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문가들 “시스템반도체에 집중해야 지속 성장 가능”

이연재
2022년 09월 22일 오전 5:47 업데이트: 2022년 09월 22일 오전 9:42

“40년간의 메모리 편중정책으로 인해 상대적 소외와 음지에서 최소한의 자생적 경쟁력을 이어 온 기술과 산업에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인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반선연) 회장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K반도체 대전환 방향설정과 미래전략’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명성과 견줘 초라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반도체 생태계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반도체 정책이 메모리반도체에 편중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화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회장이 환영사에서 “반도체 산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소재와 장비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에포크타임스

노 회장은  “국내 반도체 산업은 주요 소재와 장비를 수입하되 제조 기술을 특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며 “반도체 산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소재와 장비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2019년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에 위협을 가하기 전부터 메모리소자 중심의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세미나는 국회 초당적 연구 단체 ‘글로벌 혁신 연구포럼’,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가 주최하고 반선연이 주관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국내 반도체 관련 전문가들은 미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확장하고 경제안보를 실현하기 위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반도체 대기업뿐 아니라 ‘펩리스(febless·반도체 생산시설을 갖추지 않고 시스템반도체의 설계와 개발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회사)’ 등 연관 산업들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지속 성장 가능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시스템반도체를 만드는 생태계 전반을 말한다. 시스템반도체 칩을 설계하는 팹리스와 재이용 가능한 기능의 블록을 설계하는 IP 개발업체, 반도체 제조 공장에 맞게 설계 서비스를 하는 시스템 솔루션업체, 여러 반도체 공정을 거쳐 최종 웨이퍼 형태의 칩을 만드는 파운드리업체, 칩을 테스트하고 패키징해 주는 후공정(OSAT)업체 등이 있다.

여기에 소재·장비·부품(소부장) 업체가 시스템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우리나라 메모리반도체 산업은 세계 시장점유율 60~70%를 차지할 정도로 미세 공정 기술이 세계 최고다.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오는 2030년 세계 1위를 목표하고 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에 비하면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이 약하다. 반선연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 메모리반도체 점유율 56.9%인데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2.9%에 불과하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0년째 제자리다.

기업 분포면에서도 국내 기업이 처한 상황은 열악하다. 국내 대기업 제품(DDI, AP, CIS, PMIC)을 제외하면 시장 점유율이 1% 미만이다. 반면 엔비디아, 컬컴, 인텔 등 세계적인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이 즐비한 미국은 이 분야에 절대 강국이다.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

‘반도체 굴기’란 이름 아래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등 반도체 전 분야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와 지원을 늘리고 있는 중국도 무서운 속도로 치고 나오고 있다.

엄재철 영진전문대 교수는 “취약한 시스템 반도체로 인해 진정한 반도체 강국으로 나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에포크타임스

엄재철 영진전문대 교수 겸 반선연 정책부회장은 “중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2015년 3.8%에서 2020년 9%로 확대됐으며, 오는 2024년에는 17%로 매우 가파르게 성장할 전망”이라며 “대한민국이 메모리 분야의 절대 강국임에도 불구, 취약한 시스템반도체로 인해 진정한 반도체 강국으로 나가는 길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메모리에 편중된 우리의 취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심하게 불균형적으로 위축되어 있는 팹리스, 파운드리, 소부장, 후공정 산업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정부의 혁신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엄 교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두 기업은 규제 개혁, 세제 지원 등으로 기업활동을 지원하고 재정 지원은 한국이 취약한 장비·소재 분야와 펩리스, OSAT 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반도체 장비·소재연구소 설립 ▲중소 소재·장비·부품 업체의 해외 판로 개척 지원 ▲중소 펩리스의 R&D 비용 지원 등을 제안했다.

팹리스 발전에 유리한 환경 적극 활용해야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 회장은 팹리스 생태계를 튼튼하게 하는 데 인재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 에포크타임스

이서규 한국팹리스산업협회 회장은 “반도체 산업에서 국내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분야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팹리스는 너무 열악하다”고 말했다. 또한 “과거 200개였던 국내 팹리스 업체가 이제는 120개 정도며 중국은 3천 개나 된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미래 기술에서 지속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 국내 산업은 불과 세계 1% 수준의 미미한 존재”라며 “우수한 IT 인프라와 고도의 기술인력이 있는 유리한 환경임에도 한국 팹리스 산업이 부진한 이유는 설계인력 수급의 블랙홀과 좁은 국내 시장, 완성품업체들의 높은 진입 장벽, 반도체 제조에 집중된 지원정책 때문”이라 지적했다.

이 회장은 팹리스 생태계를 튼튼하게 하는 데 인재가 최우선이라고 봤다. 비전공자도 반도체를 배우면 팹리스 인력층이 탄탄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 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게 단기적인 해법”이라며 “학계와 손잡고 고질적인 인력 확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에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를 차렸다”며 “반도체 설계 기술자가 비전공자에게도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를 가르치기로 했다”고 했다.

팹리스 산업을 활성화하는 또 다른 해법으로 이 회장은 ▲국책과제  R&D 사업 기획단계에서 민간 기업 참여 확대 ▲국내 완성품업체와 팹리스 상호 교류회 확대 ▲국내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팹리스·파운드리 상생 협의회 활성화 ▲M&A 활성화로 팹리스 업체 육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을 제시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2018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가 4820억 달러인데 이 중 시스템반도체가 66%를 차지했다”며 “시스템반도체는 5G, 자율주행차, AI 등의 발전으로 지속 성장이 기대되는데 이 중 팹리스는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로 성장성도 커 국가의 필수 경쟁력 확보 분야다”라며 정부의 지원을 당부했다.

3나노 시대 경쟁은 “협업이 필수”

전문가들은 대기업을 지원하면 그들이 소부장업체를 재육성할 것이라는 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부장 업체가 먼저 육성돼야 반도체 산업의 기반이 탄탄해진다는 것이다.

이종수 엠투에스 부회장은 소자업체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돌파하기 위해 ‘협업 생태계’ 조성을 주문했다. 반도체 설계부터 소부장, 제조 기업 간 상호 협력 없이는 3나노미터 이하의 첨단 공정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 부회장은 “반도체 산업이 직면한 도전과제를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면 근간에 있는 반도체 생태계 기술 전반의 혁신이 필수라며 소재·설비·공정·구조 혁신과 더불어 설계와 설계자동화 기술 등 전방위 기술의 혁신이 뒷받침돼야 갈수록 높아지는 기술 장벽을 뛰어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부장) 공급사와 학계, 정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미래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