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의무 반대” 캐나다 화물기사들, 오타와로 ‘자유의 행진’

하석원
2022년 01월 29일 오후 7:28 업데이트: 2022년 01월 29일 오후 8:17

국경 오가는 화물기사들, 15일부터 격리 면제 철회
백신 접종 안하면 14일 격리 적용…생업 포기 수준
화물기사들, 항의 표시로 수도 오타와로 차량 행진
트뤼도 총리 “변두리 소수자들”…시민들은 지지성원

캐나다 화물트럭 운전기사들이 백신 의무화 조치 등 방역규제에 항의하는 ‘자유 행진(Free Convy)’이라는 이름의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트럭 운전사들도 국경을 넘어 합류했다.

28일(현지 시각) 수도 오타와에는 지난 주말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BC)를 출발, 전날 온타리오주에 진입한 트럭 시위대 행렬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쥐스탱 트뤼도 정부의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시위대는 캐나다-미국 국경을 왕복하는 트럭 운전기사들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정부 조치가 개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생계를 위협한다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트럭 운전기사들은 토요일인 29일부터 오타와에 있는 하원 의사당 앞에 모여 주말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캐나다는 지난해 ‘비필수’ 육로 입국자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의무화했으나 트럭 운전업은 ‘필수업종’으로 분류돼 백신 접종이나 입국 시 자가격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트뤼도 정부는 지난 15일부터 미국을 오가는 트럭 운전기사들의 예외를 인정해주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운전기사들은 국경을 넘을 때마다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사실상 생업이 불가능해진다.

캐나다의 백신 접종률은 80% 이상이며, 운전기사들의 접종률은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백신을 접종한 운전기사들은 전체의 90%”라며 이번 시위로 인해 백신 의무화 조치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도 시위대를 “오타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사람들”, “용납할 수 없는 견해를 가진 이들”, “작은 변두리 소수자들”이라고 부르며 시위대를 얕잡아 보기도 했다.

실제로 트뤼도 총리가 “캐나다 최대 운전기사 단체”라고 소개한 ‘캐나다화물연대(CTA)’는 이번 시위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지난 24일 CTA는 “공공도로나 고속도로, 교량에서 벌이는 시위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는 트럭운전 기사들만의 행사는 아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트럭 행렬이 지나는 길목에서 다양한 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음식, 쉴 곳, 연료를 제공하며 지지하는 모습이 다수 포착됐다. 캐나다 국기를 들고 환호하는 사람들이 도로변에 길게 늘어서기도 했다. 폭죽을 쏘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찰은 최대 2천 대 정도가 오타와에 집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온라인에서는 1만 대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캐나다 전국에서 모인 운전기사들에 미국 쪽 참여 인원도 더해지기 때문이다.

미국 측 시위 관계자인 브라이언 본은 “소셜미디어 수치가 들쭉날쭉하다. 5천에서 10만까지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리도 미국에서 정확히 몇 대가 건너갔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브라이언은 팬데믹 기간 방역규제로 생업에 어려움을 겪은 미국 운전기사들이 캐나다 기사들에게 강한 연대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정부가 걱정하는 과격행위 발생 우려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지금까지 사전 협의사항을 어겨 시위대열에서 추방된 운전기사들은 없다”며 “내가 지금까지 목격한 것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위였다. 캐나다가 그것을 보여줬고 다음은 미국의 차례”라고 말했다.

동료 기사들을 향해 “당신이 어떤 인물인지 보여줄 차례가 됐다”고 철저한 준법시위를 당부하기도 했다.

캐나다 시위가 끝나면 미국 서부에서 워싱턴DC까지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제2차 시위도 이어질 전망이다.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의회 앞에서 백신 접종 의무화 철회를 요구할 예정이다. 이 시위는 ‘워싱턴DC로 행진 2022’로 명명됐다.

브라이언은 “정확한 일정과 경로는 곧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될 것”이라며 “백신 의무화는 끝났고, 정부가 이래라저래 하는 것도 끝났다. 다른 나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100% 합법적으로, 법을 준수하며 트럭 시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11월 열리는 중간선거도 거론했다. 그는 “우리를 규제한 관리들은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다. 이제 다시 투표할 시기가 돌아온다”며 “정부의 지나친 규제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트뤼도 총리는 지난 27일 확진자와 밀접접촉해 자가격리에 돌입했다. 진단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아무런 증상이 없이 건강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당분간 거동에 제약을 받게 됐다.

* 이 기사는 엔리코 트리고소 기자가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