 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금으로 푸단대를 건설하면서 원자재와 노동력도 헝가리 것을 쓰지 않고 건설 수익도 중국이 그대로 가져가는 구조는 막아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푸단대 사업은 30년 전 헝가리 공산주의가 무너졌을 때 약속한 수많은 가치관을 의심받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헝가리는 1949년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지도하에 공산주의 국가였으나 1989년 혁명으로 공산정권이 붕괴되고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됐다.

헝가리의 자유주의 싱크탱크 리퍼블리컨 연구소가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헝가리인의 66%가 푸단대 분교 설립에 반대했고 지지한다는 비율은 27%에 그쳤다.

/한동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