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 올림픽 환영만찬은 원래 이런 그림이었어야 했다

최창근
2021년 12월 9일 오후 6:36 업데이트: 2021년 12월 9일 오후 9:57

베이징올림픽 종전선언 발판 삼으려던 文 대통령의 꿈…美 외교적 보이콧에 일장춘몽
韓 사절단 대표 격 놓고 고심, 中 “한국은 한가족” 끌어안기, 日 차관급 인사 파견 검토

2022년 2월 4일,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올림픽공원 구내에 자리한 국가체육장(國家體育場). 냐오차오(鳥巢·새 둥지)라는 별칭이 붙은 이 경기장에 성화가 타올랐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막이 오른 것이다.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던 국가체육장.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주경기장으로도 활용된다. 나뭇가지가 얽힌 듯한 특이한 모양새로 새 둥지라는 별칭이 붙었다. | 로이터/연합

시진핑은 개최국 국가원수 자격으로 ‘중국몽(中國夢)’을 주제로 개회 연설을 했다. 그의 뒤편에는 장쩌민·후진타오 전직 국가주석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후진타오는 14년 전인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국가주석’ 자격으로 연설을 했던 기억에 감개무량해 했다. 이로써 베이징은 하계·동계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유일무이한 도시가 됐다.

올림픽경기장 VIP석에는 한국 문재인 대통령도 자리했다. 직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국 국가원수 자격이었다. 옆에는 지난해 도쿄하계올림픽을 개최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더불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미국 측은 바이든 대통령을 대리하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참석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 4강 정상들이 자리를 함께 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한 근본 목적은 6·25전쟁 ‘종전선언’이었다. 대통령 임기 후반기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온 일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다음 날, 남북한과 미·중·러 정상은 댜오위타이(釣魚臺·국빈관)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역사적인 종전협정 선언식이 열렸다. 1953년 체결된 6·25전쟁 ‘정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는 종전문서에는 미국을 대표하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격으로 시진핑, 조선인민군 통수권자인 김정은이 서명했다.

2008년 8월 베이징 올림픽 당시 중국을 방문한 각국 정상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부부 뒤로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 모습도 보인다. | 청와대 제공
중국 국빈관인 댜오위타오(釣魚臺) |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지켜 보며 박수를 보냈다. 옆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 정전협정을 종전선언으로 바꾸는 업적을 남긴 것이다. ‘종전선언’ 소식이 타전되자 국내 여론은 요동쳤다. 긴급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50%를 상회했다. 임기 말 역대 대통령 중 최고치였다. 이는 3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당 대선 후보에게도 호재였다.

이상은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여 6·25전쟁 정전협정 당사국들과 종전선언에 합의한다는 청와대 측의 희망 사항이 실현됐다는 것을 가정하여 쓴 가상 시나리오이다.

현실에서 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은커녕, 한국 대표단 격을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지 노심초사해야 하는 형편이다.

12월 6일, 미국은 백악관 대변인 공식 논평을 통하여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선수단 외 어떤 정부 대표도 참석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또 다른 정전협정 당사국인 북한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징계 결정으로 2022년 연말까지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자격이 한시 정지됐다. 2021년 도쿄올림픽 무단 불참이 이유다.

2021년 9월 9일,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각국 올림픽위원회(NOC)는 선수들을 파견해 올림픽에 참가할 의무가 있다’는 올림픽 헌장 4장 제27조 규정을 들어 북한올림픽위원회의 올림픽 출전 자격을 정지시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참석도 자연 무산됐다.

한반도 주변 4강 정상 중에서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만이 참석 예정이다. 11월 30일 푸틴은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 참석 의사를 직접 밝혔다.

미국과 안보동맹 관계이면서 인접한 중국과 관계 개선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일본은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동참을 압박하고 있다. 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영국을 식민모국으로 하는 국가들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오커스(AUKUS)’ ‘파이브아이즈(Five Eyes)’ 회원국 전체이다.

일본 정부는 각료(대신)급이 아닌, ‘차관급’ 인사를 대표로 하는 사절단 파견을 검토 중이다.

12월 8일, ‘산케이신문(産經新聞)’은 일본 정부가 무로후시 고지(室伏 広治) 스포츠청 장관이나 야마시타 야스히로(山下泰裕) 일본올림픽위원회(JOC) 회장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스포츠청은 2015년 문부과학성 스포츠·청소년국이 승격돼 출범한 내각 외국(외청)의 하나이다. 수장인 ‘장관(청장 해당)’은 각료가 아닌 차관급 인사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6일(현지시각) 기자들에게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 EPA/연합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12월 8일, 청와대는 “베이징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참석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정부의 고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12월 7일,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정부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지해 왔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다.

12월 9일, 교통방송(TBS) 라디오에 출연한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지금 중요한 것은 (베이징동계올림픽은) 평창, 도쿄 그리고 베이징으로 이어지는 동북아시아 릴레이 동계 올림픽이라는 것이다. 저희는 직전 주최국으로서의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참가 쪽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동아일보는 12월 9일, 정부 핵심 관계자 발언을 인용하여 “최소 차관급 이상으로 정부 사절단을 꾸려 올림픽에 참석해야 할 것을 검토 중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럴 경우 주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오영우 제2차관의 개회식 참석이 점쳐진다. 지난 8월 6일의 도쿄올림픽 폐회식에는 당시 김정배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참석했다. 제2차관은 체육 정책을 관장한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 중국 외교부

중국은 ‘한국 끌어안기’에 적극 나섰다. 12월 8일,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청와대가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평했다.

이어 왕원빈 대변인은 “한국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국이며, 2024년 강원도 청소년동계올림픽 개최 예정국이다. 한중 양국은 줄곧 상대국이 개최하는 올림픽을 지지해 왔다. 올림픽 상호 지지는 두 나라의 우호 협력 관계와 올림픽 한 가족다운 풍모의 표현이다”고 밝혔다.

12월 5일, ‘글로벌타임스’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베이징동계올림픽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윤리위원장 자격으로 참석 예정이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