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어떤 인물?

최창근
2023년 05월 6일 오후 10:39 업데이트: 2023년 05월 25일 오후 3:30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1957년 도쿄(東京)도 시부야(澀谷)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기시다 마사키(岸田正記)는 경제인 출신으로 교토제국대학 재학 중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관료가 됐다. 이후 가업을 이어 일본 침략기 만주구(滿洲國)에서 부동산업과 백화점업에 종사했다. 이후 중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고 해군성 정무차관 등을 역임했다. 1945년 일본 패망 후 더글라스 맥아더의 연합국최고사령부(GHQ)의 ‘공직 추방령’에 의해 정계를 은퇴해야 했다.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岸田文武)는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출신으로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재학 중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대학 졸업 후 1949년 통산산업성(현 경제산업성)에 입성하여 1976년 직업 관료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청 장관(청장)으로 퇴직하였다. 1979년 고향인 히로시마(廣島) 지역구 중의원에 당선되어 내리 5선을 하였고 재임 중 총무성, 문부성 정무차관 등을 역임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제국대학(帝國大學) 출신으로 대학 재학 중 고시에 합격하여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걸었던 것과 달리 기시다 후미오는 사립(私立)대학인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學) 법학주 졸업 후 일본장기신용은행에 입사했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3수까지 했지만 결과적으로 도쿄대학 입학에는 실패했다고 알려졌다.

1993년 초선 의원 당선 시 기시다 후미오. | NHK.

‘은행원’이었던 기시다 후미오는 1987년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1992년 아버지가 65세를 일기로 타계하자 이듬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히로시마현 제1구에서 자유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후 치러진 9번의 총선에서 내리 당선되어 2023년 현재 10선 중의원이다. 기시다는 3대 세습 정치인이다.

초선~재선 의원 시절 내각 정무차관을 거쳐 2001년 제1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내각에서 문부과학성 부대신(부장관)으로 입각했다. 이후 2007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의해 내각부 특명담당대신(특정 업무 담당 장관)으로 입각하여 소비자 보호, 우주 개발, 오키나와·북방정책, 규제 개혁, 과학기술 정책 등을 담당했다.

이후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에서는 아소 다로(麻生太郎) 부총리 겸 재무성 대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더불어 내각의 핵심 각료로 활동했다. 2012년 내각 출범부터 2017년까지 외무성 대신을 맡았다. 재임 중이던 2015년 12월, 서울에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치유금 10억 엔을 지급하기로 하고 20여 년을 끌어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다 2017년 8월 3일 개각 및 당직 개편에서는 핵심 당직인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으로 전임되었다.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집권당 대표가 취임하는 관례에 따라 제100대 내각 총리가 됐고, 제101대 총리에도 취임했다.

기시다 후미오는 자민당 내 비둘기파(온건파)로 분류되는 고치카이(宏池會·광지회)의 명맥을 잇는다. 이념과 정책 성향으로 보면 아베 신조 전 총리나 아소 다로 전 총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리버럴한 성향이라 평가받는다.

고치카이 출신 지도자들은 관용과 인내를 바탕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정치 성향을 보여왔다. 1965년 한국과 수교를 이끌어 낸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전 총리, 아시아·태평양 평화 외교를 주도했던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전 총리, 1990년대 초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했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 모두 고치카이파이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 역시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외상으로 서명했던 당사자이기도 하다.

실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한일 관계에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2023년 1월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역사의 전환점에서의 일본의 결단’ 제목의 연설에서 ““되도록 신속하게 현안을 해결해서 한일 관계를 건전한 형태로 되돌려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