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970조 규모 ‘인플레 감축법’ 서명…쟁점 정리

한동훈
2022년 08월 17일 오전 10:20 업데이트: 2022년 08월 17일 오후 1:38

미국이 40년 만에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을 겪는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민주당이 주도한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리 역사상 가장 중요한 법률”이라며 극찬한 이 법안에 대해 일부 경제 예측 모델에서는 “10년간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은 통계적으로 제로(0)”라고 평가했다. 공화당은 이 법이 미국 내 보수층을 약화할 것으로 우려했다. 미국 내 쟁점을 정리해봤다.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서명식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 법안을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미국 연방 상원과 하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단 한 명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한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연소득 40만 달러(약 5억2천만원) 미만인 사람들은 “단 한 푼의 세금도 더 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대기업·부자 증세로 기후변화 대응”

미국의 중산층 기준은,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기준으로는 △자신의 주장에 떳떳하고 △사회적인 약자를 돕고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고 △정기적으로 비평지를 받아 보는 계층이다. 이는 경제적 기준과는 거리가 있다.

다만, 전문가들이 내세운 경제적 기준에 따르면 미국의 중산층 연소득은 10만 달러(약 1억3천만원) 전후다.

즉, 바이든 대통령에 따르면 이번 ‘인플레 감축 법안’은 중산층 중에서도 잘사는 축에 속하는 가구를 포함해 전혀 세금이 늘지 않고 부유층에게만 증세가 적용된다.

이 법안은 또한 연수익 10억 달러(약 1조3천억원) 이상 대기업에 최소 15% 법인세를 부과한다. 현재 미국의 연방 법인세율은 21%지만, 다수 대기업이 각종 혜택으로 15% 이하 세금을 내고 있다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부자 증세와 대기업 법인세율 인상은 모두 이번 법안에서 추진하는 에너지·기후변화 대응 예산 3690억 달러(약 483조원) 등의 재원 조달을 위해 마련됐다.

에너지·기후변화 대응에는 석탄·천연가스 화력발전소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장비 확충, 태양광 발전을 위한 자금지원·세금공제·대출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이 밖에 ‘오바마 케어’로 알려진 ‘적정부담의료법’에 따라 고령층 의약품 부담 경감에 640억 달러(약 83조원)를 지원한다. 향후 3년간 1300만 명이 혜택을 입게 될 전망이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의원은 “50명의 동료 모두에게 이 법안을 통과시킨 공로를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50대 50으로 정확히 양분하고 있는 연방 상원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전원 찬성표를 던졌고, 동률인 상황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 51대 50으로 이 법안은 통과됐다.

법안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법안의 명칭대로 인플레이션 감축 효과가 있는가, 있다면 발생 시점은 언제부터인가 하는 것 등이다.

급한 불 ‘인플레’…감축 효과 언제부터?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는 법안 서명을 환영하면서도 이 법의 인플레이션 감축 효력이 언제부터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당파를 초월한 의회 기구인 의회예산처(CBO)는 이달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인플레 감축 법안’의 효과에 대해 올해 인플레이션에 ‘무시해도 될 정도(negligible)’의 영향만 줄 것이며 오히려 내년에는 인플레이션을 약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관련 링크).

CBO 보고서는 또한 ‘오바마 케어’에 대한 지원이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키는 정책이며, 현재 미국 경제가 둔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대기업에 대한 최저 15% 법인세율 적용은 투자 의욕을 낮출 것으로 전망했다.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 예산 모델(PWBM)’은 이 법안을 분석한 후 “향후 10년 동안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은 통계적으로 ‘제로(0)’와 구별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공화당은 이 법안에 포함된 국세청(IRS) 직원 8만7천 명 추가 고용 방안을 비판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8만7천 명의 국세청 요원들이 미국의 일반 시민, 특히 보수성향 인사들을 대상으로 표적 감사를 벌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화당 전국 하원위원회 위원장인 톰 에머 의원은 국세청이 오바마 행정부 시절 보수층을 겨냥했던 전례를 언급하며 같은 민주당 대통령인 바이든을 지목해 “중산층을 괴롭힐 국세청 군대를 만들고 있다”고 폭스뉴스에 말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인플레이션이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치자 사람들은 슈퍼마켓에서 쇼핑하고 있다. 2022.6.10 | 로이터=연합뉴스

공화당은 ‘인플레 감축 법안’이 상하원에서 공화당의 찬성표를 하나도 얻지 못하고 통과됐다는 점도 비판하고 있다.

하원 총 435석 중 민주당 의석은 222석, 공화당 의석은 212석이다. 양당 간 의석수가 10석밖에 나지 않는다. 상원도 총 100석 중 양당이 50석씩 나눠가졌다.

마이클 버지스 의원은 “하원과 상원이 거의 균등하게 나뉘어져 있다”며 미국 국민들의 절반을 대표하는 공화당의 목소리가 거액의 예산에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민주당은 이번 법안이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미국 가정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원 규칙위원장인 민주당 소속 짐 맥거번 의원은 “너무 오랫동안, 이 나라의 너무 많은 사람이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들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며 이번 법안 통과가 평범한 미국인들을 위한 결정임을 강조했다.

“감축법, 인플레 낮출 것” 응답 12%…여론조사

인터넷 기반 시장조사기업 유고브(YouGov)가 지난 4일 발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인플레 감축 법안’이 실제로 인플레이션을 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12%에 그쳤다.

응답자 23%는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고 36%는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높일 것이라고 답했다. 29%는 올릴지 내릴지 확실치 않다고 답했다.

이 조사는 미국 성인 시민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미 인구조사국이 실시한 2018년 미 지역사회 설문조사와 2020년 대선 투표 결과를 기반으로 성별·인종·연령·교육수준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했다. 오차범위는 ±3%다.

워싱턴DC에 기반을 둔 싱크탱크 ‘조세재단(Tax Foundation)’은 ‘인플레 감축 법안’으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장기적으로 0.2% 감소하고 정규직 일자리가 2만9천 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2031년 말까지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33베이시스포인트(bp·1bp=0.01%포인트) 낮아지고 실질 GDP는 0.2%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JP모건 미국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크 페롤리는 야후 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안이 경제 공급 측면에서 연준의 인플레이션 통제를 가시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인플레이션이나 GDP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잭 필립스 기자가 기여했습니다.